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 푸욱 자고싶다.
(그래도 기억하는 편이, 잊혀지는 것보단 낫겠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 지성사)
펼쳐두기..
대부분의 평범한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듯, 나 역시 명절 연휴에 간간히 방영되던 발레공연에 완전히 넋을 놓곤 했었다. 특히 연말의 '호두까기 인형'보다는 추석때 방송되던 '백조의 호수'를 훨씬 더 선호했었는데, 이유는 아래 링크된 두 씬에서 풍기던 포스 때문이었다. 내 어린 눈에도 착하디 착한 오데뜨보다는 4마리 작은 백조들이나 검은 백조 오딜이 훨씬 더 매력있어보였던 것.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이들어 그렇게나 많은 발레 공연들을 보러다녔음에도, 유독 백조의 호수는 나와 인연이 없었다. 정말 흔한 공연 중 하나 임에도 이상하게 일이 틀어지는 통에, 이제껏 나는 작은 백조 군무나 오딜의 춤을 실제로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가끔 생각나는 날이면 집에서 자하로바의 Swan Lake DVD라도 틀어놓지만, 아쉬움이 밀려오는게 사실이다.
지난 주부터 시작된 유니버셜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잘하면 내게 언제나 여신같기만한 임혜경 선생님의 오딜을 볼 수 있겠다고 설레여했지만.. 아니나다를까. 이번 공연 역시 갈 수 없게 생겼다. 에궁. 대신에 몇 주전 엄마와의 데이트 코스로 잡아놓은 오늘 음악회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OP 3곡 연주를 듣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눌러놓기로 한다. 하긴 뭐. 혹시 알아? 나중에 뻬쩨르부르그 여행갔다가 마린스키 극장에서 우연히 보게될 지... 이렇게 애태우며 기다려보는 것이 나중에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이렇게 토닥토닥하며 이번 주도 버티어내야지, 뭐 별 수 있나.
ps. 다 떠나서, 오랫만에 포스팅을 핑계로 오딜을 다시보니, 진심으로 좋군화아아-
나는 역시나 다크사이드오브포스쪽이 언제나 끌린다능. 하하 ;)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아무런 쓸모 없는, 주식 시세나
운동 경기에 대하여, 한 줄의 주말 방송프로도
소개되지 않는 이따위 엉터리의.
또는,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 불능의 종이 뭉치.
무엇보다도, 전혀 달콤하지 않은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이 지상엔
그런 애매모호한 경전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신을 위해서랄 것도 없는.
하지만 누가 정사에 바쁜 제 무릎
위에 얄팍하게 거만 떠는
무거운 페이지를 올려놓는다는 말인가?
그래, 누가 시집을 펼쳐 들까
이제 막 연애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중동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아니라면 장서를 모으는 수집가의
희고 가느다락 손가락이
뒷장을 열어 출판 연도를 살펴볼까?
양미간을 커튼같이 모으며 이것
굉장하군! 감탄하는
끈끈한 조사와 형용사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교묘히 풀칠하는 당신의 시.
그따위 것을 누가 찾아 읊조린단 말인가
절정의 순간에 한 줄의 엘리엇을 읽어주어야만
만족해하는 성도착증의
젊은 부인을 위해? 혹은
강단에서 시를 해석하는 문법학자의
조심스레 미끄러지는 입술에서나
그것은 팽개쳐질까. 아무런 열의도 없이
이해하겠어요, 이 작가의 콤플렉스를?
지루하게 외쳐대는 오후의 강의 시간에나
시인과 시인이 맞붙어 싸우는 이
암호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두터운
안경을 맞추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마음 멍청하면 사게 되는 것이냐, 아무리 찾아도
국립극장 초대권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이 한 권의 책을. 놔둬 버리지
서점의 제일 높은 판매대에 꽂혀
먼지가 만지도록 그냥, 놔둬버리지
제일 아래쪽 밀대가 지나다니며
까맣게 구정물이 먹도록. 구석을 찾아
이리저리 천대받도록 그렇게 놔둬
버리지. 이따위, 엉터리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펼쳐두기..
1. 제주도에는 이미 왕벚꽃나무가 개화했다는데, 서울 강남에선 눈발이 흩날리는 중. 정말이지 '움을 틔우는' 심정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올해는 왜 이리 지리한 걸까. 자그만치 다음주면 4월이 시작되는데, 날씨는 여전히 이 모양이다.
2. 이번 주에 특히 신경을 쓴 건 '체력 회복'이었는데, '커피는 하루 한 잔만 마시기'와 '수면시간은 5시간 이상'이 그 세부 목표였다. 커피 대신에 홍삼, 메밀, 구절초, 둥글레 차 등을 무지무지 많이 마셨고, 잠도 제법 많이 자려고 노력했다. 아직까지 100% 회복된 건 아니지만, 일단 부종은 어느정도 가라앉은 걸 보니, 효과가 아주 없진 않았던 셈. 여기에 금연까지 한다면 좀더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차마 그것까진 못하겠더라. ;;
3. 기분 좋게 주말을 시작해보고 싶었는데, 교보문고 책 배송 문제로 제대로 짜증이 치밀었다. 아니. 남들보다 비싼 배송료 받고, 비싸게 책을 팔고 있으면, 배송이라도 정확히 해줘야하는거 아닙니까. 왠만하면 이런 일로 날카로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엔 대단히 화가 나서 결국 주문을 전체 취소해버렸다. 뭐 그쪽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소비자로써 할 수 있는 최대의 보복은 구입하지 않는 것 밖에 없다... 나 은근 뒤끝있는 여자다. 앞으로도 계속 안살꺼야! 흥!
4. 올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작들을 훑어보다가, 경향신문 당선작을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 좋거나 나쁘거나 따위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사실 세상의 모든 글들은 그 나름의 독자를 상정하고 서술된 것이기에, 개인적인 호불호를 표명한다는 건 부질없는 일로 보인다는게 요즈음 내 의견이다.) 단지, 그저 매우 놀랐다는 것만을 말하고 싶다. (이하 생략)
어느정도 예상했던 바이지만, 오늘 카프카모임은 참으로 단촐하게 진행. 멤버가 둘 밖에 오지 않았으니, 그냥 접고 맥주나 일잔하자고 권유하고 싶었지만, 훌륭하신 M님께서는 그냥 진행하자고 밀어붙이셨고... 결과는 어찌되었든 대만족이었다. 비록 참석자는 적었지만, 무척이나 풍성한 세미나였던지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책을 좀 더 들여다보지 못하고, 하루종일 트윗 타령만 했던게 매우 부끄러워졌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개포동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 그래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승우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고 있다', 편혜영의 '재와 빨강',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그리고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미친 사람처럼 주문했다. 엉겹결에 읽게된 카프카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도전해보고 싶던 작은 목표를 실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다. 오죽하면, 카프카는 매 작품마다 발제해도 좋겠다라는 말도 안되는 의욕까지 솟아올랐다. 하하;
게다가 오늘 M님께서는 친히 이승우의 또다른 소설 '오래된 일기'까지 선물해주셨는데, 아마도 이승우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다분히 신기해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남친님하 역시 이승우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더라.' 라고 전해주자, 자그만치 '당신들은 진정한 대한민국 1% 커플이군효'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더라능. 문학에 있어서는 언제나 무지렁이인 내게, 이렇듯 큰 은혜를 베푸시는 분들이 주변에 하나도 아니고 여럿 있다는게 새삼스레 감사해졌다. 의욕과 희망이 머릿 속에 가득해졌고, 손가락이 아닌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 밤이다. 그러니 힘들다고 징징대는건 이제 그만 좀 해대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열씸히 정진해야하는 것이다. 아이고. 두근거린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 본질이 '신기함'에 가깝기에 굳이 '우와' 시리즈로 제목을 붙여놓긴 했지만, 사실 트위터에 관한 포스팅은 '우와' 보다는 '헐--'이란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일찍이 정을 붙여보려고 갖은 애를 써보았음에도 여의치않아 방치해두었던 트윗질에 요사이 흠뻑 빠져들고 있는 중. 그 중독의 정도가 너무 심해, 말그대로 '헐--'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남들 다 한다는 트위터에 나는 유독 별 재미를 못붙이겠다고 말하자, 누군가 '니가 아이폰이 없어서 그런거다'라고 했었다. 그때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이 말이 진실일 줄이야. ㅜ 요 몇일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트윗. 저녁에 누울때까지 트윗. 이다. 오늘도 셈나 준비는 하나도 안한 채로, 하루종일 트윗덱 프로그램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뭐지? 도대체 이게 어케된 거시지? 흐윽. 이건 정말이지, 볼드모트나 ㅆㅋ만큼이나 흡인력있으신 존재임에 틀림없다.
어젠 대거, 작가들의 트윗을 팔로잉해놓았는데, 주욱 훑다보니 역시나 그들은 단문을 써도 무언가 우월해보이더라. (물론 다 그렇다는건 아니고...) 트윗에서 소설을 쓰시는 분도 계셨고. 읽는 책을 인용해주시는 분도 계셨으며, 현재의 고민을 세련되게 토로하는 분도 계셨다. 즉흥적이고 짧은 문장임에도 무언가 반짝거림을 잃지 않는 그들의 트윗을 보고있자니, 아주 약간 질투도 나고. 속도 상하고.. 좀 그랬다. 부러움과 시기가 없는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고.. 쩝

지지난주부터, 그러니까 근 2주째 끼고 살았던 카프카의 '성'을 드디어 덮었다. 에효. 이주일 내내 카프카의 문장들은 다분히 시詩적이라고 읊고다녔는데, 이게 사실 결코 빈 말만은 아니었던 것.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뿌옇고 나른한 소설이다. 작품 자체가 지루하거나 어렵다기보다는,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는 일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책만 펼쳤다하면 온통 좀이 쑤시는 통에,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분량임에도 제대로 낑낑댔다.
하지만, 카프카의 '성'은 텍스트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워낙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라, 평론가들 입장에선 참 좋아할만한 소설이겠다 싶더라. 오죽하면 미국의 한 비평가는 카프카의 작품은 '집단적으로 폭행당하고 있다'고 한탄했겠나. 라캉의 기표와 기의, 근대성의 뒤틈, 관료제에의 비판, 프로이드식 정신분석까지...(들뢰즈는 건드리고 싶지도 않아.ㅜ) 기존의 수 없이 많은 해석들이 작품을 감싸고 있는지라, 오히려 이 것들때문에 작품 자체에 몰입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말그대로 주객전도겠지. 소설은 모름지기 소설로써 읽어야하는건데, 이래서야 이게 소설인지 철학책인지 구분이 가겠나.
게다가 지난주 수욜부터 시작된 카프카 읽기 세미나의 압박 역시 부담감을 가중시켰다. 카프카라고는 '해변의 카프카' 밖에 모르던 내게 이 세미나는 확실히 무리였던 것. 흑. 지난주 세미나 발제문을 작성하고 난 후부터는, 정말이지 당분간 아무것도 '쓰고싶지않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고전이고 나발이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재미있는 인스턴트류의 소설들이 읽고 싶어진다. 왜 같은 사랑 타령이라도, 매일같이 패티스미스나 듣다보면, 어느날 문득 이소라같은 가요들이 땡길때도 있지 않은가. 요즘들어 특히나, 영화고 음악이고를 떠나 심각하고 무게감있는 것들에는 지레 지쳐 손이 가지 않는 건, 다 카프카와 들뢰즈 때문이다. 흥.
어찌어찌 '성'을 간신히 읽어놓았지만, 다음 차례인 '실종자'는 도무지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이래서야 책장에 꽂혀있는 카프카 전집. 언제 다 해결하냔말이다! ㅜ 일단 오늘 밤은 이승우 단편만 하나 더 읽고, 그냥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아유- 세미나는 또 어찌하나. 이미 첫시간에 밑천 다 까발려놨는데, 아주 그냥 돌 것같은 저녁이다.
ps. 이렇게 써놓고, 아래 영상을 무한 리플레잉중인건 또 뭘까. (쳇. 오늘도 일찍 자긴 다 틀렸군..)
+ 이렇게 써놨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최악은 아닙니다..ㅋ 분명한 건, 카프카를 읽는다는 일 자체가 보람있다고 느껴질만큼, 훌륭한 텍스트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부디 언제든 연락주시랍... 굽신굽신. 새 멤버는 언제든지 환영인게지요. (http://nomadist.org/xe/11936)

눈이 참으로 '씨알 굵게' 내린다. 퇴근길 생각에 앞이 캄캄... 점심시간만 해도 겨울 점퍼 입은 사람은 나 밖에 없어보여, 아주 쵸큼 민망했는데, 반나절 만에 날이 이렇게 변했으니 결국 탁월한 선택이였다 싶다. 봄 옷으로 멋부리는 것도 좋긴한데, 요새는 찬바람을 좀만 쐬도 뼛 속까지 시려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러니 어릴때. 다시말해 멋부릴 수 있을 때, 맘껏 멋을 부려봐야하는거다. 나이들면, 하고싶어도 못한다.
지난 주, '체력의 진정한 바닥'을 경험한 후, 만만치 않은 부작용에 시달리는 중이다. 일단 부종이 너무 심해져, 양쪽 귀가 감각이 없는 상태. 손가락 발가락 할 것없이 모두 저릿저릿하다. 매일같이 생생톤 3병에 커피를 대여섯잔씩 들이켰으니, 카페인에 익숙해진 몸이 금단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수요일까지는 회복되야할텐데, 자꾸만 이렇게 골골대고 있으니 좀 창피하다.
주말에는 P가 처음보는 와인과 맥주를 사가지고 왔는데, 제대로 한 잔도 못먹어보고 말그대로 기절해버렸다. (P의 표현대로라면) 무슨 '덩어리'마냥 바닥에 붙어 죽은 듯이 잠만 잤더랬다. 그래놓고는 밥 사주겠다고 비싼 식당 데려갔는데, 계산할 때 보니 지갑을 집에 놔두고 왔네... (;) 집까지 몇 번을 왔다갔다 하고 나서야, 간신히 커피집에 안착. 도착해서 커피 다 시켜놓고 보니, 콘센트 꽂는 데가 없으시다. (ㅜ) 이래저래 정신도 없고, 되는 일도 없어보이는, 멍한 주말이었다. 초롱초롱, 좀 예쁘게 살고 싶은데, 자꾸만 초라해지는 내 모습에 아주 약간 슬퍼졌다.
황사로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닐 영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아주 잠깐 환각 상태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더라. P가 요새 격하게 아끼시는 곡중 하나인, 'Heart of gold'가 플레잉될 때 특히 그랬다.
'아아- 그대는 이 곡의 가사가 무얼 뜻하는지, 과연 아시면서 내게 이렇게 틀어주는 건가요?'
궁금하지만 절대 묻지는 못할 질문들이 마음 한구석 가득히 피어난다.
온통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찬 일상이다. 남도에서는 동백이 지고 있었고... 오늘 밤은 눈보라를 뚫으며 집으로 가야하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정말로 몸이 아픈 중이고... 황금심장은 아이폰에서 무한 리플레잉중이다. 아아- 몽롱하고 멍해.
이번 주 내내, '아이폰'과 '아이튠즈'에 푹 빠져있다. 분명, 지난 일요일만해도 왜 지름에의 욕구를 이기지 못했을까.로 머리를 쥐어뜯었던 거 같은데... 단 몇일만에 입 '싹' 씻고, 신나게 탐구 중인게다. 아직까진 모든게 다 신기하지만, 그중 무엇보다 제일은 다름아닌 아이튠즈-U.. 세상에나! 이렇게 꿈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는거구나.. 자그만치 예일대 문학강좌를 지하철에서 수강할 수 있는 세상이다... (ㄷ)
아이팟을 5년 넘게 써왔음에도, 그동안 나는 참 이 아이튠즈의 세계를 모르고 살았구나 싶더라. 지가 알아서 장르별로, 그것도 세부 장르. 이를테면 얼터너티브는 얼터끼리, 블루스는 블루스끼리 분류해주는 '지니어스' 기능까지 발견하고 나니, '아이튠즈야말로 우리의 친구'라는 감탄이 절로 나더라능...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주변의 유저들과 얘기하다보면, 아이폰 이야기로만 몇 시간의 수다가 가능할만큼, 이 자슥. 참 물건은 물건이다. 게다가 유저들끼리는 'm&talk'같은 어플을 이용하면 무료로 인스턴트 메시징이 가능하기에, 요 몇 일사이 아이폰 가진 이들과 급격히 친해진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기술이 이만큼이나 발전한 만큼, 사람들 간의 이야기도 부디 많아져야 할텐데... 하긴 소통의 '수단'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그 '질' 역시 비례해 높아질 리는 없는 것.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겠지... 기계들의 변용능력만큼 과연 우리의 이야기들도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을라나.

방금 전 들뢰즈 발제문을 끝으로, 드디어 '발제의 압박'에서 해방되었다! 아아- 근 두 달간의 평일 수면시간 3시간의 고행도 어느새 끝이 보이는거다. 물론 여전히 읽을 책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긴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오타아아아아아아아-
이번 주, 들뢰즈의 책을 읽다가 제대로 삘이 꽂힌 '유토피아'의 개념을 문학에서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1984'나 '멋진 신세계', '우리들' 이라는 '3대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무척이나 신기하게도 마침 짜마진의 소설로 4월에 새 강의가 열릴 것이란 공지가 눈에 띄네... 그럼 그렇지. 이 격한 해방감이 오래갈 꺼 같진 않더라니...(ㅋ)
하지만 뭐. 작년 연말부터 여기저기 펼쳐놓았던 스케쥴들이 이제 슬슬 마무리가 된 것 같아, 좋은 건 좋은거다. 그동안 (비록 힘들다고 징징대긴 했지만서도..)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찍어주고 싶을만큼,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토닥거리는 중이다. 일단 작은 '상'으로 요번 일요일 하동으로 나들이를 다녀올 예정... 간 김에 양질의 매화차나 구입해와야겠다. 보리차처럼 마셔대는 커피를 끊을 필요성이 절실하다.
사실 오늘 오후에 '피'볼 일이 있었는데, 세상에나. 몸 전체에 독소가 얼마나 많았으면 피 색깔이 거무스름하다 못해 보랏빛이더라... 살다살다 보랏빛 피는 또 처음 본다. (;;) 갑자기 위기 의식이 느껴져 일단 레모나 3개를 한꺼번에 드링킹했다능... 낼은 유산균이라도 사와서 요구르트나 잔뜩 만들어먹어야겠다. 허구원날 빵이나 떡볶이로 끼니를 때우고, 칙힌이나 처묵처묵하고 있으니, 이모양인게지... '웰메이드' 모드로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렇게 몸을 함부로 굴리다간 조만간 사단이 날 것 같다.
안그래도 오늘 만난 S양 왈, '언니. 못본 새에 쌍거풀이라도 찝은 줄 알겠어'란다. 눈두덩이는 움푹, 얼굴은 거무튀튀하고, 온 몸이 푸석푸석하다. 생각해보니, 유일하게 내 수준에 맞게 즐길 수 있던 스파 프로그램(?)인 좌욕을 마지막으로 한 게, 자그만치 일년 전이다. '좌욕하면 목욕비 공짜'라는 환상적인 목욕탕을 지척에둔 동네 주민으로써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어디 그뿐인가. 작년 10월 말에 '스팍' 헤어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자른 이후, 아직까지 미용실에 한 번도 안갔다. 아니 솔직하게 정말 바뻐서 못갔다.
그래도 명색이 연애하는 여자인데, 앞으로 그이 친구들이나 은사님을 만나려면 아무래도 이래서는 좀 곤란하다 싶어진다. 아무리 남친님꼐선 괜찮다고해도, 사실 내가 남자라면 좀 부끄러울 것 같은 거다. 예쁜 옷, 세련된 스타일은 제쳐두고라도, 좀 '건강'하고 '깨끗'해보이긴 해야하는 건데... 그동안 바쁘다고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나에게든, 타인에게든 면목이 없다.
지지난주였나? P는 지인 중 누군가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징역살이를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내게 있어 소위 운동을 강제한 추동력은 그 어떤 유토피아로의 지향보다는 현실의 끔찍한 디스토피아때문이었다'고 말한 일을 전해주었다.(물론 비루한 내 기억력에 기인한 형편없는 '워딩'이긴 하나, 분명히 이런 취지의 대사였다. ;;) 그렇다면, 내게있어 지금같은 소위 니체 식의 '반시대적인' 사고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건 과연 어느 쪽인걸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후, 은근히 머리 속에서 쉬이 떠나지 않는 질문이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이 정치적이 되고 시대에 대한 비판의 최고 경지로까지 이르게 된건, 언제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지칭했던 '유토피아'와 더불어서다. 그렇다면 이 '유토피아'란 과연 무엇일까? 그 유명한(?) 유토피아주의자였던 사무엘 버틀러가 사용한 'Erewhon'이란 단어는 사실 '아무 곳에도 없는'(no-where)뿐 아니라 '지금 여기'(now-here)라는 이중의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어쩌면 공상 속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와 현실의 디스토피아의 구별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이 두가지 역설적인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유토피아의 여러 유형들 중 어느 것이라 불리울만 한 것이다.
들뢰즈는 이같은 이론을 설파하며, 혁명을 내재성의 유토피아라고 말하는 것이, 그 어떤 꿈이나 실현될 수 없는 혹은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 지금-여기에 실재하는 그 무엇과 연루된 '무한한 운동'만이 혁명이며, 앞서의 혁명이 배반당할 때마다 새로운 투쟁들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추동의 힘'이 혁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혁명 내지 유토피아는 다분히 '정치적'인 개념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철학이란 무엇인가 / 현대미학사)
사실 유토피아 혹은 혁명이란 개념은 어쩔 수 없이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이만하면 혁명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성에 안찰 수도 있는 것. 이러한 상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어느 한 사회적 영역 안에서 행해지는 특정한 제도 내지는 방법만을 논해서야, 유토피아나 혁명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비록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그 무엇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여기에서 무한하게 사유하게끔 강제하는 '힘'내지는 '열정' 그 자체를 '유토피아' 내지는 '혁명'이라 보아야하는 것이다.
리장을 떠나 샹그리라를 거쳐 더친으로 향했다. 샹그리라, 디칭(迪慶) 티벳족 자치주로 본래 이름은 중덴(中甸). 윈난 지역에 한번도 가 본적 없는 제임스 힐튼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자신의 소설에 티벳 지역을 배경으로 지상낙원을 등장시켰는데 그 이름이 '샹그리라'다. 목격하지 않은 목격자의 말만 믿고 수많은 학자들이 '샹그리라'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1997년 샹그리라가 디칭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중국 정부는 2001년 재빠르게 중덴을 '샹그리라'로 개명했다. 역시 공격적 '관광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중국이 잃어버린 '낙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잔뜩 기대하며 거닐었던 작은 도심은 생각과는 꽤 달랐다. 배낭족들이 몰려들며 생겼을 법한 '기와 올린 웨스턴 바'가 자주 눈에 띤다. 낙원, '유토피아'라는 말은 라틴어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이곳은 따라서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다. 예전에는 유토피아였을지 모를 일이지만.
샹그리라를 나섰다. 더친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티벳 성도 라싸(拉薩)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무리들을 봤다. 오체투지하는 티벳 스님들이다.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이 티벳 스님들이 '너희 모두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땅에 찧는다. 그랬다. 드디어, 하늘의 샹그리라가 지상에 당도했다. 우린 '중덴'을 빠져나왔던 것이었고, 샹그리라는 오체투지 행렬을 이룬 스님들 사이 사이에 성기게 배어 있었다.
('착한' 중국 기행…"우리는 '공정족'이다" / 프레시안)
나로 하여금, 반시대적 내지는 비현행적, (푸코식으로라면) 현행적인 사고를 강제하는 것은 어쩌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둘다 모두 아닐런지 모른다. 더이상 유토피아로 불리울 수 없는 '샹그리라' 한켠에서 '지상에 당도한 샹그리라'를 찾게되는 현실, 그것에서 촉발되는 사유와 열정. 그 자체가 이미 '샹그리라'이자 '유토피아'이고, '혁명'이다. 그저 강제되는 사유에 오롯이 몸을 맡긴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처마 밑에 버려진 캔맥주
깡통, 비 오는 날이면
밤새 목탁 소리로
울었다. 비워지고 버려져서 그렇게
맑게 울고 있다니.
버려진 감자 한 알
감나무 아래에서 반쯤
썩어 곰팡이 피우다가
흙의 내부에 쓸쓸한 마음 전하더니
어느날, 그자리에서 흰 꽃을 피웠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이
한 세상을 끌어가고 있다.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
펼쳐두기..
'모조 딜도쇼'로 음감실 죽순이들 모두에게 큰웃음 주시곤 하던 람슈타인 오빠들도 오늘 보니, 무척이나 늙었구나 싶다. 흘러간 내 시간이 유독 억울하다고 원망했던게 그 얼마나 우스운 망상이였는지, 이렇게 예전에 좋아하던 뮤지션들의 새 영상을 볼 때면 깨닫곤 하는 것이다. 그 언젠가는, 2010년 서울대입구 거리에서 휴대폰 모양의 작은 스피커로 두하스트를 틀어놓고 낄낄대던 지금의 기억 역시 까마득해지는 날이 오겠지...
다 부질없는 아련함일뿐이라고 그 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여도, 서러움이 밀려오는건 어쩔 수 없다.
이번달 당첨된 '천원의 행복' 프로그램에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이 포함되어 있기에, 요사이 출퇴근 길에는 이 곡만 주구장창 듣는 중이다. 문제는 허구원날 차만 탔다하면 꾸벅꾸벅 조는 까닭에 끝까지 들을 수가 없다는, 다분히 짜증나는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 아무래도 쇼팽은 나와 뭔가 맞지 않나봐. 항상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감응받지 못하게된다. 어쩌다보니 3년 연속 세종 유료회원 신분이라, 분명 다음달 쇼팽 실내악 특집도 당첨될 확률이 높아보이는데, 이번 음악회는 그렇다치고 다음번엔 제대로 듣고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
시국이 이모양이니, 왠간한 다큐 필름은 보기만해도 코끝이 싸해질 정도로 가슴을 건드린다. 헐리웃 슬픈 영화 백개 가져다놔도 절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나로써도, 이들 앞에선 어쩔 수 없을 정도.. 작품을 접하는 매순간, 어쩌면 삶이란 그 어떤 만들어진 서사보다 더 슬플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여기에 대고 '다큐도 픽션이야'라고 반박하려하는 당신! 바보다.)
얼마전 개봉한 작년 쌍차 투쟁에 관한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은 이번 상영일 놏치면 얼마나 기다려야할 지 모르므로, 꼭 보고싶은 필름 중 하나이다. 작년 여성영화제때 놏친 '외박'이나 '사당동더하기22'의 악몽이 생각나는게다. 이번달 말,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의 필름 상영이 제일 쉬운 접근방법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수요일 카프카모임과 겹치는 까닭에 어찌해야하나 고민중... 오늘 언뜻 보니, 오픈예정인 이미지 프레시안에서도 쌍차 관련 슬라이드를 준비중이던데, 여하튼 올해 놏치지 않아야할 작품임에는 틀림없어보인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워낭소리'만큼만 대박나서, 정권에서 과연 평택도 관광지로 만들자고 이야기하는지 안하는지 두고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아닌데도 눈이 내립니다
자유를 주십니까 새하얗게
눈은 자유롭구나 하나로
눈 내리는 날 이 세상 골고루
새카만 눈이 있다면 캄캄한 세상
얼마나 덜 구차하겠습니까
젊은 날 즐거웠던 한잔 술의 덧없음이여
누구 탓 없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자유를 주십니까 공짜로
절대로 공짜가 아니신 하느님
형편없으신 나의 하느님
진흙투성이 은총 헤쳐내며
나의 눈물을 노래하게 하십시오
다시 한번
흙 속에 비쳐올 찬란한
내 모습을 보게 하십시오
싸구려 막국수집이거나
연구실이거나
택시ㆍ버스ㆍ자가용 넘쳐나는 빈 거리거나
새파란 교정이거나
강의실이거나
오늘도 내 절망 위로 눈이 내립니다
(떠나도 떠날 곳 없는 시대에 / 문학과 지성사)
펼쳐두기..
올해, 야심차게(?) 예술론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를 사로잡았던 화두는 다름아닌 어떻게 하면 가난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시간과 돈이 넘칠때야, 이런거 저런거 의식하지 않고 펑펑 질러대며 소위 '문화생활'로 자위하는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내 인생이 쭈욱 그렇게 풀릴리가 없잖아?
가늘고 길게.. 소박하지만 내공있게.. 내 삶을 예술로 채우고 싶어진다. 그러자면, 스타플레이어 위주의 매스적인, 이때까지 반복해왔던 허영으로 꽉찬 패턴을 통째로 뒤엎어버릴 실마리가 절실해지는게다.
그래서 선택한 프로그램은 일단 두가지. 하나는 구로아트밸리에서 지속될 음악회이고, 다른 하나는 선재아트센터로 옮긴 인디포럼 상영회이다. 둘다 보통 마이너한게 아니라 찾는 이가 드문 까닭에, 한적진 걸 좋아하는 나로선 오히려 반가울 따름. 게다가 스케쥴이 비는 화요일에 진행된다는 점, 비용도 6~7천원 선이기에 부담이 없다. 올해는 아무리 몸이 힘들고 시간에 쫓기더라도, 이 두가지 행사에는 지속적으로 참석해볼 계획이다.
오늘 진행된 3월 음악회 테마는 봄맞이 모차르트였다. 개인적으로 짤스부르그 협주곡들 중 가장 선호하는 곡인 3번 콘체르토가 연주된다길래, 모처럼 두근두근하게 극장을 찾았다. 헌데, 이게 왠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장하는데, 비올라 넘버2 자리에 다름아닌 예전 우리 선생님이 앉아계신다.ㄷㄷ 세상 참 좁다좁다해도 이렇게나 좁을 줄은 몰랐네.. 게다가 매우 앞쪽 자리로 예매했기에, 공연 내내 선생님과 눈이 마주쳐, 꽤 민망하기까지 했다. 이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예의란걸 지키며 살아야하나보다.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 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게 인생이다.
인디포럼 상영회 역시 또다른 선생님께서 상주하는 곳이니, 이거 원. 어쩌다보니, 두 곳에서 꼬박꼬박 선생님들을 찾아뵙는 형상이 될 것 같다. 좀 더 싹싹하고 밝은 성격의 제자가 되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다. 이런 내 죄스러움을 하늘도 눈치챈건지, 분명 봄맞이 음악회였는데,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걷다가, 떡볶이 2천원어치를 사먹고 귀가했다.(;;)
포만감과 죄책감. 이 두가지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로, 오늘 밤의 나는 더욱더 가난해진 기분이다.
오늘로서 드디어 러시아 낭만주의 셈나도 끝! 이로써 온전히 '프리'한 주말을 되찾은 셈이다. 사실 너무나 유혹적인 텍스트들이였기에 분명히 즐겁긴했으나, 역시 주말에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더라. 이상하게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렇고, 낭만주의도 그렇고... 러시아문학은 왜 매번 주말에만 세미나 일정이 잡히는 지 몰라. 흑.
어쩌다보니, 우연히 바흐친으로 시작해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푸쉬킨, 레르몬토프까지 읽게 되었고.. 올해는 체호프 기념해이기도 하다니,앞으로 러시아문학은 체호프, 투르게네프 정도까지 더 읽게될 것 같다.
(그나저나 올해는 무슨무슨 기념해가 왤케 많은게지? ㄷㄷ
체호프, 쥬네, 슈만, 쇼팽까지... 이러니 다 시시해보이잖아. 쳇)
영문과 출신임에도 문학에는 도통 무지했던 나로썬, 작년에 C선생님을 만난건 어찌보면 큰 행운이였을지 모른다. 덕분에 러시아문학 뿐 아니라, 고전 전반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낭만주의 셈나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뭐니뭐니해도 (영문학에서의) 낭만주의 원류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는 것. 비단 블레이크와 바이런을 되찾은 것뿐 아니라, 영문학 나아가 문학 일반에 대한 시선 자체가 새로워졌다고 감히 자부하고 있다. ;;
요 몇 일 집중하고 있는 텍스트는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이고, 이 책을 다 보고나면 스탕달의 '적과흑'을 훑을 예정. 그 후엔 토마스만과 프루스트, 그리고나서는 무조건 조이스 읽기 돌입! 무언가 두서 없고 국적을 넘나드는 계획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신이 난다. 게다가 당장 다음주부터는 카프카 장편 읽기가 시작되니, 뭐랄까.. 요사이 나는 문학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시와 소설읽기라는 이 원초적인 기쁨에 이제라도 눈이 뜨인 것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게다가 이런 '나를 알아보고'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고전들을 출간해주시고 계시니, 로또라도 당첨된 듯 횡재한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비평에 욕심을 내고 있긴 하나, 요새같아서는 그 어떤 목적없이 그냥 읽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웁다. 선택하는 책들 모두 경이롭기 그지 없어, 유레카라도 외치고 싶을 정도. '꿈높현시'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문학이 있어 참 다행이다. 이보다 더 든든한 노후대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ㅎ)
ps. 마지막 텍스트였던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은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더니만, 책 상태가 자그만치 이 모양 이꼴.(ㅋ) 주문 후 받는데까지 일주일 이상이 걸렸던 책인데다, 교환과정이 번거롭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놔두긴 했는데, 우습게도 보면 볼수록 애착이 가는 것이다.
그대는 말한다,
당신은 첫 페이지부터 파본인 가여운 책 한 권 같군요,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 심보선)
파본은 언제든 교환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이 싯귀때문에 가여워져서 교환할 수가 없는게다. (ㅎ)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
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
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
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
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
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
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
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
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
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
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
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억
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
일 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
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
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
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
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
란다.
(신동엽 전집 / 창비)
펼쳐두기..
정신없던 연구실 스케쥴이 어느정도 정리되고나니, 이번엔 회사가 골치를 썩힌다. 자그만치 폐기작업으로 250박스나 할당받은 것. 3일에 한번 강제 야근을 해야한다는 초강수의 명령까지 떨어졌다. 이러니, 그 중요한 앨리스 예매를 놏친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이번 주말엔 뭐하고 놀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앨리스 개봉이 번뜩 생각나 영화사 사이트를 뒤져보니, 이런 제길슨! 아이맥스 상영분은 이미 모두 매진이다. 조금 속상해진 마음에.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남친님께 "흐엉엉"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극장에서 한 번 볼 영화이고, 더더욱이 관람 포인트가 '기술의 진보'의 확인에 있다면, 최고로 '좋고 훌륭한' 것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이쥐...
하지만, 자상하신 우리 남친님께선 "뭐 굳이 아이맥스에서 볼 필요 있나"라고 토닥토닥해주신다. "안경쓰고 보는게 어디냐"고... "게다가 아이맥스는 더 비싸잖아"... 라고 말한다. "그으래. 우리가 사실, 영상미 따위를 아는 고급눈은 아니지..." 아암. '좋고 훌륭한' 시설에서 꼭 '좋고 훌륭한' 관점이 나오라는 법은 없는거다.
그이가 이렇게 얘기해줄 때면, 사실 참 좋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꼭 테이크아웃 잔이 아닌 머그잔에 달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참 예뻐보인다. 허름하기 그지 없는 명동 J극장에서, 다른 것도 아닌 2시간 반짜리 '지옥의 묵시록'을 다시보자 해도 흥쾌히 'YES'해주고, 종로 한 복판에서 천원짜리 와플을 먹자고 졸라대도 언제나 'OK' 해주는 우리는 참 가난한 커플... 맞는거지? 우리 참 가난한 사람들 맞는거지?
한때의 나는, 다른건 몰라도 소위 '문화생활', 다시말해 예술을 접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 돈을 아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밥은 굶더라도 보고 듣는 것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비록 비루한 눈과 귀를 타고났을 지언정,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듣더라도 티볼리 스피커로 들어야하고, 공연 하나 보더라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아야한다고... 그래야 후천적으로나마 귀한 감각을 얻을 수 있을 꺼라 믿었다.
하지만, 그 감각이란게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생성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감각보다 더 중요한건 사물과 예술을 대하는 감수성임을 그이는 이렇게 늘 가르쳐준다. 그 감수성이란건 다른 무엇보다,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데서 가장 정직하게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박한 마음가짐일 때야 보이는 우연들과, 이에 기뻐하는 일이 그 얼마나 소중한건지를 새삼스레 다시 한번 배우게된다.
'북유럽 어느나라 탄광 노동자의 뒷주머니에 꼽혀있는 하이덱거...'
그녀는 늘 어딘가가 아픈다네.
이런 데가 저런 데가
늘 어느 곳인가가.
아프기 때문에
삶을 열렬히 살 수가 없노라고
그녀는 늘상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있지.
지연된 꿈, 지연된 사랑
유보된 인생
이 모든 것은 아프다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그녀는 아픔의 최면술을
항상 자기에게 걸고 있네.
난 아파,
난 아프기 때문에
난 너무도 아파서
그러나 그녀는 아마도 병을 기르고
있는 것만 같애.
삶을 피하기 위해서
삶을 피하는 자신을 용서해주기 위해서
살지 못했던 삶에 대한 하나의 변명을
마련하기 위해서
꿈의 상실에 대한 알리바이를 주장하기 위해서!
그녀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네.
이런 데가 저런 데가
늘 그저 그런 어떤 곳이.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펼쳐두기..
7日 : 리꼽스까야 & 레르몬토프 장편 詩 셈나, 뒷풀이
8日 : 군주론 읽기
9日 : 음악회
10日 : 군주론 발제문 작성, 철학이란 무엇인가 읽기 ★
11日 : 군주론 발제, 뒷풀이
12日 : 들뢰즈 셈나
13日, 14日 : 전주
15日 : 성 읽기★
16日 : 지리철학 발제문 작성, 4대강 화토
17日 : 카프카 셈나 시작? 그렇다면 성 발제
18日 : 군주론 셈나★
19日 : 지리철학 발제
(★는 폐기작업 강제 야근의 날)
지랄맞게도 이런 식인 것.
더이상 '악'소리 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러다간 정말이지, 잡아 먹힐 것만 같아. 하하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디가서든 힘들다고 표를 내기 마련이다. 다른건 몰라도, 가족이나 애인한테까지는 티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아프다는 말이나 힘들다는 말로, 가까운 이들의 걱정을 사는 일은, 내 사전엔 절대 있을 수 없던 일... 헌데 요샌 왠일인지, 말끝마다 '힘들어 죽갔다'를 달고 산다. '힘들다'는 말을 뱉고나면 정말로 힘들어져, 갈수록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되는거다.
흔히들, 중요한건 '마음가짐'이라고 하지만, 이럴때 보면 마음 역시 신체의 일부일 뿐이라 느껴진다. 그 아무리 열정과 의지로 무장하려해도,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모래 위의 누각같은 모양새가 되버리는 것. 매번 아프다고 징징대는 것보다야, 홍삼엑기스라도 하나 더 챙겨먹는 편이 사태의 해결에 있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현명하지 못하게, 계속 칭얼대는 이유는 단 하나. 이제 슬슬 '핑계'란 게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아프다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이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핑계를 찾는다는 건, 언젠가 (핑계를 이유로) 내팽개칠 수 있다는 의미인 것. 당장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상황이 아니고서야, 아픔을 견딜 줄도 알아야하는거다. (역시나 변태같은 이야기이겠지만) 견디는 수준을 넘어 아픔을 즐기게 되는 경지라면, 그 전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 다른 것들도 보이게되겠지.. 그러니, 제발 좀 아프다고 징징대는 일을 여기서 멈춰야하는데... 가진 것 없는 내게 공부와 연구실은 최후의 노후 대책인 것인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고 있는건지, 매우 한심스럽다. 끌끌.
물고기의 집은 물,
새들의 집은 하늘,
내 집은 땅, 혹은 빈 배.
물고기는 강물 소리에 잠들고
새들은 달무리에서 잠들고
나는 땅이 식는 몸서리에 잠든다.
평생 눈 감지 못하는 물고기는
꿈속에서 두 눈 감고 깊이 잠들고
잠자는 새들의 꿈은 나무에 떨어져
달 없는 한밤에 잠든 나무를 깨운다.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내 집은 땅의 귀,
모든 소리가 모여서 노는
내 집은 땅의 땀,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과 번민과 기쁨과 열 받기.
행복한 상징의 속살을 지나고
긴 산책에서 돌아오는
내 집은 땅, 지상의 배.
저항하는 지상의 파도에 흔들리는
내 집은 위험한 고기잡이배.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 문학과지성사)
펼쳐두기..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뱀이 부시시 눈을 떠보았다.
- 그러나 아직 겨울이었다.
하도 땅속이 훈훈해서
개구리도 뒷발을 쭈욱 펴보았다.
- 그러나 봄은 아니었다.
어디서 살얼음 풀린 물소리가 나서
나무움들도 살포시
밖을 내다보았다.
- 그러나 머언 산엔 눈이 하얗다.
핸 멀찌막히 「驚蟄」을 세워놓고
이렇게나 따뜻하게 비췰 건 뭐람?
- 그러나 봄 머금은 햇볕이어서 좋다.
미치고 싶도록 햇볕이 다냥해서
나도 발을 쭈욱 펴고 눈을 떠본다.
- 그러나 「立春」은 카렌다 속에 숨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미래사)
펼쳐두기..
나는 오래 된 정원을 하나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아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위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을 숨어서 보곤 했지 왜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로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문학과지성사)
펼쳐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