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아빠 보고시퍼라.

 

 

 

봄이 밖에서 오면 / 백무산

 

 

봄을 기다리지 않는 겨울이 있었을까

그러나 지금 오는 저 봄을

피하고 싶어라 두려워라

 

봄이 봄이 밖에서 오면

병균이 먼저 풀리지

삿된 꿈만 앞다투어 깨어나지

 

아직은 아니야

꿈이 아직 익지 않은데

그대 아직 온단 말 없는데

 

아직은 아니야

봄이 밖에서 오면

욕망만 우북이 자라버리지

헛된 꿈만 앞다투어 피어나지

 

아직은 멀었어

더 쓰러져야 돼

 

안에서 부리로 쪼을 때까지

어둠에서 손짓해 부를 때까지

 

아직은 더 무너져야 해

저기 저 무너지고 있는 것 좀 보아

 

그런데 저기 저건 무어냐

아뿔사, 저 무성하게 피어난 것들은 안이냐 밖이냐

푸르게 흔들고 있는 나무야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들아

 

(초심,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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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요 암요 브람스

 

 

2010년 4월 28일 수요일

소외의 시작점

 

 

 모름지기 사람마다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데 있어 '집중'하는 부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내 그것은 언제나 소설의 맨 앞, 첫 문단이다. 비록 일면식 없는 작가지만, 작품이란 매개로 어찌되었든 우리는 만나게 된 것이라할 때, 첫 문단은 만남에 있어 첫 인상과 같다. 비단 읽는 데 있어서뿐 아니라, 쓰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터. 새로운 만남 전, 어떠한 첫 인상으로 보여질까를 두고 고심하는 일을 작가라고 어디 피할 수 있겠는가? 흔히들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첫 문장이다라고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K가 도착했을 땐 늦은 저녁이었다. 마을은 눈 속에 깊이 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언덕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어렴풋이나마 큰 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불빛도 없었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허공으로 보이는 데를 쳐다보았다. (성)

 

열일곱 살의 카알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양친은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그가 타고 온 배가 속도를 낮추어 뉴욕 항에 들어오고 있을 때, 그는 멀리서부터 관찰하고 있던 자유의 여신상을 쳐다보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갑자기 더 강렬해진 햇빛을 받는 듯 했다. 칼을 든 팔은 마치 방금 치켜든 것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여신상 주위에는 바람이 한가하게 불었다.(실종자)

 

 카프카의 일명 '소외 3부작'중 <성>과 <실종자>의 시작 첫 문단들이다. <성>의 첫 문단은 그 은유의 이미지들이 주는 효과때문에 다분히 시詩적이다. 안개와 어둠으로 뿌옇고 불빛이라고는 하나 없는 험난하고도 지리한 성으로의 길, 설사 그 여정을 다 마친다 해도 성이 결국은 허공일 뿐임을 첫 문단에서 모조리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실종자> 역시 마찬가지다. 멀리서부터 관찰하던 자유의 여신상으로 대변되는 미국(내지는 산업사회). 하지만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는 것 같던 그것을 가까이서 보니, 자유의 여신상에는 횃불이 아닌 칼이 쥐어져있는 것이다. 이 두 작품의 첫 문단들은 결말에의 예고 내지는 이어질 과정에 대한 복선 역할을 충분히 수행함과 동시에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훌륭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축적인 시어를 보는 것 같다.

 

 

누군가 요제프 카를 모함한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도 어느 날 아침 그가 체포되었으니 말이다.(소송)

 

 이러한 까닭에 <소송>의 첫 문단은 신선함을 넘어 조금은 당혹스럽다.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는 '죄'와 '법률'에 대한 묘하고 기괴한 메타포를 어느정도 함축하고 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간결한 것이다. 물론 소외 3부작 모두 기존의 익숙했던 시공간에서 주인공들이 별안간 탈락되면서 작품이 시작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확실히 앞 선 두 작품에 비해 <소송>의 그것은 특이해보인다.

 

 카프카의 세 작품의 이러한 첫 문단의 차이에서 흥미로운 것은 <성>,<실종자>,<소송> 순으로 결말의 완성 여부가 다르다는 점이다. <성>은 이론의 여지 없이 미완성된 작품이며, <실종자>는 평론가들에 따라서 이 자체로 완성이라 보는 의견이 존재하긴 하나, 미완의 여지가 분명하다 하겠다. 하지만, <소송>은 주인공 요제프 카가 결국 '개처럼' 죽는다는 결말이 확실한 작품. 이렇게 결말을 짜맞추어 생각해보니, 좀 신기하다 싶지 않은가?

 

 알고보니, 카프카는 <소송>을 집필하며 첫 챕터 '체포'를 쓰자마자, 중간의 다른 과정은 건너뛴 채, 바로 마지막 챕터 '종말'부터 써내려갔다고 한다. 시작점과 끝점을 모두 결정해놓고서, 소송과정을 그 안에 채워넣은 셈이다. 카프카가 죽기 전, 브로트에게 미완성 원고들은 부디 태워 없애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반추할 때, 그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소설들에 대해 스스로 상당한 노이로제에 시달렸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미완의 집필 과정이 주는 괴로움을 극복해보고자 했던 의도였을까? 어찌되었든 이러한 특이한 작법 때문에 <소송>은 완성되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Jai guru de va om

 

 지난 주말, 모처럼 덜그럭거리는 국철 노선을 타고 인천에 다녀왔다. 지칠 때까지 걷고, 부데낄 때까지 먹고, 취할 때까지 마시고 돌아오는 길, 조금은 피로하고 조금은 쓰라리다는 생각도 잠시.. 앞으로 이러한 작은 산책들을 자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길가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이미지들과 그들이 선사하는 큰 생각들, 이보다 더 내 '엔트로피'의 세계를 뒤흔드는 '에너지'가 어디있겠나.

 

 여행이어도 좋고, 산책이어도 좋다. 님과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다.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걷는 한걸음 한걸음에서, 그간 보이지 않던 '산다는 것'의 초침이 배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낯선 곳을 배회한다는 것. 그 자극이 주는 스트레스와 그것이 결합된 후 또다시 구축된 엔트로피를 지켜본다는 것. 솔직히 이 모든 과정들이 구역질날만큼 혐오스러웠던 때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것들이 두렵다고 그저 지금의 평화로운 상태에만 머무른다면, 결국 뜨뜻미지근해지다못해 식어가거나. 아니면 폭발하거나. 이 두개의 파멸을 피할 수 없을 터. 그러니 어쩌겠나. 쉴세 없이 무질서한 그래서 고통스러운 길로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은 역시나 부르주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치졸한 변명이겠지만) 다시 한번 뜨거워지고 싶다. 그저 단순히 낭만주의의 태양과 같은 이상을 쫓는다해도, 혹은 더럽고 구역질나는 쥐새끼같은 세상에 욕지거리를 퍼붓는다해도 뜨거워지는데는 한계가 있다. 안전을 위협하는 혼돈의 채찍. 더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그 고통의 흙먼지를 뒤집어 쓰는 일로 나의 뜨거움을 되찾고 싶다. 변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우선 그 무엇보다 뜨거워지자. 적당히 따뜻하다고 자위하는 일은 집어치우고 뜨거워져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더이상 살기가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봄 나들이

 

 다음 주면 자그만치 5월인데.. 어찌된 게, 날씨가 아직까지 춥다. 몸이 추우니 잔뜩 핀 꽃을 보고도 봄이 오긴 온건가? 의심하기 바쁘다. 그나마 일정이 한가한 4월에는, (여행까진 바라지도 않아 ㅜ) 근교로 찐하게 나들이나 다녀오자 했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이렇다보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더라. (놀러가는 걸 미루다니, 이건 내 생애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다음 달 5월은 비록 연휴가 두 번이나 껴있는 보기 드물게 착한 달이긴 하나, 연구실엔 새로 시작되는 세미나가 두 개나 있고, 6월 지방 선거를 앞 둔 달이기도 해, 뭔가 굉장히 분주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어쩌겠나. 부랴부랴 마지막주에 얼른 다녀와야지. ;)

 

 예전같았으면, 미리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가며 지도를 출력해, 동선마다 색칠하고, 노트에 오려 붙이는.. 아주 난리부르스를 추었을텐데... 이번엔 아주 살짝 귀찮기도 했고, 아이폰이 주는 무한한 신뢰에 힘입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아. 솔직히 말하자면 사전 조사가 뭐야. 당장 오늘 저녁에 떠나기로 해놓고는, 아직까지 어디로 갈지조차 정해놓지 않은 상태.. 하지만, 나들이가 좋은거지, 갈 곳이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싶어져, 장소 결정에 대해서는 전권을 남친님께 모두 위임해버렸다. 말그대로 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쫄래쫄래 쫓아서 놀러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이참. 신나라)

 

 

 그나저나 이번 주말은 이렇게 지내면 되고.. 다음 일요일에는 그렇게나 가고팠던 낙동강 답사 차례다. 이런 나들이의 연속, 너무 좋으시다아-.  미리 갔다온 사람들 말로는 실제 망가진 강을 보면 울분이 치솟아 눈물까지 난다던데... 아직까지 우리들은 온통 봄소풍이라며 나들이 기분으로 신나있는 상태.. 이러라고 오라는 강이 아닐텐데, 온통 간식 준비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으니, 이를 어쩌냔 말이다. ㅋ

 

(혹여나 함께 가시고픈 분이 있다면 이 곳 참조! 우리 함께 소풍가자구요. 잇힝)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구겨진 마음엔 바흐가 명약

 

 

모른다 / 김소연

 

 

꽃들이 지는 것은

안 보는 편이 좋다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힌

나비들의 노고가 다했으므로

외로운 것이 나비임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돌들도 운다

꽃잎이 진다고

시끄럽게 운다

 

대화는 잊는 편이 좋다

대화의 너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외롭다고 발화할 때

그 말이 어디에서 발성되는지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눈물이라는 뼈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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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거리에서) 우네.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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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가 미쳐.

 

 

주말 내내 일명 '국ㅅ샹니은 허세' 놀이.

이거원, 차마 부끄러워 오래는 못놀겠다. 하하

 

샤이닝소프트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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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6일 금요일

솔라리스

 

 

 우리와는 도저히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보이는, 그래서 전혀 그 속내를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 라는게 있다. 이를테면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와 만난다거나, 모든 것을 떠내려보낼 듯한 거센 물살을 보게될 때 느끼는 감정들을 떠올리면 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매혹적이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두려운 존재. 그 감동과 두려움들은 종종 우리를 온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끔 사로잡곤 한다. 이것이 칸트가 소위 말하던 '숭고미美' 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항상 함께 하는 연인 같은 '근접한 타자'의 경우는 어떠할까? 흔히 서로의 비밀을 가장 농밀하게 공유하는 사이인 연인 내지는 부부라는 관계에서는, 상대에 대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쉽게 간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누구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근접한 타자에 대한 불가해성 역시, 비록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어떤 특정한 사건이 계기가 되면 마치 '괴물처럼'  두려움이란 실체를 드러내곤 한다.

 

 미스테리하고 기괴해보이는 솔라리스 행성에서 주인공 켈빈이 마주친 '방문자'는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레아'다. 문제는 그녀가 분명히 죽었던 사람이라는 것. 켈빈과 말다툼 후에 자살로 목숨을 버린 레아가 솔라리스 행성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슬슬 좀 무서워지지 않나?) 켈빈이 레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지 못한다. 레아가 진짜 레아인지 조차 매순간마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애틋하다가도 어느 순간 소스라치게 두려운 그녀. 게다가 레아는 한시도 켈빈과 떨어져있지 않으려 내내 주변에서 머무르고 있다. (이래도 정말 무섭지 않나?ㅋ)

 

 지젝은 '내부로부터 온 괴물'이란 저작에서, 과도하고 절대적인 근접성이 완벽한 타자성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소설에서 칸트의 '물자체' 내지는 '절대적인 타자'의 역할을 하는 솔라리스의 바다가 주는 두려움이나, 항시 곁에 붙어있는 '근접한 타자(이웃)'이 주는 두려움은 그 성질이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뿐이다. 켈빈이 레아를 다시 잃고 솔라리스의 바다를 향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 것. 하지만 바닷물은 그를 에워쌀 뿐, 그들 사이에는 결코 제로가 될 수 없는 '거리감'이란 게 존재한다.

 

 

+ 강좌때문에 단 이틀 만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후다닥 읽어치웠는데, 아놔- 이런 훌륭한 소설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먹듯 후딱 치워버리다니... 진심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어떻게 대강 정리라도 해놓으려 했지만, 이 놈의 밥벌이 공장은 이번주에 특히나 쉴 틈을 안주시네. 일단 대강 써놓고, 나머지는 지젝의 강의로 대체.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두다멜의 말러

 

근 이주 째 말러에게 푹빠져 정신줄을 놓은 상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지.. 올해는 말러 탄생 150주년이기도 하다긔!!

살다살다 올해만큼 풍성한 생신년은 또 처음이시다. 'ㅅ'

 

+

두다멜을 보고있자면, 그 땀내음이 어느새 내 콧잔등에까지 전해지고, 이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저런게 바로 예술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예술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

기교의 그것보다는, 경계 밖의 소외된 자들을 향한 예술을 실천하는 그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낸다.

아암- 모름지기 음악선생님이라면 저 정도는 되셔야지...

마에스트로정은 좀 북흐러워하셔야한다.

 

그나저나 두다멜과 함께 연주하는 아이들이 참으로 행복해보인다. ;)

총과 칼 대신 음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꿈꿔보며...

God bless Benesuela, God bless the World.

 

답창애(答蒼厓) / 박지원, 대힐자(對詰者) / 허균

 

 

저물녘에 용수산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으나 그대는 오지 않고

강물만 동쪽에서 흘러와 어디론가 흘러갔습니다.

밤이 깊어 달빛 비친 강물에 배를 띄워 돌아와 보니,

정자 아래 고목나무가 하얗게 사람처럼 서있기에

나는 또 그대가 거기에 먼저 와 있는가 의심했었다오.

 

(창애에게 답함 / 연암집)

 

 

그러나 두세 사람만은 세상이 뭐라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가 지닌 재능을 좋아하여 한정없이 제게 사랑을 베풉니다. 저를 찾아와 술을 마셔 취하고 제가 그들을 부르면 그들도 저를 찾습니다. 제가 시를 지으면 뒤따라 화답시를 짓는데, 작품 한 편 한 편이 빼어난 구슬이라서, 화제火齊와 목난木難이요, 장미와 산호지요. 제가 지닌 보물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면 그뿐이니 남이 인정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지요. 국풍國風을 친구쯤 여기고 이소離騷를 종으로 알면서, 위대한 문학을 하자 뻐기며 세상을 비좁게 여기지요. 어긋난 방법으로 벼슬하지 말자고 하며, 제게 어울리는 방법으로 몰아갑니다. 하늘이 부여한 성정대로 살다가 늙음을 맞이하렵니다. 권세나 이익을 위해 사귄 벗은 때가 되면 반드시 우정이 변질되지만, 제 우정은 변치 않아 바위인 듯 쇠인 듯 단단하지요. 마음이 맞는 벗에 흠뻑 취해 이 몸이 있는 줄도 모르지요.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을 지경입니다.

 

 (나를 비난하는 자에게 / 고전산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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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4일 수요일

도어즈는 무엇일까요?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The Doors of Perception /W. Blake)

 

+ 어찌된게 기쁨,과 슬픔.이라는 이항대립체계의 정념이 닥쳐올 때마다, 늘 함께있어주던 짐모리슨.

   Once again the DOORS!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숨의 사랑 / 장석남

 

 

어제는 창경궁 후원에 많은 키 큰 나무들이

꽃피는 걸 보았습니다.

담장들은 지붕을 얹은 채 키를 낮추고

내 숨이 분홍빛으로

그 큰 나무들에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바람 속에 초생달이 걸릴 때면

내 숨의 사랑은

그곳으로도 가리라

 

숨결들

다시 돌아와

꽃핀 창경궁 후원이 몸에 가득했습니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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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9일 금요일

step by step

 

 원래의 계획은 오늘부터 가라타니고진에 빠져보자였는데, 막상 책장에서 꺼내려니 다음 달부터 시작될 세미나가 생각나, 고봉준 선생님의 책을 대신 꺼내어 놓았다. 한 페이지 읽다보니,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오민석교수님의 맑스주의 비평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 역시 한 페이지 읽다가 '에라이'라는 심정으로 영미문학 길잡이 비평편을 처음부터 펼쳐놓았다. 그래놓고는 멍하게 음악만 듣고 있다.

 

 결국 이렇게 모든건 처음부터 시작해야 속이 편해지는건가? 지겹고도 지겹다. 도대체 남들 다 공부할 때 난 뭐하고 있었던거냐? 그깟 연애로 밥먹고 사는것도 아니였는데... 에잇. 그냥 담배나 사러가야지. 벌써 두시인데 이거 다 읽어놓으려면 오늘도 집 청소는 다 글렀다.

 

병후(病後) / 이태준

 

 

병病

 

 하 생활이 단조로운 때는 앓기라도 좀 했으면 하는 때가 있다. 감기 같은 것은 가끔 앓으나 병다운 맛이 적고 또 누구나 걸리는 속환俗患인 데다, 지저분한 병이기도 하다. 병이라도 좀 앓았으면 싶을 때마다 내가 생각한 것은 학질이었다. 벌써 8,9년 전 동경에 있을 때 나는 2,3년 동안 여러 직의 학질을 앓아보았는데 나의 체험으로는 어느 병보다도 통쾌스러운, 일종의 스포츠미味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할 때의 그 아슬아슬함이란 적이 풀 패스가 되고 우리 피취가 투스트라이크 스리볼인 경우다. 그때 따스한 자리를 만나 이불을 푹 덮는 맛이란 어느 어버이의 품이 그리도 아늑하고 편안하고 또 그렇게도 다른 욕망이 눈곱만치도 없게 해줄 것인가! 그리다가도 그 소낙비 같은 변조와 정열! 더구나 그 열이 또한 급행열차와 같이 지나가버린 뒤의 밤중의 적막, 연정처럼 비등沸騰하고 연정처럼 냉각하고 연정처럼 고독한 것이 '미스 말라리아'다! 그의 스피드, 그 스피드로 냉각지대와 염열지대의 비행飛行. 그리고 나중의 빈 그라운드와도 같은 적막, 이것은 병을 앓았으되 한 연정과, 한 스포츠를 게임하고 난 것과도 흡사하다.

 그런데 이런 말라리아는 다시 오지 않았고 시원치 않은 감기나 가끔 앓다가 이번에 어디서 아주 몰취미 극極한 상인들이 욕으로나 주고받고 하는 따위에 걸려 5,60일을 누워 있었다는 사실은 좀 불명예의 하나다. 가가呵呵 (무서록 中 , 범우사 p.88)

 

건강

 

 나는 이번 병후에 완전한 건강이란 의심해본다. 나아갈 무렵 수십 일은 초저녁에 길어야 세 시간이나 네 시간을 잘 뿐, 그 긴긴 겨울밤을 뜬눈으로 밝히곤 하였다. 그 지루하던 시간에서 나는 몇 가지 소설 플롯을 생각하였다. 거의 전부가 슬픈 것들로서 그 인물들의 어떤 대화를 지껄여보다가는 내 자신이 그 주인공인 듯 흑흑 느끼고 울기를 여러 번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로 곧 집필하리라고 매우 만족하였던 것이 여러 가지였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붓을 들 수 있는 때 생각해보니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다. 하나같이 안가安價의 감상물뿐이다. 불건강한 머리로 생각되었던 것이기때문이리라 생각하였으나 그렇게 웃어버리고만 말 수 없는 것은, 건강한 때 그 머리로 쓴 것 중에도 뒷날에 생각하면 "이걸 소설이라고 썼나!" 생각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건강한 체하나 지금 쓴 글이 이 후에도 또 "이걸 글이라고 썼나!: 소리를 내 자신에게서 받을 것이 없으리라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언제나 나의 머리에 완전한 건강이 생길 것인가? 한심스러워진다. 이것은 모든 범재凡才들의 비애일지도 모른다.(무서록 中, 범우사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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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을 먹는 토요일이다 / 고형렬

 

 

토요일은 죽을 끓여 먹는 날, 싱크대 앞에 서서.

죽을 먹는 토요일은 진짜 죽이 된다, 죽만 남는다.

나는 죽사발을 들고 앉아 맛나게 떠먹는다.

그 순간, 모든 경전은 조용, 나는 문득 장님이 된다.

외팔이에 절름발이에 엉정벙정.

 

밥을 넣고 끓인 죽을 먹으면 나의 혀는 순해진다.

독설과 요설이 사라진다, 모든 꿈과 원이 죽는다, 죽처럼.

순해져 악한 내 마음의 뿌리가 통째 뒤흔들린다.

아 한그릇의 죽을 들고 서있는 詩夫여,

이 죽을 배우고 이 죽에 감사드리라, 어서.

토요일은 粥日이라네, 알곡밥을 먹지 않고 죽을 쑨다네.

곱은 불로 죽을 잘 쑤어, 잘 바스라뜨려 다스린 뒤

알곡이 없어졌을 때, 턱만 한 헌 주걱에 떠 받아

양지녘 한쪽에 가 앉아 고양이처럼 오직 죽만 먹는다.

담뿍, 담뿍. 왼손인 양 오른손으로.

 

나는 죽이 된다, 죽이라야 경계심이 죽는다.

육체 한쪽에 죽의 위만 달처럼 그릇처럼 남는다.

나는 이렇게 언제나 죽을 먹는 토요일에 도착한다.

저 죽을 먹고 앉은 화상을 보라, 토요일이다.

 

(201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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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7일 수요일

들어가며

 

 

 감식鑑識은 모든 비평의 기초일 것이다. 문학도 감식에 어두워선 작자여작품作者與作品의 정체를 포착치 못할 것이다. 비평가가 읽기만 하고 얻기 쉬운 것은 애매한 인상일 것이다. 한번 그 작품을 묘사, 베껴본다면 그 작품은 그 평가評家에게 털끝만한 무엇도 가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서록' , 이태준 / 범우 p76)

 

 

 나란 사람의 성향 중 8할은 다름아닌 욕심일거다. 일단 읽고 싶은 책은 '무조건 사고보자'식으로 덤벼드는 나는, 이태준 식 표현에 의하면 꽤나 '급진파' 독자인 셈. 문제는 이렇게 소유하게 된 책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 읽지 못한 책들이 하나 둘 책장에 늘어만간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컨데... 표지조차 들춰보지 않은 책도 적지않다. 아니.. 많다. ㅜ

 

 상황이 이렇다보니, 약간은 조급한 마음으로 동시에 여러 책들을 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책상 앞에서 밑줄쳐가며 정독할 책'이나 '화장실에서 읽을 책'뿐 만아니라, 출퇴근용이나 점심시간용, 침대용 책들로까지 세분화해, 여러 권을 동시에 읽어내려가는 방식인 거다. 이러한 독서법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우선 '질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재미없으면 중간에 과감히 '버릴 수 있다'는 것이겠고, 단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용도가 잘못 분류되면 좋은 책을 대강 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다.

 

 이런 얘기를 시시콜콜 쓰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오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출근 길에 읽게된 이태준의 '무서록' 때문.. 분명, 이 책은 (제목대로) 두서없이 쓴 수필집인데다 2800원짜리 문고판이었으므로, 구입하자마자 '출퇴근용'으로 분류해놨던 책이다. 그런데 구입한지 이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때 용도를 잘못 선택했다는 후회가 밀려오더라. 의외로 책상 앞에서 밑줄쳐가며 읽어도 시원찮을만큼 훌륭한 글이었던 것.  언젠가 문장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내게 P는 '정 그러면 베껴쓰기'라도 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백번을 베껴써도 아깝지 않을 문장들이다. 누군가 내게 베껴쓰기의 노가다를 시킨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만 같더라.

 

 사실 요사이, 이런 식으로 용도분류에 실패한 책들이 종종 등장해 당혹해하고 있다.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독서노트냐. 라고 그동안 애써 모른체 했는데, 이제서야 슬슬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중. '베껴 써본다'는 의미나 '좋은 글의 소개'라는 의미, 그 어느 쪽이든 좋다. 출퇴근이나 잠자리에서 읽다가 그냥 지나쳐버리고 잊혀진 글귀들이 아쉬워서라도, 이렇게 멍석을 깔아두어야겠다. 'ㅅ'

 

 

2010년 4월 6일 화요일

행복론 /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슬러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꿈의 페달을 밟고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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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월요일

옷장 정리

 

 나는 계절별로 옷장을 정리하는 것이야말로, 참 쓸모없고 비효율적인 노동이라 생각해오던 사람 중 하나다. 멋쟁이란 모름지기 '믹스매치'가 생명이기에(읭?), 계절에 크게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법. 가진 옷들을 모두 방 하나에 몰아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계절별로 옷을 싸놨다가 다시 풀고... 뭐하러 이런 짓을 하나 몰랐다.

 

 오늘 귀가길에 보니, 삼성역 멋쟁이들은 벌써부터 맨발에 샌들차림이 많아졌더라. 헌데, 웬일인지.. 다들 너무 추워보여... 흑.  패션화보에서 막 튀어나온듯 예쁘고 멋져보이긴하는데, 좀 불쌍해보이기도 하는거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얼어죽을 일이 있나.. 나는 루부탱 슈즈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못할 것만 같더라. ;;

 

 집에 돌아와 옷방 불을 켜놓고보니, 꼴이 아주 가관이다. 믹스매치고 나발이고 이젠 옷들이 어딨는지 제대로 찾을 수 조차 없는 상태. 난지도 쓰레기 한복판이 따로 없다. 사실 아침마다 로또추첨도 아닌데, 손에 잡히는 것들만 입고 살고 있다. 이래서들 다들 옷장 정리에 그렇게나 목숨을 걸었던걸까. 옷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안쓰는건 모조리 다 내다버리고 싶어졌다. 아- 내다버리는건 아무래도 너무 잔인한 일이니, 어디 기부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럴려면 정리부터 해야하는거잖앙. ㅜ

 

 어제 저녁부터 몸이 유난히 으슬거려 찬 바람을 못참겠다 싶더니만, 결국 몸이 사단이 난 상태다. 몸살이 너무 지독하게 걸려, 작년 신종플루 유행 때 받아놓은 진짜 독한 몸살약까지 드링킹한 상태. 컨디션 좀 좋아지면, 일단 딴건 다 제쳐놓고라도 옷장부터 정리해야지. 아침저녁 옷갈아입느라 들어갈 때마다, 토할 것 같이 더러운 방때문에 현기증이 다 난다.

 

 

+ 옷장 정리 백그라운드 뮤직에는 역시 'Walk this way'가 쵝오!

(뭔 소린가 싶은 당신, SATC 극장판 보면 바로 알 수 있을거다. ㅎ)

 

2010년 4월 4일 일요일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 최승자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더더욱 써보자

무엇을 위하여

아무래도 좋다

 

이 종달새가 더더욱이든 저 종달새가 더더욱이든

 

(어느 때인가는 너무 아름다워서 만져보면

모두가 造花였다

또 어느 때인가는 하염없이 흔들리는 게 이뻐서

만져보면 모두가 生花였다 造花보다 이뻤다

이제까지의 내 인생에서

'이쁘다'는 '기쁘다'의 다른 이름이었다)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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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그리고 카프카

 

 

2010년 4월 2일 금요일

열린패자당歌

 

 

"제1 잉여네셔널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만국의 잉여들이여, 단결하라!"

 

엄마에 대한 생각

 

1. 지금, 마치 아이처럼 엄마가 보고싶어 미치겠다.

"지난 주 보내준 조개젓갈과 더덕무침이 너무 맛있어서, 이번 주에는 밥을 아주 많이 먹었어요."

엄마는 더 잘 먹고 다녀야한다며, 자그만치 1人당 75000원짜리 63부페 식사권을 두 장이나 선물해주었다. 담주에는 좀 더 포실포실 살을 찌워, 엄마를 만나러 가야쥐. 헤헤- 뚱보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해야할 당위성이 하나 더 추가된다. ;)

 

2. 오늘은 출산 예정일을 앞둔 친구 J양에게 이해인 수녀님의 '엄마'라는 시집을 선물했는데, 부디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삶을 더 넓게 이해하게 해주는 '선물같은 엄마'가 되길 바란다는 메모를 덧붙여주었다.

"아가야.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이모가 꼭 '쌤소나이트' 책가방 사줄테니,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꾸나."

신기하고도 묘하다. 히이-

 

+ 아무리 건강하고 행복한게 제일이라고 해도, 블러 오빠들처럼 니 엄마 속썩이면 넌 나한테 죽는다!

 

외꽃 피었다 / 이대흠

 

 

꽃과 가시가 한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글을 읽는 동안

지금은 다른 몸이 한몸에서 갈라져나온 시간을 생각하는 동안

꽃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가시를 품는 것이라는 것을 새기는 동안

 

꽃이 오셨다

 

어쩌지 못하고 물외처럼 순해지며 아픈 내 마음이며

줄기와 잎이 가시로 덮였어도 외꽃처럼 고울 그대에 대한 생각이며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몸의 그리움을 마음의 그늘로 염하는 시간이며

 

(귀가 서럽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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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일 목요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박목월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로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 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착한 일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빛 같이 신선하고 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내가 있으므로 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살며시 친구 손을 꼭 쥐어주는
  세상에 어려움이 한두가지랴

 

(나그네,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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