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7일 화요일

이사합니다.

 

 

 아직 사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테스트도 마치지 못한 상태지만,

일단 블로그 계정을 '이곳' (http://peonya.wordpress.com) 으로 옮깁니다.

그동안 찾아주셨던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peace!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잡담

 

 

1. 이젠 늙어버린건가. 정말이지, 밤새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차라리 일이라도 많으면 시간이라도 금방 가는데, 오늘은 말그대로 쌩 날밤을 까고 있는 중. 그래도 목요일 '꽃당직'이니 내가 참는다.

 

2. 휴가 계획은 다시 원점으로... 과연 언제쯤 떠날 수 있는 걸까. ㅎ

여행이든 산책이든 상관없으니, 어디 바람이라도 좀 쐬어봤음 좋겠다. 산이 그립고 바다가 보고싶다. 흙

 

3. 새 블로그 계정은 열씸히(?) 테스트 중. 진행율 70%

 

4. 우와아. 7주 연속 주말 비!

난 비오는 날 우산 같이 쓰고 걷는게 세상에서 제일 좋더라. ;

 

5. 오랫만에 윤진서 싸이에 가서 실컷 여행사진을 구경했는데, 아. 이분 너무 많이 변하셔서 이제 더이상 닮았다고 주장하지 못하겠더라. ;

 

6. 우드스탁 취소되면, 내 글은 이제 어쩌나. 제기랄랄랄랄라.

2010년 7월 21일 수요일

뭐가 이리 어려워. ㄷ

 

 

 어제 웹 2.0 시대의 소셜 미디어 환경에 대한 발표까지 경청했으니, 오늘은 이 참에 미뤄두었던 페이스북과 텍스트큐브 대체 계정을 만들어보자고 아침부터 덤벼들었다. 그렇지만.... 아이고. 너무 어려워. 말그대로 계정만 오픈해놓고 이리저리 설정창만 뒤지다가 관둬버림. 어렵다기보다는 귀찮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명색이 왕년에 웹디자이너 출신으로써 이런걸 따로 시간 내서 배우기도 우스운거고.... 적당히 사용하다보면 대강 알아가겠지싶었는데, 이상하게 구글은 아는 만큼만 사용하게 되더라. 한마디로 모르면 그냥 안쓰게되는거고, 쓰고싶으면 배워야하는 시스템인 것.

 

 어차피 나는 무슨 글로벌 프렌드를 만들고자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다, 그저 글 창고 내지는 일기장으로만 써왔던 이 블로그의 성격을 감안할때, 아무래도 더이상 이런 식의 자기만족적인 블로깅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지기까지 한다. 아마도 구글의 제공 서비스를 하나하나 익혀갈수록 그러한 결심은 더욱 굳어질 지 모른다. '소셜 네트워크 글쓰기'란게 발전하고, 사람들 간의 소통이 활발해질 수록, 이런 혼잣말 류의 블로그는 구시대 폐물 취급만 받을 뿐이다.

 

 비단 넷에서 뿐 아니라,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최근 부쩍 소통과 교류의 흐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듯 하다. 어차피 사람이란 게 절대로 혼자 살 수는 없으므로 여기에 크게 불만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서도.... 문제는 전혀 소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소통이란 이름으로 덤벼드는 데 있는 거다. 지금까지 만난 소위 '같은 시간대를 함께 살아가고픈 사람들' 숫자 만도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되는데, 이렇게까지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통하려 해야하는 걸까. 사람을 비즈니스 적으로 상대하지 못하는 내 성격으로는 영 힘든 일이다. 모르던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일 보다는 역시나 그냥 계속 모르는 체 살아가는 게 더 좋다.

 

 여하튼 그건 그렇고, 아. 이 블로그는 이제 어찌해야쓸까잉?? 이래저래 국내 블로깅 서비스 업체로는 죽어도 옮기기 싫고, 구글로 옮기자니 너무 어렵고... 이러다 이 계정은 하루 아침에 뿅하니 사라져버릴 것만 같고... 아놔. 귀찮아. 세상을 쫓아가는 시늉 조차, 만만한 게 아니였어. 쳇

2010년 7월 15일 목요일

물가에 가고시퍼효.

 

 

 그간 날이 워낙 덥기도 했거니와 이래저래 답답한 일들만 겹쳐있던 까닭에, 요사이 통 바람을 쐬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마지막으로 서울을 떠났던 게, 지난번 지방선거때 '부천'이였다고나 할까? 하하. (;) 여름 휴가 일정이 얼마 안남아있긴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일단 어디든 다녀오지 않으면, 당장에 못견딜 것만 같더라. 이왕이면 날도 덥고 다음주엔 복날까지 끼어있으므로, 어디 시원한 계곡 주변에서 백숙으로 몸보신하며 뒹굴거리자고 다짐. 그런데 막상 제안해놓고보니, 조금 심하게 '중년'의 삘이 나긴 한다. 예전같으면 계곡가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방 기계 소리나, 빽빽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얘들 꼴보기 싫어서라도 절대 찾지 않았을텐데... 나이가 드니, 이젠 계곡물에 얼린 수박도 좀 먹어보고 싶고, 야외에서 고기도 좀 구워먹고 싶어지는 거다. 으유.

 

 사실은 간단하게 부암동 백사실계곡 정도만 갔다와도 충분히 만족스럽겠다 싶었는데, 은근히 이 분야에 강한(?) P.가 동두천이나 장흥, 가평 쪽을 추천했기에, 어느 곳을 다녀오느냐의 문제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거 원. 일주일 내내 '어디로 놀러갈까'만 고민하고 앉아있군화.) 조금은 한산하다는 가평 쪽에 무게가 실려, 진짜 열씸히 민박과 방가로를 알아보았는데, 세상에나 가격이 너무 어마어마하다. 조금 괜찮다 싶은 펜션(정말 괜찮은 펜션은 아예 검색도 안했다)도 성수기 주말요금가가 20~25만원 수준이였고, 심지어 화장실조차 없는 방가로형 민박-말이 방가로지 조립식 컨테이너다-조차 5만원 이하를 찾기 힘들더라. 아무리 여름휴가철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들 하는거 아뉘세요? ㅜ 결국 그 좋다는 용추계곡이나 연인계곡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 여기 다녀오시는 분들, 당신들이 진정한 '능력자'. ㄷ

 

 결국, 그제는 지리산, 어제는 남도 일정만 짜고 있다 그대로 퇴근한 것도 모자라, 오늘은 하루종일 계곡만 검색하고 있는 나를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는지, 옆자리 후배가 '간현 유원지'를 추천해주었다. 어차피 이번 주말에 비가 온다면 계곡보다는 유원지가 나을 테고, 여기는 기차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이동 가능하다니 더이상 좋을 수 없는 곳이다. 게다가 자그만치 '소금산'이래. (내 '소금강'은 들어보았어도, '소금산'은 또 처음이다. ㅎ)  백숙 시세(?)도 제법 저렴한 편이며, 한 사람당 만원 이하로 고기도 구울수 있는데다, 하루 5천원이면 천막쳐놓고 뒹굴 수도 있단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동네에 소위 '꽃무늬 펜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전혀 고급스럽지도 않으며 오글거리는 펜션들은 정말이지 혐오감마저 든다. 진심으로 말하건데, 이런 데를 비싼 돈 주고 묶느니, 그냥 노숙이 낫다.

 

 게다가 가현역에서 기차로 두 정거장(?) 정도 이동하면 원주역이니, 잘하면 이번 기회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박경리문학공원'마저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트위터에서였나? 누군가 그 근처에 맛있는 막국수 집을 추천해준 적도 있었으니, 모든 계획이 완벽해! 더이상 바랄 게 없다. 왠지 야영가는 기분도 나고, 몸보신 할 생각에 므흣하기도 해서, '신난다. 신나'만 연발하고 있었더니, 후배들이 '뭐 저런 사람이 다있나'의 표정으로 쳐다본다. <흥. 이렇게 혼자 잘 노는 것도 재능이라긔.> 여하튼, 이렇게 오늘 하루도 계획 한번 '끝장나게' 세우며, 잘 버텼다. 내일은 또 어디 갈 계획을 세우며 하루를 떼워야하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 주는 '계획의 주간'으로 확실히 마무리 지어야할텐데... 크킄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숨길 수 없는 노래 2 /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

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그 여름의 끝 , 문학과 지성사)

 

 

펼쳐두기..


 

여름 휴가 계획은 다시 원점으로.

 

 

 애초 9월이면 뱅기표 가격이 떨어질 줄 알고, 그간 열씸히 베트남 북부 여행계획을 세워두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추석연휴 전까지는 성수기 요금 수준이다. 게다가 P.가 갑자기 8월 초로 휴가를 앞당겨 다녀오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비싼건 둘째치고 좌석도 거의 없는 상태. 물론 자리가 있다해도 항공료만 50만원을 지출하자니, 아무래도 이건 너무 아깝기도하고... 결국 가까운 근교(해외) 지역으로 가느냐 아니면 국내로 가느냐로 휴가 계획의 다이어그램은 또다시 처음으로 회귀.

 

 모름지기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가 여름 휴가 시즌 중 '극성수기'라 할 수 있으므로, 근교 항공요금을 별 기대없이 뒤져보았는데, 의외로 북경행 티켓 가격은 평소와 별 차이가 없더라. 왕징에 레지던스 하나 얻는다 해도 하루 200~250원이면 충분하므로, 다음달 초에 가기에는 확실히 북경이 가격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북경이 별로 안땡긴다는데 있겠지. 이건 뭐. 하도 여러번 가서 그런가, 집에 있다가 광화문 사거리 나가는 느낌인거다. 혹여 정 북경으로 가게된다해도,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저 '마실' 내지는 '이색 데이트' 쪽으로 컨셉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이건 뭐. 계획이랄 것도 없어. 오히려 개포동보다 더 친근한 동네이니 말 다했다. (그래도 막상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자 양꼬치 100개 먹고 배 두드리며 처웃고 오겠지. ㅎ)

 

  두번째 계획안은 국내 남해안 따라 여행하는 코스로, 대략 목포에서 시작해 통영까지의 여정이다. 이건 애초에 베트남의 대안으로 고민하던 코스라, 각 지자체에서 받아놓은 지도나 안내서가 충분하기에 지금으로써는 별달리 준비할 게 없다. 게다가 중요한 일정은 대부분 P.와 상의해야하므로, 내가 혼자 정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것 역시 결국 '여행'이라기보다는 '산책' 내지는 '이색 데이트' 정도의 컨셉이 되지 않을까. 적당히 맛있는 집들 찾아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좋은 것만 보며 실컷 웃다가 오면 되는거다. ㅎ

 

 휴가 계획이 이렇듯 원점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더이상 치열하게 '계획'해야할 것이 없어지니, 사실 아주 약간 맥이 빠지긴 했다. 결국 휴가를 떠나기 전, 한 2~3일만이라도 혼자 어디로든 다녀오자고 '꾸역꾸역'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 이틀째 본 휴가지 결정은 미뤄놓은 채로 이 짜투리 여행만을 구상했다. 제주 역시 비행기 자리가 없을게 뻔하므로, 일단 지금 생각같아서는, 추성에서 간단히 지리산 비선담까지만 올라갔다온 후 벽송사로 빠져 인월까지 둘레길을 걸을까 생각중인데...(당연하게도 중간에 있는 마을에 들려, 잠까지 자야하는 거다. 오옷!) 도무지 그 동네 시외버스 시스템은 예상이 안되는데다 거리 계산도 못하고 있으니 어질어질한 상태다. 그럼에도 역시나,(새로 산 45L 배낭을 이번 휴가에 못매겠다고 속상해하던 것은 어느새 잊어버린 채) 이번엔 트렉킹을 위한 팔토시(- 아. 이거 그동안 너무 사고 싶었어.)와 랜턴, 스틱들을 주문해놓았다. 아유. 언제나 이렇게 성급해서야...

 

 여하튼 덕분에, 다음 주가 마감인 원고 기획안은 하나도 작성해놓지 않았다는 놀라운 소식! 하하. 내가 지금 웃는게 웃는게 아니람니다.

 

 

+ 둘레길 3구간은 풍경만 놓고보면, 싸파 저리가라 수준이구나. 움화화

2010년 7월 9일 금요일

단성사

 

 

1907년에 주승희가 발의하고 안창묵과 이장선이 합자하여 2층 목조 건물로 세웠다. 1909년 이익우가 사장이었으나 한흥석으로 바뀌었고 1910년에는 일본인 후지하라[藤原雄太郞]에게 넘어갔다. 주로 전통연희를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1910년 중반 광무대 경영자 박승필이 인수하여 상설 영화관으로 개축하였다.

 

1919년 10월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연쇄활동사진극(連鎖活動寫眞劇) 《의리적 구토》를 상영함으로써 한국영화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1924년 초 단성사 촬영부는 7권짜리 극영화 《장화홍련전》을 제작, 상영함으로써 최초로 한국인에 의한 극영화의 촬영·현상·편집에 성공하였고, 1926년 나운규(羅雲奎)의 민족영화 《아리랑》을 개봉하여 서울 장안을 들끓게 하였다.

 

그 후 단성사는 조선극장 ·우미관(優美館)과 더불어 북촌의 한국인을 위한 공연장으로 일인 영화관인 황금좌(黃金座)·희락관(喜樂館)·대정관(大正館) 등과 맞서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음악·무용발표회 등에도 무대를 제공하여 새로운 문화의 매체로 큰 몫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대륙극장(大陸劇場)으로 개칭하였다가 광복 후 다시 단성사로 복귀하여 악극(樂劇)을 공연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단성사' 中)

 

  오로지 '판의 미로'의 '기예므로 델 토로'가 제작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 '스플라이스'가 보고싶다며 개봉 전부터 아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헌데, 그래놓고는 지난 1일이 개봉일이였음을 깜빡해버린건 뭐냐...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스플라이스'는 이미 이번주 개봉작 '슈렉'에 밀려 내려진 상태... 주말 오후 5~6시쯤의 소위 황금시간대에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고는 오로지 '단성사'뿐이였다. 서둘러 예매창을 열어 예매 완료. 근데 어찌된게 좌석들이 텅 비어있다. ;;

 

 '단성사'라뉘... 서울극장이고 대한극장이고 좀 전통있다 싶은 영화관이라면,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늘 기쁜 마음으로 찾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단성사는 늘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을 뿐, 한번도 안으로 들어가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거다. 옛날에는 단성사 앞에 줄이 얼마나 서있느냐로  영화의 흥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데, 요즘은 지나가면서만 보아도 유독 초라하고 쓸쓸해보인다. 알고보니, 작년에 건물주 부도 이후 바뀐 새 주인은 영화관 운영보다는 귀금속 매장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라, 상영관 수를 무려 4개나 줄여놓은 상태라 한다. 단성사의 가장 최근 소식은 이 건물이 법원 경매에 부쳐졌다는 내용이다.

 

 시장 경쟁을 최고의 윤리이자 미덕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쩌면 이같은 일은 당연한 것일 지 모른다.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는 '세계 최대' 상영관이나, 냄새와 촉각까지 전달한다는 4D, 5D 상영관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 어느 누가 볼품없는 단성사까지 찾아가겠나. 상업성이 없다면, 다시말해 장사가 안된다면, 퇴출 내지는 소멸...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본주의의 제1원칙인 거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식으로 사라져가는 '미시적 유물'들이 제법 많다. 이를테면 피맛골, '청진옥' 해장국은 주인의 주장과는 달리 예전만 못한 맛때문에 발길을 끊은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철거 이후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동대문운동장은 또 어떻고? 추운 겨울 새벽, 뜨거운 오뎅국물을 후후 불어 나눠 마시곤 했던 포장마차 자리에는,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토록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공간에서, 어느 누가 새벽 군불을 피워가며 일하던 아버지들을 기억하겠는가? 보기 좋고 돈이 되는 것들은 아무리 말려도 꾸역꾸역 들어서고, 그 반대의 것들은 어느순간 휑하게 사라지는 세상... 화도 났다가 서럽기도 했다가, 결국은 체념하고야 마는 이 감정의 순환들이 지긋지긋하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감상만으로는, 아무리 '옛 것'을 지키자고 아무리 주장한들, 어차피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돈'이라는게, '엠비셔스'하다는게 다 그런거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단성사같은 경우는 우리 영화사적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유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건가? 유장관님이고 오시장님이고 그렇게들 뭔가 하고싶으시다면, 옛 단성사 건물이나 좀 복원해달란 말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연만 '예술'인가? 자그만치 100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던' 장소이고, 수출 효자 상품이라는 '한국 영화'가 태동한 곳이다. 어설프게 멀티플렉스로 변신했다며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단성사가 참으로 안쓰럽다.

 

 

+ 다쓰고나서 찾아보니, 씨너스 단성사 홈페이지에 이달 13일부터 (당분간?) 영업중지 예정 공고가 올라와있다. 엄마야. 이게 뭐야... (ㅜ)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건가효?

 

 

2010년 7월 8일 목요일

계속되는 잡담

 

 

1. 아주 약간 달뜬 목소리로 걸려온 P.의 전화, 소위 '특종'을 잡았다는 내용이였다. 그 길로 바로 컴퓨터 앞으로 뛰어가 확인하니, 오호. 특종에 단독 보도다. 입사 기념 선물을 마련해놓길 잘했구나 싶었다. 사실 직장에 메여 살게된 게 무슨 좋은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럴때 보면 좀 더 메여있어도 괜찮겠다 싶기까지 한 것.ㅋ 옆에 있었더라면, 장하다고 엉덩이 좀 두들겨주었을텐데... 지금쯤 이사람,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를 상상하고 있자니, 내 기분까지 덩달아 '업'되더라. 아주 그냥, 장하다.

 

 문득, 평생을 시사만화 화백으로 신문사에서 일한 것도 모자라, 퇴직후 지금까지도 뭐가 이쁘다고 하루 반나절은 신문만 끼고 사는 울 아부지 생각이 났다. 유난히 기분 좋게 퇴근해 과자사먹으라며 덜컥 천원짜리를 쥐어주곤 했던 아빠의 예전 모습이 스쳤던 것. 엄마는 워낙에 고생을 많이 한 까닭에, 지금도 신문쟁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난 그래도 콧노래를 부르며 아빠 그림들을 손질하고는 행복한 미소를 짓던 예전 엄마의 표정을 다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 내 기분과 마찬가지였겠지.

 

 

 2. 집에 와서, 내내 바느질만 했다. 얼마나 열씸히 했으면 바늘귀를 부러트리기까지 했다. ; 아무 생각없이 손장난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된 일이 점차 커져버렸다. 꿰매고 또 꿰매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네. 히융. 섭섭하다고 아우성치는 책상위 책님들에게 미안해져, 간단하게 10페이지 정도만 읽는 시늉을 했다.

 

 사실, 근 이주째 슈니츨러 소설 외에는 그 어떤 책도 읽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하루 책을 손에서 놓으니, 자꾸만 미루게되고, 이게 열흘이 되어버렸던 것. 이러다 한달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슬슬 조바심이 난다. 역시나 중요한 건 마음가짐인건데, 아프다는 핑계로 지나치게 빈둥거린 것 같아 스스로에게 미안해진다.

 

 어제 모 선생님께서는 제법 분명한 눈빛으로, '앞으로는 글을 규칙적으로 부지런히 쓰라'고 주문하셨는데, 요새들어 유난히 나태해진 태도에 대한 일종의 질책으로 들리더라. 비록 능력은 안되도 '열씸히'는 하고 있다는 게 유일한 변명거리였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ㅎ 바지런히 읽고 전투적으로 써야지. 이러다 정말 머리에 똥만 차겠다.

2010년 7월 7일 수요일

2010년 7월 6일 화요일

진순자 고모님네 김밥

 

 

 하루종일 심심해서(?) 한참 동안 어제의 일기를 썼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버리는 바람에 모조리 다 날라갔다. 아이 참. 이런거 너무 좋아. ;; 여하튼 일기의 주된 내용은 '진순자 김밥 먹고시퍼!' 였다. 아무래도 토요일까진 못 기다리지 싶어... 금요일 저녁에 먹고, 토요일 점심에 또 먹을까? 아님 오늘이나 내일 몰래 다녀온 뒤에 모른 체 하고 토요일에 또 먹을까? 이것 참. 고민되네.

 

 

+

감사 인터뷰 시작 10분만에, 끝!

김혜수 눈물효과 아이파우더 좀 칠해주시고, 무조건 눈웃음으로 버티었더니..

오히려 감사관이 나를 궁휼히 여기어 토닥여주었다는 '뭥믜'스러운 올해의 감사.

역시 나는 다른건 몰라도 '감사운'은 타고 났단말이야.

 

2010년 7월 5일 월요일

8과1/2

 

 

 '말'이란 게 참으로 무섭지.. 일요일에는 정말로 펠리니 영화를 보러갔다. 하하. 극장은 여전히 만원이였고, 영화는 제법 지루한 편이였다. 영화에 뜻을 두거나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감동스러울 영화였겠지만, 나야 뭐. 영화를 좋아하긴 해도 뭐 그정도까진 아니라서... 살짝 졸기도 했고, 시계까지 만지작거리며 말그대로 '지루하게' 보았다. 올해 1월이였나?  씨네큐브에서 보았던 '씨네도키뉴욕' 과 비슷하다고 투덜대며, 허리우드 상가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훌륭하다고 칭송받거나 고전이라 불리우는, 몇몇 작품들은 사실 끝까지 본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만큼 어렵고 지루할 때가 종종 있다. 헌데 참 이상한 건, 이렇게 버텨내며 본 영화들은 유독 그 잔상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뭐. 비단 고다르 영화 같은 고전은 아니지만, '씨네도키뉴욕' 역시 간신히 버텨가며 본 영화임에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신기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역시 힘들게 본 영화인, '8과 1/2' 도 기억에 제법 오래 남을 것 같기도 하고... 뭐 이렇게 좋게좋게. 생각하자 싶었다.

 

 영화 끝나고는 오랫만에 사동면옥에 들려 왕만두국을 먹었고, 커피마시러 '하루'에 들렀다가 '주말에는 리필이 안된다'는 소리에 기분이 춈 상하기도 했다. 인사동을 빠져나와 다시 강남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 속옷이 흠뻑 젖어버리니, 어디 돌아다니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하면, 더위를 피해가며 '자알' 놀 수 있을 지, 올해는 특히나 치열하게 연구해봐야겠다. 예년에는 이정도까진 아니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진짜로 유난히 덥고 힘들다. 흨

 

 

2010년 7월 4일 일요일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켄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무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지니고

욕심은 없고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조금의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들어 알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수풀 그림자의

작은 짚을 인 초가에 살며

 

 

동쪽에 병이 있는 아이 있으면

가서 간병해 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지고

남쪽에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 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거리가 있으면

가서 부질없으니 그만두라 이르고

 

 

가뭄 때는 눈물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벌벌 떨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고

칭찬도 받지 않고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펼쳐두기..


 

2010년 7월 2일 금요일

꿉꿉한 일기

 

1. 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집 밖을 나서는데, 제법 습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래도 하늘이 꾸물꾸물할 정도까진 아니였기에, 아마도 오후쯤 비가 오겠거니 하고 그냥 맨 손으로 집을 나섰다. 헌데 이게 웬일이니. ㅜ 지하철 역을 나가보니 소나기도 이런 소나기가 없다 싶게 말그대로 퍼붓고 있는 상황.. 열대 지방 스콜도 저리가라 수준이더라. 하는 수 없이, 몇 발자국 앞에 위치한 편의점까지 달려갔는데, 그 잠깐 사이에 말그대로 '홀딱' 젖어버렸다. 오늘따라 입고 온 하얀 셔츠는 검은 가죽가방 물이 들어 온통 검은 때가 탔고, 머리는 미친년의 그것이 따로 없게 됐다.

 

 회사에 가져다 놓은 우산만 3개인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5천원이나 주고 새 우산을 샀기에, 진짜로 속상한 마음이 들어, 회사 현관까지 터벅터벅 기어갔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번뜩, 지난주에도 비가 와서 취소된 청계천 녹조투어가 생각났다. 오늘 아침에 진행키로 했다고 메일을 주셨던데, 날씨가 이러하니 오늘도 못하시겠군화.. 저런... 하늘은 정녕 오세훈 편인겁니까? 은선님 속상하시겠다. 흨.

 

 

2. 있다가 셈나 마치고 바로 데이트하러 가야되는데, 머리도 얼굴도 옷도 온통 꼬깃꼬깃하다. 비 맞아서 그런지, 온 몸이 근질근질 하고 붉은 반점까지 올라온다. 얼른 집에 가서 한바탕 샤워나 하고 꽃무늬 치마로 갈아입은 후, 기린들이 뛰어놀 법한 대초원(정확하게는 '그림'이 있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이래서 금요일 오후에는 연구실 스케쥴을 잡아두면 안되는 것이야. 허구원날 꼬질꼬질하니, 이게 뭐람.

 

 그래도 이 와중에 P.의 '입사기념선물'까지 고르는 중이다. (뭐. 저런 날까지 챙기냐고 하면 할 말 없다. 뭔가 선물해줄 구실이 필요한 게다. 그냥 주면 헤퍼보이자나.. ;;) 아이템은 올해 역시, 듀퐁 셔츠다. 매해 똑같은 것만 선물하는 게 아무래도 성의없어 보이긴 할테지만, 이만한 게 없는 걸 어쩌겠나. 게다가 똑같아보이더라도, 모름지기 셔츠란 아주 디테일하게 차이가 있기에, 제 몸에 예쁘게 맞는 걸 찾기란 쉽지 않은 법. 내가 사준 셔츠만 따로, 특별하게 '드라이' 맡겨 관리한다 하니, 그사람 역시 이게 마음에 들긴 하는 거다. 그래서 올해도 똑같은 라인에 똑같은 사이즈로, 하지만 무늬는 이제와 다른 것으로, 며칠 째 찾는 중이다.  근데,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올해는 유난히 선물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긴 했나보다. 아무래도 장금이가 미감을 잃었듯, '의감衣感'이 떨어진 같아. 도통 고르는 일이 쉽지가 않다. :(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 이성복

 

 

 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비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

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시든 꽃과 딱딱한 빵과 더럽혀진 눈雪을 사랑할 수 없

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썩어가는 생선 비리내와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아장거리는 애기 청거북의 모가지가 제 어미에게

얼마나 예쁜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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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일 목요일

베트남 여행 프리젠테이션

 

 

 

 

토 : ① 오전 출발시? - 하노이 도착 후 기차표 예매, 현지 여행사 접촉

      ② 오후 출발시? - 하노이 도착  V 하노이 숙박

 

일 : ① 이 가능하다면, 근교 일일 투어. (호아루/퍼퓸 파고다)

      ② 라면 그냥 닥치고 기차표 예매, 현지 여행사 접촉. 이후 시내 관광 V 하노이 숙박

 

월 : 숙소에서 짐 싸고 나와, 하롱베이로 고고! V 로맨틱하다! 선상 숙박

 

화 : 하노이 도착(오후 3~5시 쯤) 시내에서 어슬렁대다, 라오까이행 야간 기차 탑승 V 기차 숙박

 

수 : 싸파 도착, 숙소 구하기. 트래킹이나 홈스테이 체험 여부는 각자 취향에 따라! V 싸파 숙박

 

목 : 싸파 어슬렁거리기 후 라오까이로 돌아가 하노이행 기차 탑승 V 기차 숙박

 

금 : 하노이 도착, 시내 관광을 겸한 혁명 유적 탐방 V 하노이 숙박

 

토 : 관광없이 오로지 '데이트', 서울로 출발 (23시 경)

 

 

 론리플래닛은 아직 배송도 되지 않았는데, 일단 마구 날림으로 급하게 여행 일정표를 작성했다. 혼자 가려던 생각에 아무 계획도 세워놓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함께 가는 사람이 생긴 바람에 마음이 급해진 것. 대강 일정의 '와꾸'를 짜놓고 나니, 미리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 지가 이제야 실감이 난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 숙소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야할 테고, 현지 여행사 시세를 적당히 파악해가야 하롱베이 투어에 있어 바가지를 안쓰게 될 터.. 더불어 가급적 한국인들이나 미국 양키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업체를 선정해야 할 테고... 무엇보다도 들쑥날쑥한 비행기표 요금 비교가 제일 관건이다. 일정이 저렇게나 널널한 건 비행기 요금 탓에 혹시나 직항을 못 타게 될 경우의 비상사태를 대비해서다. 비행기 편만 확정 지으면, 그때부터 준비야 뭐 식은 죽 먹기쥐. ㅋ

 여하튼 일부러 하롱베이에서의 선상 숙박이나 싸파 숙박을 넣어, 최대한 로맨틱하게 일정을 세워보긴 했으나, 대부분의 세부 일정은 나홀로 여행객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스케쥴이니, 이를 어쩐다? 게다가 이제와 휴가 날짜가 안맞아 함께 못가게 된다면, 저 로맨틱한 일정들은 어쩔.. (ㅜ)

 

 뭐니뭐니해도 여행의 백미는 역시나 계획의 단계가 선사하는 설레임인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들이 첩첩 쌓여있는데도, 오늘 하루 이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건 하루종일 여행만 생각했기 때문.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하며, 그 곳에서의 하루를 계획하는 일은 실제 그 자리를 밟는 일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기에 혹 설령 바빠서 못가게 되더라도, 가끔은 이런 즐거움을 주는 '뻘 짓'도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아직 떠나려면 두달은 더 남아있지만, 하루종일 이러고 있자니 신난다. 신나..   ;)

 

2010년 6월 30일 수요일

가엾은 천사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서 나는 수시로 체위를 바꾸었으며 까불대는 풀처럼 명랑했다"

 

Antony and the Johnsons / Epilepsy is Dancing

 

 

 

 

 

 

'보이콧' 할 수 없던 경기

 

 2010년 6월 한달은 월드컵 마케팅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유난스런 협찬사들은 지하철 한 칸에 통째로 잔디시트를 깔았고, 붉은 옷을 입은 스타들을 내세워 너도나도 서울 광장으로 응원 가라는 광고를 골목길 버스정류장 마다 붙였다. 월드컵 시작 전부터 서울시청 선점 문제를 두고 '붉은 악마'와 기업들은 떠들썩하게 옥신각신했고, 모 방송국은 독점 중계권을 무기로 이 기회에 한탕 벌어보겠다는 야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른채 대놓고 드러냈다. 물론 이제까지 있었던 각종 스포츠 행사마다 지나친 상업주의에 따른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 수위가 심하지 않았나 싶다. 하도 요란하니,  이 모든 광풍이 꼴보기 싫어지는 일종의 반발감(?)이 들어, 지난 한국 대 그리스전 경기도 '일부러' 보지 않았고, 예년 같았으면 밤새워 챙겨보았을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티비를 틀어 중계 방송을 지켜보게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이들은 다름아닌 '북한'의 대표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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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설치되었던 모 기업의 월드컵 광고)

 

 북한의 경기를 주시하게 된 건,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나 포르투칼과의 전반전에서의, 즉 전통적인 축구의 강호를 깜짝 놀라게 한 그들의 경기력때문은 물론 아니다. 또한 한 민족으로써 그들을 응원하라는 민족주의적 감상에 기대고 싶었던 것도 역시 아니다. 선수명단 표기의 오류를 두고 '북한 선수 4명이 이탈했다'고 떠들어대던 언론이나, '빨갱이'라며 북한 나아가 북한 사람들 모두를 이레 적대적인 괴물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하는 한국 정부의 획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였을까? 단순한 호기심이란 이유 때문에 보기 시작한 북한의 경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리만치 묘한 감동을 선사했다. 비단 최근의 천안함 사태가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북한의 이미지라는 것은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위 '김정일'스럽게 뇌리에 각인되어버리곤 한다.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은 '괴물'처럼,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의 표정과 땀방울은 이러한 이미지가 그동안 그 얼마나 덧씌워진 편견이였는지를 다시한번 새삼 느끼게 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싶은 '한여름 밤의 꿈'

 

 '안토니 앤 더 존슨스'는 2000년 동명의 앨범 "Antony and the Jonsons"으로 데뷔한 밴드이다. 이들을 두고 기존의 슈게이징 사운드나 트립합 계열 같은 '약물음악'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소리를 '우왕우왕' 울리게 하는, 소위 '와우' 이펙터의 사용이 연주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세간의 평가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토니'의 음악에서는 기존의 '뽕스러운' 음악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느껴진다. 그 주된 원인은 보컬 안토니(Antony Hegarty)의 가히 순수하다 싶을 만큼 절제된 목소리때문이다. 첫 앨범 이후 발매된 2005년 'I am a Bird now'나, 2008년 'Another World EP'에서 보컬 안토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침잠하는 형태로 발전된다. 보컬의 바이브레이션은 갈수록 절제미를 더하고 있고, 이로써 그의 사랑 이야기는 좀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해왔길래,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보컬 안토니는 이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 호소력있는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청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그들의 프로필까지 찾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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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보컬 안토니는 밴드의 활동과 동시에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을 한 인물이다. (또한 "Epilepsy is Dancing" 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워쇼스키 감독 역시 동성애자로 익히 알려져있다.) 문제는 이같은 주변적인 정보를 접하게 됨과 동시에 기존의 감상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가 선사하던 서정성은 그들의 신분(?)때문에 급속히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서정성을 오롯히 무책임한 '풍광'의 측면에만 두고 싶어하는 다수에 속한 자들의 이기심은, 이 과정을 묘하게도 섭섭함으로 인식케한다.

 

 흔히 서정과 감정은 한 개인의 내면의 영역일 뿐이라 여겨진다.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장르의 예술이 한 시대를 이끌게 되면, 곧이어 '서정성의 회복'을 주창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전제때문일 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서정을 오롯히 개인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아무리 소소하더라도 역사가 없는 개인이란 없고, 이야기가 없는 인생이란 없을텐데... 이러한 삶의 여정을 토해내는 서정의 영역에서 완전히 현실 참여적 혹은 정치적인 것들을 배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랑이든 '있는 그대로만' 존재한다는 관점은 일종의 허구이자 환상일 수 있는 것이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한없이 가라앉는 비애의 감상을 선사한다. 그 순간, 듣는 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들은 '아픈 것은 우리 뿐이다'라는 개별적인 비애를 '우리 모두 아프다'라는 보편적인 비애로 표현함으로써,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빨간 괴물'처럼 무언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일 것만 같던 북한 선수들이 알고보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땀을 흘리고 똑같이 기뻐하며 똑같이 아쉬워함을 알게되었을 때 느껴지던 감정들처럼, '안토니 앤더 존슨스'는 그동안 특별하다고만 여겨져왔던 소수자들의 사랑을 누구나 동의할 법 한, 극한의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함으로써  그 경계를 녹아내리게 만든다.

 

 

 

"고립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많은 누리꾼들은 북한 선수들의 경기력을 두고 '경기에서 지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가기에 저렇게 죽어라 뛰는 것'이라 농담을 던졌고, 유니폼이 부족해 경기 후 상대 선수들과 셔츠를 교환하지 못하는 걸 두고 그들의 가난을 비웃기도 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뛴 흔적인, 선수들의 몸을 두고 '초콜릿 복근'을 운운했고, '못먹어 마른거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교포 출신인 '정대세' 선수의 "이번 월드컵에서 북한 팀을 통해 북한이 고립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던 인터뷰 내용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들이 경기를 통해 보여준 것은 비단 이들의 땀이 섞인 꿈과 열정 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던지는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월드컵 광풍으로 다른 모든 경기를 '보이콧'해야하는 서글픈 현실 속에서도 나는 이들을 있는 힘껏 응원했다. 승패를 떠나 그들이 감내해야하는 그 모든 서러운 목소리를 맘껏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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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9일 화요일

아침부터 비장하게!

 

비이토벤, 대푸가

 

씨네마테끄

 

 

 그래봤자 대여섯 시간이였지만 모처럼 혼자 있게 된 지난 토요일 오후, 계획해놓았던 대로 서울아트시네마의 펠리니 회고전에 들렸다. DVD로 구매해도 2900원 밖에 안하는 펠레니의 대표작인 '길'을 굳이 스크린으로 보러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극장은 거의 매진 상태. 지난 십 년간 씨네마테크를 찾았던 이래, 이렇게 관객이 많은 영화는 처음이였다.

 

 비록 지금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만큼 망가진 도시인 서울이지만, 그래도 '서울 살이'가 아직까지 그럭저럭 버틸만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서울아트시네마, 즉 '씨네마테끄' 때문이다. 20대 이전까지 내게 서울 시내란 '740번 버스'를 타고 엄마와 팥빙수 먹으러 다니던 추억이 전부였다면, 20대 이후 홀로 버텨야하는 시간을 견디게 해준 건 오로지 '씨네마테끄' 였을 지 모른다. 철없던 어린 시절,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그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알려준 곳도 이곳이였고, 밥벌이에 바쁜 지금까지도 어느 오후 하루, 아무 이유 없이 회사를 빠져나오는 날이면 무의식적으로 이 곳으로 향하는 일이 종종 있으니, 참으로 질긴 인연인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서울대입구로 돌아가, P. 에게 오늘 본 '잠빠노'가 얼마나 멋있었는 지에 대해, 실컷 수다를 떨었다. 유일하게 알아들은 이태리어, '마쬬'로 애교까지 실컷 부렸던 것. 일요일까지도 때마침 눈에 띈 서래마을 '젤소미나' 카페가 유독 반가워, 길거리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젤 쏘미이나아-'를 크게 외치기까지 했다.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으면, P.조차 '이런 영화' 보고 싶다고 고백했을까. ㅎ

 

 생각해보니, 우리가 아주 어렸던 시절, 함께 본 세 편의 영화 중 두 개가 씨네마테끄 상영작이였다. '노동자다 아니다'를 보고나서 피맛골 고갈비집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살짝 털어놓았었는데, 사실 그때는 태연한 척 했지만 그 솔직함에 가슴이 약간 쿵쾅거렸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후 또다시 찾았던 그 곳에서 본 영화는 후안 룰포 원작의 '부의 제국'. 놀랍게도 P.는 이후 제법 멋진 장문의 영화 감상문을 직접 써 내게 보여주었는데, 뭐랄까. 영화를 마음 맞는 이와 함께 보는 일이 그 얼마나 짜릿한 기분인 지를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워낙에 혼자 쏘다니는 짓을 잘 하기도 하거니와, 또한 괜히 내 취향을 강요해 부담주게 될까 두려워, 사실 그 동안 함께 '이런 영화'를 보러가자고 P.에게 청한 적이 그간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조용히 '나도 이런 영화 보고 싶은데..'라고 이야기하는 P.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너와는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다'라는 P.의 말은, 어쩌면 그저 서로 치대는 것 없이 편하고자 내가 내세운 이기심이였을 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주말 무사히 살아 있게 된다면,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눈을 뜰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P.의 손을 잡고 펠리니의 다른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 내 생애 처음으로 고전 영화를 씨네마테끄에서 함께 보아주었던 사람인 P.와 아주 예전 그때의 기분을 살짝 나눠보고 싶기까지 한 것이다.

 

 

2010년 6월 28일 월요일

이어지는 잡스러운 글 들에 관한 공지

 

 

 당분간 매우 잡스럽고 볼 것 없는 내용들의 포스팅이 주구장창 이어질 예정입니다. 왜냐고요? 세상에나. 텍스트큐브 계정 자체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공지가 올라온 지 한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텍큐 툴에 가까스로 익숙해지자마자, 헤어져야하는 상황.. 이렇게 타의에 의해 마침점을 찍어야하는 상황이 오니, 포스팅에 갑자기 마구 집착하게 되네요. 그래서 당분간은 신변잡기 위주로 폭풍의 포스팅을 해볼까합니다. 어차피 백업같은 건 귀찮아서 못하는 스타일이기에, 여기 있는 글들은 조만간 허공에 사라져버릴테니까요..ㅋ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좀 더 조잘거리고 싶어졌어요. 말그대로 아주 그냥. 시원섭섭합니다.

 

 이 곳에서의 첫 포스팅은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2009년 10월 25일 오후였어요. 첫포스팅을 하며, 이 곳에서는 남들 눈치 좀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만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써보자 싶었지요. 결국 이 곳에서도 방문자 수가 늘어 점차 숨어들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한 편이예요. 특히 실연의 기간 동안엔, (게다가 그 맘 때는 방문자 수도 거의 없었던 까닭에) 아주 그냥 '지대로' 한풀이를 해댔었지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때는 좀 죄송했습니다아. 푸훗  ;)

 

 다른 텍큐 유저분들은 티스토리로 많이 가시는 듯 하던데, 1. 저는 어차피 초대장 줄만한 사람도 없고, 2. 무엇보다도 블로깅 자체에 회의를 안겨다주는 '검열'때문에, 망설여지긴 합니다. 게다가 텍스트큐브를 겪고나니, 좀 더 안정적이고 오래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주변에서 추천하는 개인 홈페이지로 가는 게 나을지, 아니면 편하게(?) 제 3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나을지, 당분간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요.

 

 

 

2010년 6월 27일 일요일

즐거운 글쓰기

 

 <앞서 일기에 써놓기도했던 넷북이 드디어 배송되어 오셨다! 움하하.>

 

 사실 이 모든 '뽐뿌'는 S양 때문이기도 한데, 에세이 쓰기로 골머리를 앓던 그녀가 이윽고 회사의 공용 노트북을 빼내어 카페에서 글을 썼더니 잘 써지더라. 라고 간증한데서 시작된 것. 그동안 사실 동생님 넷북 덕에 어디에서도 글을 쓸 수는 있었던 나였지만, 이 얘기를 듣고나니 좀 더 키감이 좋은 넷북을 하나 장만해 맘껏 그리고 신나게 글을 써보고 싶던 마음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서투른 일꾼이 장비 탓을 하듯, 내 소유가 아니라 파일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불편한 키보드 탓에 오타가 작렬했던 동생님 넷북을 탓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 결국 큰 맘 먹고 일을 쳤다.

 

 막상 물건을 받고 보니, 그지같은 '쌈쏭' 꺼라는 거 빼고는 대 만족이다. 키 감도 넷북치고는 훌륭해 IBM의 아쉬움을 제법 잘 달래주는데다, 사양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 한글 깔리고, 인터넷 잘되면 그만인거지 뭐.ㅋ 포토샵도 좀 버벅대긴 하지만 돌아가고, 가장 중요한 무게는 동생님 것보다 가볍기까지 하니, 나로써는 이만하면 되었다. 더불어 디자인은 흠.. '더이상 심플할 수 없다' 수준이라, 예쁜 스티커 하나 구해 쌈쏭 로고만 가리면 아쉬울 것이 없어보인다. 제작년 촛불 집회때 잔뜩 쟁여놓았던 한겨레 장봉군 화백님 스티커나 얼른 찾아봐야겠다. ㅋ

 

 넷북 받은 기념으로, '안토니 앤 더 존슨스' 글을 마무리. 포틀랜드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고 경쾌하게 키보드를 누르고 있자니, 글쓰는 일이 제법 신나고 즐겁기까지 하다. 등산화를 사야 등산을 좋아하게 되고, 넷북을 사야 글쓰는 일을 즐겨하는 나는 역시나 '물신주의자' 였던 것. ㅋ 도구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신나있는 꼴을 보니, 이 것 참 우습지 아니한가.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건강 검진

 

 

 이번주 월요일부터 회사 안에 건강검진 센터 부스가 들어섰다. 다들 오전부터 부지런하게 서둘러 검진을 받는 모양이던데, 나는 역시나 너무 귀찮아 하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검진 마지막 날인 오늘에야 다녀왔다. 그마저도 선택 검진인 무료 초음파는 귀찮아 패스해버린 상태. 왜 하필이면 몸이 이럴 때 건강 검진이 잡히냔 말이냐. (ㅜ) 나를 건강하게 해주려면, 일단 수면 시간을 좀 더 달라긔. 아님 밥을 좀 사주던가.

 

 한가지 재밌는건, 키가 2년 전에 비해 자그만치 1센치 좀 안되게나 줄었다는 거. ㄷㄷ 명실공히 167대로 진입이다. 아무리 운동을 게을리했더라도, 키가 이렇게나 줄을 수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P.가 쬐그맣다고 놀리는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였어. 하하. 사무실에 들어와 키가 줄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자, 사람들은 노화가 시작된 증거라고 했다. 흐음. 2년에 대강 0.5cm 씩 줄어드는 거라면, 도대체 몇 년이 지나야 나는 소멸되는 걸까?

 

 차마 근육량은 두려워 재보지도 않았다. 몸무게는 꾸준히 줄고 있고, 허리둘레도 감소 중이다. 한마디로 나란 사람은 전체적으로 쪼그라드는 중. 어릴 때는 또래 중에서도 제일 컸던 탓에 쉽게 눈에 띄어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였는데, 확실히 요새는 그런 경험이 적은 걸 보니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균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이게 비단 내 느낌만일까 싶었는데, 이렇게 수치화 된 숫자를 보니 역시 사실이였던 것. 잘하면 앞으로, 혹시 '찾아도 보이지 않는 작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미래를 잠시 꿈꿔보았다.

 

  이번 주말, 그리고 다음 주말이 지나면 나는 얼마나 더 작아지게 되려나? 이렇게 한 없이 작아지다보면, 언젠가는 앨리스처럼 작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 조그만 출구를 찾을 수 있을만큼의 작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는, 어쩌면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훨씬 더 초라함이 수반 될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쪼그라들어 작아져버린 그때가 오면, 그래서 크고 당당한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수그려야만 할 때가 오면, 그 수그린 고개 밑으로 '작은' 그래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어야지. 그때 비로소, 내 발 끄트머리에 작은 출구가 보일지 모른다.

 

 뭐 이런 식으로 서서히 소멸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멋진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나는 커트코베인과는 달라서, 초라하게 고개를 수그린 채로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그냥 이렇게 비겁하고 초라하게 살련다. 그러다 어느날 먼지가 되어버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없어질 거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신경써줄 것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흔적 없는 삶, 누구도 내가 왔다갔는지 모르는 삶. 역시 이런 꿈은 너무 '원대'한 걸까? 

 

2010년 6월 24일 목요일

때로는 조그만 일에 집착할 필요가 있다. (6/24)

 

 

--  지난 주까지만 해도 메슥거림때문에 혼자 있을 때면 연두부로만 끼니를 떼우곤 했는데, 어느 순간 '스르르' 나아져버렸다. 남들은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입맛 없다고 난리던데, 어찌된 게 나는 하루종일 배만 고픈 거다. 점심에는 칼국수 국물까지 통째로 드링킹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12:48)

 

 

--  결국 넷북을 새로 장만하기로 결정! 8개월 째 동생 넷북을 주말마다 들고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스스로가 대단히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게되어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더라. 이왕 마련하기로 한거, '춈 좋은' 노트북 급으로 가느냐. 아니면 만만한 넷북으로 가느냐로 며칠째 끙끙 앓다가... 어차피 세컨인데다, 오로지 '글쓰는' 용도로만 쓰일 게 뻔하니깐, 결국 제일 싸고 제일 무식해보이는 요놈으로 선택. '팬시'한건 디자이너나 여대생들에게나 어울리는거고, 모름지기 작가의 넷북이라면 이렇게 순박해야하는거 아니겠솸?

(말은 이렇게 하고 있으나, 도시바나 소니 바이오가 탐나 눈물 찔끔.)   (13:20)

 

 

--  요사이 씨네마테끄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이다. 최대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피해보겠다고 조금이라도 진지해보이는 영화들은 요리조리 피해다니고 있는 요즈음이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고전 영화는 속된 말로 '땡길 때'가 있다. 이번주 토요일에 상영되는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은 예전부터 스크린으로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영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말 1시는 나에게 너무나 무리한 시간대인 거다. 아쉬운대로 4시 반 '길'로 예매 완료. 끝나고는 모처럼 인사동 '하루'에 가서 열공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잇힝  (14:19)

 

 

--  아직 점심 먹은 지 3시간도 채 안지났는데, 벌써 자그만치 '배가 고프다'.  이럴땐 커피믹스로 배를 채우는 수 밖에 없다. 흙  (15:24)

 

 

--  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서 현미 발아시켜야하는데, 깜빡했다. 약속을 잡아버렸다. 쳇. 웰빙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화. ㄷ (16:12)

 

 

+ 하루종일 배고팠다는 실없는 얘기만 써놨는데, 도대체 방문자수가 이게 왠일.. ㅜ (23:48)

 

The someone is YOU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

 

 

귀종 지상스님이 어느날 풀을 매는데 뱀 한마리가 불쑥 나타나자 호미로 찍어죽였다. 한 사람이 보고 말하되,

"오랫동안 귀종을 듣고 흠모하였더니 다만 행동이 거친 중을 보는구나" 하니, 귀종스님이 말하였다.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악惡'이라 규정하는 행위를 저지르려할 때, 갈등의 기본 근저는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라는 가치 판단을 묻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선악의 구도 내에서 교과서적으로 '이것은 악하니 하지 말아야하는데..'라고 금새 단정지을 수 있다면, 애초에 악한 행위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게 지속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이 것이 과연 '악'이 맞는건지에 대한 물음은 악행을 인정하는 동시에 악행을 부정해야만하는 아이러니다.

 

 악행을 하는데 있어서 보통의 경우는, 개개인 별로 그들만의 소위 합리적인 이유들이 치덕치덕 따라붙게 되는데, 문제는 그 합리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점일 것이다. '정당방위였나 아니면 과잉방위인가' 따위의 문제가 이어지게 되고, 문제는 근원을 파고들어 '그때 왜 그랬을까' 같은 존재 자체의 부정의 방향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혹 또는 이른바 '공범'을 찾거나 호의적 조언자를 구하기 마련인데, 이는 그 합리화 과정이 타인에게도 타당하게보인다는 동의를 구하고 싶은 속내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다, '어떻게 하면 악행을 편히 저지를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나면 결론은 허무하게도 다시 원점으로 회기. '왜 이렇게 바득바득 선행이 아닌 악행을 하려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결국 왜 어떤 것이 선/악 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버린다.

 

 요 며칠, 이러한 싸이클의 고민을 반복하다보니, 흰머리가 오만팔만개쯤 늘었다. 호르몬의 불균형도 심해져, 온 몸과 얼굴, 심지어 두피까지 끈적끈적. 내 존재 자체가 거대한 오니 무덤 속에 빠져있는 기분이다. 결국 고민의 종착은 오롯한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심장은 벌렁거리고, 머리는 어질한 상태. 이러고 있으니, 그 아무리 '디톡스 푸드'만 먹고산다 해서 몸 상태가 나아질리가 있겠는가. 결국은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는 물음을 한 톨 마음의 거리낌없이 던질 수 있는 경지까지, 즉 좀 더 고차원적이고 빈틈없는 '합리화'의 과정을 찾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마음의 상처만 곪게하는, 한갓 감정 나부랭이 따위에 연연치 말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자기자신을 죽이는게 낫지, 애초에 악행을 저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2010년 6월 13일 일요일

잡담

 

 

1. 주말내내, 월드컵 경기 피해다니느라 아주 혼쭐이 났다. 왠간해선 적당히 피해다니다 결국 어쩔 수 없다며 봐버렸을만도 한데, 함께 있던 P.가 흔들리는 의지를 강력히 잡아주었다고나 할까. ㅎ 오늘 모처럼 본가에 와, 부모님이 틀어놓은 TV를 훔쳐보고 있다보니, 새삼스레 월드컵에 대한 '보이콧' 의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섣불리 남들의 행동에 대해 가타부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되도록 멀리서 이 현상들을 지켜보자 다짐하고나니, 이 모든 것들이 우스워지기까지 했다. 엄마한테 살짜쿵 이런 생각들을 얘기했더니, (내 딸이 드디어 아나키가 된건가?)라는 매우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시더라. ㅎ

 

2. 7월부턴 정신 없이 바쁠 것이기에, 6월만이라도 한가함을 즐겨보자 했는데.. 때맞추어 아니나다를까, '게으름증'이 발동했다. 만사가 다 귀찮고 나른해진 까닭에 여전히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이건 뭐. 한창 바쁠 때와 매한가지다. 여름휴가 계획을 짜는 일 조차 귀찮아져서 일단 미뤄두었을 정도. 이렇게 빈둥거리다가 7월이 오면, 분명히 그때가서 후회할 것이 뻔한데... 쯧.

 

3. 본의아니게 락밴드와 정치를 엮어 2주에 한번 글을 쓰는 중인데, 이번 글은 정말이지 쓰기 힘들었다. RATM에 대한 내 애증의 골이 이렇게까지 깊은 줄은 이전엔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이기 때문. 그들의 혁명(?)적 언행들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던 아햏들에게, 그동안 그렇게나 냉소적이었던 건 어쩌면 이같은 이유에서였을거다. 너무나 기대했기에, 너무나 실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마음의 벽을 닫아버렸던 게 아닐까라는 조금은 서글픈 생각들도 들었고, 그래도 이 사람들 나름 치열하게 해왔구나란 생각에 토닥여주고 싶기도 했다. 헤어진 구남친도 아닌데,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일면식도 없는 뮤지션들에게 느끼고 있었다니, 역시나 난 대단한 오바쟁이.

 

4. 요사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찌하면 생활 쓰레기 배출양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이다. 개인적인 문서는 모두 이면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본의아니게 개인정보들도 마구 노출하고 있고, 비닐봉지는 무조건 재사용하겠다고 다짐한 터라 가방에 온갖 비닐봉지들이 굴러다닌다. 분명 애쓰고는 있는데, 배출되는 쓰레기 양을 보고 있자면 그 거대함에 한숨만 나올 지경. 과연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데, 나는 왜이리 거대한걸까?

 

이래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할텐가?

 

 

 

 

 

 

 

 

 

 

 

 

 

 

 

 

 

 

 

 

 

 

 

 

 

(동영상 정보는 이곳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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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8일 화요일

한강 / 이재무

 

 

강물은 이제 범람을 모른다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내면 다스리는 자제력 갖게 된 이후

그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그의 성난 울음 여러 번 세성을 크게 들었다

놓은 적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약발 떨어진 신화

그의 분노 이제 더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늘 권태의 얼굴을 하고 높낮이 없이

저렇듯 고요한 평상심, 일정한 보폭 옮기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지혜를 읽지 않는다

손, 발톱 빠지고 부숭부숭 부은 얼굴

신음만 깊어가는, 우리에 갇힌 짐승 마주 대하며

늦은 밤 강변에 나온 불면의 사내

연민, 회한도 없이 가래 뱉고 침을 뱉는다

생활은 거듭 정직한 자를 울린다

어제의 광영 몇 줄 장식적 수사로 남아 있을 뿐

누구의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어떤 징후,

예감도 없이 강물은 흐르고 꿈도 없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찬란한 야경 품에 안은 강물은

저를 감추지 못하고

다만, 제도의 모범생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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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5일 토요일

오랫만에 '가벼운' 일기.

 

1. 며칠째 여기저기 선거 얘기만 하고 다녔더니, 이젠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똑같은 얘기들을 계속 반복한다는게 좀 우습기도 지루하기도 해서, 뉘앙스를 살짝살짝 바꾸어보기도 했지만, 피곤한건 매한가지. 오늘은 드디어 꽤 인지도 있는 필진(?)들에게서 '심각'하다 싶을 정도의 신파스러운 글들이 등장하기까지 했는데, 역시 이쪽도 내 타입은 아니야 싶더라. '공작'이든 '선동'이든 다 좋은데, 감정으로 두리뭉실 호소하려들면 묘하게 반발심이 생긴다. 그렇다고 완벽한 논리를 내세우는 쪽도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닌 것같고.. '이래저래 나란 사람은 비뚤어졌나봐'라고 고백하니, P.는 그게 예술가들의 특징이라 해주더라. 하핫 ; 뭐야.

 

2. 작년 10월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너무 바쁜 나머지 미용실에 단 차례도 못갔다. 전체 기장은 비뚤비뚤, 샤워하다 혼자 잘라버린 앞머리는 코믹 그 자체.ㅋ 이번주에 드디어 모처럼 시간이 나, 정말이지 '큰 맘먹고', '분풀이하듯' 셋팅을 말았다. 근데, 어이없게도 컬이 거의 나오지 않아버린 것. 흑. 지금 머리카락들이 태어나서 파마약을 한번도 맛보지 못한 '처녀'같은 아이들임을 나도 미용사도 고려치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컬이 희미하냐면 파마한 다음날 출근했는데, 동료 직원들이 머리한 걸 눈치조차 못챌 정도였다.;; 아놔- 나는 항상 이런식인가. 뭘하든 늘 어설퍼. ㅋ

 

3. 드디어 여름방학용 강좌 스케쥴이 오픈되었는데, 단연 눈에 띄는건 문학강좌! 을유문화사 전집에 유독 집착하는 스타일주의자로서(읭?) 슈니츨러의 라이겐을 강좌 핑계로 꼼꼼히 읽을 기회다 싶어 아주 약간 신이 나있다. 더불어 '몽유병자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고, 이 기회에 책장 한구석에서 썩어가는 곰브리치 미술사도 펼쳐볼 수 있을테니 좋다. 좋아! 하지만, 문제는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이 어마어마한 책을 과연 나같은 정신사나운 얘가 읽을 수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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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시나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일은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워낙에 욕심많은 소심증 환자라 그런지, 일단 누군가가 유심히 볼 글이라 생각하면, 쉽게 쓸 글도 끙끙 싸매고 고심하게 된다. 그 바빴던 지난 몇 달간, 하다못해 블로그에 쪽글이라도 쓸 수 있었던건, 이 블로그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안들어왔기 때문이였을 수도.. 헌데, 자꾸 공개된 장소에 이름을 걸고 글을 써야하는 일이 늘어나니, 요새는 첫 문장 운을 떼는 일 조차 쉽지 않아졌다. 게다가 '대운'의 해를 기념해 써보기로 결심한 편혜영/카프카 글은 심지어 아직까지도 전혀 구상조차 하지 못한 상태. 이러니 하롱베이고 싸파고, 여름 휴가를 가야겠다는 결심이 계속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후회할 것만 같아. 게다가 하루 4시간 수면 패턴이 장장 6개월간 계속되고 있으니, 체력도 바닥이 뭐야, 심연까지 다다른 상태고... 아유. 누군가 시간표라도 짜주었으면 좋겠다능. 아님 하루를 48시간으로 늘려주시던가..

 

5. 8월달에 예정된 국제워크샵을 위해 '타니가와 간'의 글들을 매주 읽는 중인데, 이 사람 글 정말이지 묘하다. 뿌연 글들을 이미지와 감각으로 읽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다분히 '논리적'인 사람들은 읽다가 미치겠다 싶을 정도. 그래도 문학 세미나를 꾸준히 해왔다하는 나 역시,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님의 침묵의 님은 국가 혹은 연인'등으로 도식화해 공부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하지만, 레토릭으로만 글을 읽기 싫다는 입장에는 역시나 또다시 묘하게 반발감이 들어 참느라 혼났다. 시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오히려 쉬울텐데... 다른건 다 떠나, 이해고 나발이고, 죽기 전 이런 문장을 흉내라도 내볼수 있으려나 싶어져, 매주 가슴이 부글부글해진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 오늘 세미나 내내 머리 속에서 맴돌아 혼났다.

 

 

2010년 6월 4일 금요일

포크 크루세이더즈 - イムジン河

 

오늘 밤, 임진강을 흥얼거리고 있다면

나는 역시 신파인걸까요?

아님 역시 좌파인걸까요?(ㅋ)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선거 개표

 

아유. 이시간까지도 퇴근을 못하고 있는 남친님이 안쓰러워서,

기사라도 제일 먼저 봐줘야지 했는데,

졸려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 ;;

대신 피로회복용 '맛사지'나 실컷 해주어야쥐. :p

세타필 잔뜩 챙겨가야겠다.

 

그나저나 선거 기간 내내 그리고 개표를 지켜보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바그너의 음악만이 머릿 속에 맴돌더라.

참으로 폭력적인 사람들의 폭력적인 세상.

 

옥신각신.

소모적인 '키워'질도 이제 이것으로 끝!

어차피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내뱉고 있는 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선, 부르주아스럽더라도 '똘레랑스' 정신으로 무마할 수 밖에 없는게다. 뭐. 그것도 싫다면 평생 죽을 때까지 원망만하며 살던가. 네 맘대로 하세용~!

 

 

2010년 6월 1일 화요일

반성 3부작

 

1.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면 그림자지는 '고요한 물결'같은 마음으로 지내보자고 결심한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흐려져 큰 일이다. 미운 말들을 내뱉는 입들을 향해 똑같이 미운 말을 내뱉어봤자, 결국은 함께 시궁창에 뒹구는 꼴에 다름아닌 것을... 5월에는 아무래도 시를 너무 적게 읽었던 탓일꺼야. 음악도 너무 하드한 것들만 들었다. 정서의 순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2. 여름 휴가 계획은 결국 아직까지도 결정짓지 못한 상태. 주말에는 EBS 세계테마기행 베트남 사파 편을 훑었는데, P.는 그냥 하노이 시내에서 '관광'이나 하라고, 저 곳을 어찌 혼자 가겠냐는 우려를 아주 약간 내비쳤다. 사파에서 겪게될 '감정적 스트레스'와 그 휴유증을 예상하자니, 확실히 겁이 나긴 한다. 게다가 역시나 올해는 이렇게 '사치'스럽게 돌아다닐 때가 아니다라는 자책의 감정도 여전하고... 그냥 어디 한적한 데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올까. 한시가 바쁜 요즈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정말 요새 바람이 들긴 들었는지, 수요일에는 모처럼 산이라도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하루종일 북한산 산행 코스만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오후에 비로소 번뜩 정신이 들어, 인터넷 창을 모두 끄고 '수요일엔 닥치고 연구실'을 결심. 세상에 어디 놀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다들 바람쐬고 싶고 놀고 싶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텐데, 왜 이리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마냥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새같은 때 일수록 한 자라도 더 들여다보고 더 많이 생각해야하는 것인데... ㅜ

 

3. 좀 더 세심하게, 워딩 그대로 꼼꼼히 듣고 기억해주어야한다. 요새들어 내 몸 힘들다는 핑계로, 너무 대강대강해왔다. 워낙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 한번 안하는 친구이니만큼, 좀 더 예민하게 눈치를 봐야하는 건데... 요새같아서는 가뜩이나 습관처럼 내뱉는 '미이안'이 제곱 이상 더 늘어버린듯. 잘해야지. 언제나 '쉘터' 역할은 내 것이다. 유독 눈이 많았던 지난 해 겨울, 어느 새벽의 밤을 'All I ask of you' 로 떠올리고 있자니, 전의마저 불타오르는 거다. ㅎ

 

2010년 5월 30일 일요일

우리는 어디서나 / 오규원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앉으면 중심이 다시 잡힌다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일어서기 위해 앉는다

 

만나기 위해서도 앉고

협잡을 위해서도 앉고

 

의자 위에도 앉고

책상 옆에도 앉듯

역사의 밑바닥에도 앉는다

 

가볍게도 앉고

무겁게도 앉고

 

청탁불문 장소불문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밑을 보기 위해서도 앉고

바닥을 보기 위해서도 앉는다

 

바로 보기 위해 어깨를 낮추듯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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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9일 토요일

Skunk anansie - Charlie Big Potato

 

 

"오르가즘 후의 허무(Post Orgasimic Chill)"

 

 

 오늘은 락밴드 역사상(?) 가장 마이너했기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풍겼던 뮤지션, 스컹크 아난시 (Skunk Anansie)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르가즘 후의 허무(Post Orgasimic Chill)". 이 놀랍도록 섹시한(?) 앨범의 타이틀이 99년 음악잡지 '핫뮤직'에서 처음 언급되었을 때만 해도, 난 이들이 그저 90년대 한창 봇물터지듯 흘러나오던, 다분히 퇴폐적인 밴드중 하나일 꺼라 섣불리 짐작했었다. 헌데 보컬 '스킨'의 프로필을 보아하니, 반나치주의 운동과 동성 연애 지지 운동에 투신했던 경력이 눈에 띠었다. 게다가 이 여자, 누가봐도 소울(soul)스럽다 싶은 음색으로 무장한 '흑인 락 여성 보컬리스트'였던 것.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운 락 음반 시장에서 일단 비쥬얼(?)부터 색다른 이 밴드, 지극히 다의적인 의미를 띄는 가사들도 그렇고, 도무지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사운드도 그렇고, 뭔가 심상치 않아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온갖 '마이너'한 요소들로 무장한 '전사'의 이미지가 풍겼던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위의 앨범, 3집 'Post Orgasmic Chill'을 끝으로 해체의 길을 걷게된다. 94년, 백인 남성 위주의 브릿팝이 한창 절정이던 런던에서 결성되어, 한때는 이름이 꽤 알려진 영국의 음악 잡지 '커랭(kerrang)'에서 'Best British Band'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잘나가던 밴드였음에도, 마치 앨범의 타이틀 마냥 2001년 돌연 해체해버린 것이다. 이유는 다름아닌 지나친 '상업화'의 휴유증때문이었다. 이후 보컬 '스킨'은 재기를 노리고 머리카락까지 기르며 달달한(?) 목소리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지만, 대중들에게 이전만큼의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한다.

 

 

 대중음악이 온전히 정치적일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수순을 밟은 뮤지션들이 어디 이들뿐이랴. "Killing in the name" 같은 정치적 선전 문구로 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 같은 밴드 조차, 국내 내한공연에서 수익성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돌아갔다는 사실로 미루어볼때, 상업화를 온전히 배재한 '정치적'인 대중음악이란게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인지도가 올라가고 자신들의 음악을 '메이져'한 대형 음반사에서 관리하게 되면서부터, 대부분의 모든 락밴드는 본연의 '마이너'함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내가 블랙 레즈비언이기에 'Shut up'하라 강요할 수 없다'고 외치던 '스킨'의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외쳐지는 순간부터 자본의 또다른 상품이 되어버렸다.

 

 

 어디 음악만 그러하겠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것'이 시詩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지는 순간' 시도 그 힘을 잃게 될지 모른다.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된 순간' 이들 역시 더이상 그것이 애초에 지향하던 순수함을 잃게 되었던 것처럼. 그러나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바로 정치성이라면, 그것도 세장 모든 '마이너'들의 정치적 동력이라면? '잃어버린 시구를 찾아 오늘도 나는 거리에 나선다'던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의 말처럼, 끊임없이 '보려는' 그리고 '들리게하려는' 노력 안에서 락, 그리고 대중음악의 정치성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뜬' 뮤지션들이 '상업화의 후유증'과 '분출된 정치적 힘' 사이에서 헤매야 했던 그 고민은 가볍지 않은 것일 게다. 최근 Skunk Anansie의 재결합 소식이 들려오던데, 이들이 그간의 공백을 깨고 얼마나 '들리게 하려는' 노력으로 무장했을지, 사뭇 기대가 되기도 한다.

 

 

찰리네 큰 감자

 

 이번 선곡은 Post Orgasmic Chill 앨범의 첫번째 싱글발표곡, 'Charlie Big Potato'이다. '찰리의 꿈'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과 언론의 세뇌에 맞서 '그 추악한 진실을 밝혀라'고 외치는 곡이다.  TV만 틀었다하면 되풀이되는 '북한 + 천안함' 관련 보도를 듣고 있자니, 요사이 특히 이 곡의 의미가 좀 더 절절해진다.

 

 

 선거의 시작에 때 맞추어 발표된, 일명 '파란 매직 1번'의 천안함 사태 진상조사 결과를 두고, 처음엔 그 발상 자체의 어이없음에 한바탕 실소를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한 편의 저질 코메디같은 시나리오에 과연 누가 세뇌되고 누가 동요하랴 싶기까지 했던 것. 하지만 문제는 정부의 이같은 책략에 소위 보수 언론들의 해괴망측한 상상력이 덧붙여지면서, 이들이 의도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천안함 조사를 불신하는 사람은 친북좌파이거나 원천적 안티세력'이라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고, 언론은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도 해볼만하다'라는 투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단순히 '이런 식으로 큰 웃음 주지는 마시라고' 하기엔, 사태가 심상치 않아보인다. 주가가 폭락했고, 환율마저 치솟았으며, 외환 투기의 기미마저 나타나고 있다.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서 천안함 발표전까지만 해도 주춤했던 기존 세력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강의 물 길을 틀어막고, 그 강에서 살고 있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며, '이것이 녹색성장'이다 외치는 정부. 그들의 해괴한 논리는 천안함 사태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보고있자면 기분이 무척이나 더러워지는 저 기묘한 요술들을 텔레비젼 전원을 끄듯 꺼버리고 싶어지는 요즈음이다.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꽃세상

 

장미와 수국과 작약의 계절 5월.

이 화려한 꽃세상때문에 숨이 터억 막힐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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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이 도지다.

 

 

  아무래도 방랑벽이 도진 듯하다. 생명줄이라도 되는양 아끼던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된지 이미 8개월이 지났음에도 연장할 생각을 안할만큼, 최근 몇 년,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꽤나 '금욕적'인 마인드를 유지한 채로 잘 지내왔었는데... 두번 다시 강남역 마실나가듯 해외로 여행 가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한 굳은 맹세를 그래도 그간 제법 잘 지켜왔던 것이다. 실제로  제작년 여름휴가는 촛불에, 작년 여름휴가는 스피노자와 함께 흘려보냈으며, 어쩌다 다가온 황금연휴에도 책읽기에 몰입하거나, 집청소 좀 해보겠다고(!) 몸부림을 쳤을 뿐이니, 내심 장하다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월요일 오전, S양이 메신져로 'ㄱ쌤이 열하에 간다는데 따라갈까봐요'라는 멘션을 날리고부터, 내 안의 나르치스적 기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골드문트가 되돌아오셨다. ㅎ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달 넘게 남은 여름휴가 계획에 돌입하게 되버린 것. 언젠가부터 가고싶은 곳 0순위인 뻬쩨르부르크는 지금은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는 상황이므로 일단 패스했고, 오래 전부터 막연히 꿈꾸던 국내 일주를 실행하느냐와 근교(?) 해외 지역을 나갔다오는 문제를 놓고 저울질이 시작되었다. 근교 해외지역으로는 아직까지 항공권 여유분이 제법 넉넉한데다 가격까지 매우 훌륭하신 베트남항공의 특판가에 힘입어, 북부 베트남 지역이 제 1순위로 물망에 올랐다. 일단 베트남은 하루 5불로 생활이 가능한 곳이니만큼, 기본 경비 지출에 있어서는 양쪽이 의외로 비슷한 수준.

 

 굳이 기름을 낭비하며 해외로 여행을 가야만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가. 라는 다분히 윤리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이 머릿 속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마음이 점차 해외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누가 이렇게 'X같은'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의 알프스라고 불리우는 사파와 그 인근 지역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중인데, 이를테면 '여행객으로 인해 오염된 현지의 경제 혹은 관계들'같은 주제에 대해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지는거다. 저널리스트도 아닌 여행객 신분으로 다녀오겠다면서, 이 얼마나 '개같은' 역설과 허세이겠냐마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느낄 것인가'이다. '인간애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일정이 됬든, '착한 여행이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과정이 됬든, 무언가 문제 의식을 잔뜩 품은 채로 돌아올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주 내로는 답을 내야 뭔가 추진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텐데,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 조바심까지 난다. 하지만 며칠째 38L짜리 오스프리 가방과 45L짜리 '노스'페이스 배낭을 놓고 고민하다, 오늘 결국 나도 모르게 45L짜리를 주문해놓긴 했으니, 마음은 이미 베트남쪽으로 기운게 확실해 보이기는 하는데... ㅋ 에라이. 나 좀 속물같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우리를 고쳐줄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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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에서 왔다는 이수명 씨(가명, 34)는 "솔직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를 했었는데, 재임기간 동안 많이 실망을 했었고, 그래서 작년에는 추모 행사에 한 번도 안 갔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참여한 이유를 두고 "개인적으로 이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왔다"며 "다른 사람들도 그로 인해 대부분 모인 거 같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노무현 무덤을 파헤치는 것만은 막아달라 / 프레시안 10.5.23 )

 

밤새 혼탁해하다가, 아침에 이 기사로 보는 순간 무언가 명백해진 기분이 들었다. 인터뷰대로라면, 실제로 그렇든 안그렇든, 노무현은 반 MBㆍ반민주주의에 대한 일종의 아이콘 내지는 기호가 되어있는 게 분명한 것이고, 그것이 지극히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 어차피 산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열 낼 필요가 있을까 싶어, 조용히 '면벽수행'하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을 덧붙인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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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9일 수요일

울음이 타는 강

 

강이 더 망가지기 전에 한번 다녀와요

 

그동안 강의 비명소리를 진즉부터 듣고 있었음에도 선뜻 현장을 향해 걸음을 내딛지 못했던 건 사소한 일상을 핑계로 한 ‘귀차니즘’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따라서 휴일 아침의 이른 새벽, 단잠을 포기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는 게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침대로 돌아가고픈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강을 향하며 ‘강이 더 망가지기 전에..’라는 문구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내가 낙동강을 처음 밟았던 건 5년 전 이 맘 때이다. 우연히 들린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뒷 켠에서 찾게 된 낙동강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이라는 김소월의 시구가 단순히 머릿속에서 그려낸 묘사가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왜 학창시절 한국지리 교과서에서는 강의 사구에 대해 설명하며 이것들이 이렇게나 처연하고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걸까. 이렇게 내가 처음 만난 강은 선인들이 이야기하던 자연과의 물아일체가 어떤 의미였는지 그 뜻을 절실히 깨달을 정도로 감동적이고도 슬픈 장소였다. 이후 일상의 험한 일에 지칠 때면 무엇보다 먼저 강을 찾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강을 찾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쉬이 흐르는 강물에 상념을 떠내려 보낼 수 있었으니 강은 내게 있어 일종의 치유제였던 셈이다.

 

이렇게 추억을 더듬으며 낙동강으로 향하고 있자니 여러 기억들을 품고 있는 강이 얼마나 망가져있을지를 상상하는 일이란 단순히 무거운 몸을 뛰어넘는 괴로운 과정일 수 있겠다는 망설임이 찾아왔다. 한때, 지금은 헤어진 연인과 함께 걷던 골목길이 어느 순간 불도저로 파헤쳐져 있음을 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서러움과 비슷한 감정이다. 어쩌면 강을 향한 걸음을 미뤄왔던 이유라 내세우고 있던 일상의 피로함은 그저 둘러대기 좋은 핑계였을 수도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목도한다는 것’, 그 잔인한 애상의 감정이 선사할 마음의 피로함과 내 작은 발걸음이 사라져가는 그것을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시작부터 마음이 여러모로 착잡해졌다.

 

 

 

눈물과 분노의 현장

 

얼마쯤 달렸을까. 이윽고 버스가 도착한 곳은 낙동강 강창교 부근이다. 구불구불 흐르는 강과 빛나는 모래톱에 감탄했던 건 잠시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진 모래와 강창교 언저리에 고여있던 탁한 색깔의 작은 웅덩이가 눈에 띄었다. 어떻다는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부쩍 감성이 메마르고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절절한 낭만주의 시구를 읽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파헤쳐진 강 언저리를 보자마자 단 몇 초 만에 고였던 것이다.

 

이어 목도한 상주보 공사현장은 강창교를 바라보며 한껏 유약해진 감성에 분노의 불을 지폈다. 언제고 당연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곳이 사라져있었고 그 자리에는 도심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토목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이밀고 있자니 안전모를 쓴 공사관계자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아가씨. 거기 뱀 나오는 데야. 얼른 비켜. 뱀 나와!”

 

그 순진한 위협에 헛웃음이 터졌지만 입 안은 씁쓸해졌다. 공사를 주도하는 현 정권이라는 게 이런 식이다. 다시 말해 ‘죽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 ‘다가올(?)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출처 불명의 ‘물 부족 국가’라는 주장을 통해 우릴 겁박하며 4대강 사업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 도래하지 않은 위험을 이용한 위협으로 자신의 이권을 위한 사업을 너무 쉽게 합리화해 버린다. 그러나 그 가공의 위협이라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광경을 직접 보고 있는 누구에게 들이댔을 때 힘을 잃는다. ‘뱀 나오니 강가에 가지 말라’는 것처럼 ‘실소’가 나왔지만, 저들은 스스로 그 순진한 위협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창조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강을 위해서는 누가 울어줄 것인가

 


상주보 현장을 떠나 일행은 자전거로는 전혀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자전거도로를 걸으며 청룡사 전망대로 향했다. 저 멀리 보이는 낙동강의 모래톱, 그 한가운데 오리섬이 있다. 오리섬은 한때 버드나무 숲이 울창했던 곳으로, 수십 마리의 노루와 수많은 철새가 오가던 생태의 보고였던 곳이다. 이곳을 밀어내고, ‘동물원’과 같은 생태 공원을 조성하려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대한민국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는 고위 관료가 한 말이 떠올랐다. 4대강을 ‘어항’으로 만들겠다는 그 솔직한 속내가.

 

4대강 사업으로 이미 파괴되거나 파괴될 것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다. 이대로라면 멸종의 길을 걷게 될 단양쑥부쟁이 군락이나 떼죽음당한 수천마리의 물고기를 흙으로 덮어 은폐하려는 시도는 이미 언론으로 보도된 바 있다. 정권은 “공사 기간 중에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따르겠지만, 인공적인 생태 공원이 조성되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때 자리 잡게 될 생명들로 지금 살육당하는 생명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논리일까. 쉬이 납득할 수 없지만, 그래,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사라진 강과 사라질 기억들은 누가 어떻게 복원해줄까. 울어 주기는 할까?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보것네.

- (울음이 타는 가을 江 / 박재삼)

흔히, 생명이 없는 것들은 생명이 있는 것들에 그 우선순위를 빼앗겨 먼저 희생되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지곤 한다. 또한 생명들 간에 있어서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한계로, ‘사람이 먼저다’라는 논리를 ‘생명에는 우선순위가 없다’라는 논리보다 앞세우곤 한다. 인지할 수 없는, 우리가 아닌 것들의 아픔과, 파괴되는 우리의 감성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별 것 아닌 일’ 이라며 망각해버린다. 그래야 좀 더 나은 삶이 도래한다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란 게 필요하다고 주입받으며 살아왔던 탓일 수도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찾았던 기억 속의 강, 그때의 나를 대신해 하염없이 울어주던 바로 그 강 때문에, 이제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기가 막힌 살육을 그만해달라고, 그 아스라했던 흔적들을 지우지 말아달라고, 눈물로 외치고 돌아오는 길, 노을로 붉게 물든 낙동강에는 울음이 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을 강, 내게는 감성의 회복제이자 치유제였던 강, 그 강이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위클리 수유너머 게재)

2010년 5월 17일 월요일

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이상의 '날개'

 

 

변신 전의 그레고르 vs 외출 전의 ‘나’

 

어느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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