"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시스템도 유기체든 기계든 있는 그대로의 외부 환경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처리하지는 못한다. 우리 인간의 인지시스템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상에 대한 '환상 illusion' 혹은 재구성된 세계를 '표상 represent'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환상' 속에서 사는가는 그 시스템의 인지 구조, 즉 외부 환경에서 정보를 입수하여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생물들은 저마다 다른 '환상'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환상'은 인간의 인지구조와 실제 세계 간 상호 작용의 결과이며 심리학은 이러한 상호 작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김상인, 21C 다윈혁명 中)
각 생물들은 (종별로) 서로 다른 인지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다른 디자인(외관)을 지닐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을 읽으며, 같은 종 안에서라도 각각의 개체별 인지구조 내에 개별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맥락아래 생각해보니 '(사람은) 결국 누구나 혼자이다.' 같은 문장은 꽤 그럴듯하게 보이는게다. 즉 이 전제에 따르자면, 똑같은 '환상'과 똑같은 '세계' 속에서 두 사람(혹은 다수)이 동시에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엄밀하게는 정말로 세상 속에서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는 말.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같은 인간임에도) 너무도 달라 '이해불가'를 넘어 '화까지 나게하는' 다양한 인식체계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신문의 정치면만 살짝 훑어봐도 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주변과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이 애초부터 서로 근본적으로 달랐기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는 내 나름대로 마치 다른 (솔까말, 적대적인) 종마냥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살다보면 나와 정말 비슷한 인지체계를 지닌 다른 개체를 만나는 경험도 하게 되는데, 나는 이를 종종 '함께 산책하는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전혀 공통적인 것이 없어보이는 생뚱맞은 관계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에게는 나와 비슷하게 외부를 인식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있을 때면, 숲 속의 한적한 오솔길을 기분 좋게 어슬렁거릴때마냥 안정되고 나근한 느낌이 든다.
내가 요사이 책을 읽는 데 있어, '저자와 산책하며 도란거리듯 읽고 싶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것들에 기인한다. 위대한 사상을 뛰어넘어 내 사유의 체계를 뉴욕의 마천루마냥 쌓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론 내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니 논할 필요가 없는게고.ㅋ) 그보다는 좀 더 많은 타자의 '환상'과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욱 앞서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비평의 태도 역시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한다. 타자의 인지체계시스템으로 구축된 그의 '환상이 탄생시킨 환상'과 그로 인해 깨어지고 찢겨지는 나의 '환상과 세계' (흠. 역시나 내게 있어 예술이란 마조히즘적인걸까? ㅋ)에 대해 구체화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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