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6일 금요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로서, 5일째.. 밤잠까지 설치며, 어찌어찌 두 편의 글의 초고를 마무리 지었다. 이번 글쓰기는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뭐라 표현할 수 조차 없을 정도... 진이 다 빠져버렸다. 사실 그동안, 글쓰기에 있어, 큰 압박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이렇게까지 힘들다는 걸 미처 몰랐던거다. 새삼스레 매일같이 글을 토해내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단해보여, 존경의 마음까지 생길 정도...

 

"비록 작가일지라도, 작가로서의 문장보다 인간으로서의 문장을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진실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문장강화 中)

각각 주제가 동떨어진 두편의 글을 쓰며, 그 막막함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책장에 꼽혀있던 '문장강화'가 눈에 띄었다. 한때 소설 좀 써보겠답시고, 사놓은 책이다. 예전엔 부끄럽게도 쓰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질러대도, 남들은 잘쓴다 잘쓴다며 칭찬해주었기에, 정말 거리낌없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산문이란 걸 써보려하니, 더이상 싸이월드식 글쓰기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 어떤 '넘사벽' 이 나타나더라. 그때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이태준의 '문장강화'... 고백컨데, 당시에는 뭐 이리 뻔한 말들만 써놓은 책이 있나 싶어 실망스러웠다. 검정교과서만큼이나 평범하고 지루해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의 끙끙 앓는 심정으로, 책에다 꼼꼼히 줄까지 쳐가며 다시 읽었다. 주문을 외는 심정으로 문장의 의미를 되씹었고, 인용문이 주는 문체의 뉘앙스에 귀를 기울였다. 그 결과, 어쨌든 글을 쓰긴 썼으니,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나보다. 결코 응답받았다 보일만큼의 세련된 글은 아니지만, 현재의 내가 가진 고민들이 어느정도 글에서 보인다.

 

 아주 쓰는 일이 '죽갔다'고 징징거리는 내게, 주변에선 '무슨 작가 하나 난 것 같다'며 놀려댔다.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릴 일이냐고. 그까이꺼 그냥 대강 하라고 말했다. 그러게.. 다 해놓고 나니, 왜 이렇게까지나 욕심을 부렸었나 싶어 조금 쑥스러워진다. 어차피 다 나 좋으려 하는 일들인데, 지나치게 오버하긴 했네.

 

 어쨌든, 결과의 질을 떠나 '끝'내놓고나니, '끝'장나게 후련하긴 하다아- :)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싶다. 몇 주째, 책표지만 만지작거고 있던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도 드디어 읽을 수 있구나아-. 다다음주로 예정된 '콩나물 국밥 투어'도 준비하고, 다다다음주로 생각하고 있는 섬진강 꽃구경 사전 조사도 해보아야지. 하하.

(S야! 부럽쥐? 그러니 너도 얼른 쓰셈요. 같이 남산 가야쥐..ㅋ)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별볼일 없는 일기

1. 어디가 특별히 아픈건 아닌데, 요즈음 몸 상태가 영 '꽝'이다. 혈압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는 탓에, 시도때도 없이 하늘이 핑핑 도는 현상을 체험중. 하긴 지난 몇 달간, 운동은 커녕. 숨차게 걸어본 일조차 없었으니, 저혈압 증세가 도지는 거야 당연한 결과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일단 무엇보다 '산'에 가고싶어서 아주 죽겠다. 북한산, '금金기운' 충전이 절실히 필요하다.

 

 

2. 이번주 안에 마무리 지어야하는 글들이 좀처럼 써지질 않아, 밤을 지새우고 있는게, 오늘로써 자그만치 3일째!

어제 억지로 꾸역꾸역 초고를 끝내놓긴 했는데... 오늘 아침 다시 읽어보니, 모조리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만 같은 말들의 조합이다. 당장 내일 셈나 텍스트를 하나도 읽어놓지 않은 상태임에도, 머리를 쥐어뜯는 심정으로, 백만년동안 책장에 구겨져있던 이태준 책까지 꺼내어 보았다.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젠장..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가진게 없는데, 당장 어찌하란 말입니까? Y.Y)

 

 

3.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 보는 눈이 형편없다는 걸, 이제껏 미처 몰랐어."

 

요사이 내 주변에는 워낙에 요상하고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 까닭에, 이러한 고민. 즉, '사람에 대한 실망'때문에 힘들다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가 꽤 된다. 때문에, 어제는 글쓰다말고(;), 자그만치 1시간 가까이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이러니, 글을 못쓰게 되는 걸까? ㅎ)

 

"사람이란, 누구나 다중적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한텐 한없이 나이브하고 선하게 굴다가도, 다른 사람에겐 악마가 될 수도 있는거 같아요. 이를테면, 나 역시 회사에서는 엄청나게 싸가지 없고 냉정한 사람으로 통하거든.. (읭? 원래 그렇다고?ㅎㅎ) 태초에 어떤 하나의 인격이 있었다기보단, 대상과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꾸어가며 사는게,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니 그렇게까지 서운해할 일도. 자책할 일도 아니예요. 그때,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아무일도 없었을테니깐...."

 

실로 오랫만에 나누는 '토닥토닥' 형 대화.

 

 

4. 오늘 기사화된  경기도교육청의 행보를 보고있자니, '상곤 아저씨가 이렇게나 호응해주니, 아이들 좀 많이 신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이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의식하고 주장한다는 현실이 어찌보면 안타까운 일이고, 다르게 보면 다행인 일이다. 이러한 '요구가 명문화되고. 안되고.' 보다 중요한 건, 이들에게 '요구라는게 생겨나는' 것.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의 '정치'이다.

 

 그래서일까. 다른건 몰라도 '경기도의 교육정책'은 항상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곤 한다, 올해 지방 선거가  유독 기대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 투표권도 없는 주제에, 경기도민들을 붙잡고 우리 상정 언니의 교육 정책에 대해 줄줄이 설명중이긴 한데...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편이라는 면박만 듣는 중이시다.

휴우 - 어느 누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려나. 쩝. (ㅋ)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꽃바람

 지난 주말부터 서울에는 완연히 봄이 왔다고 착각할만큼,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모처럼 찾은 동교동 산책길에서, 이제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진다고 반가운 비명을 질렀다. 남친님 역시(아니나 다를까.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카페에 앉아 ㅋ) 조만간 도래할 '노천 카페의 시즌'에 대해 설레여했다. 유독 길고도 지리했던 겨울이 드디어 끝난 것만 같았고, 이 기세대로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봄꽃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주말이었다.

 

 봄이 올 때면, 제일 반가운 건 다름아닌 '꽃'들이다. 나 이래뵈도 꽃을 좀 좋아하는 여자.(읭?) 우리 집에 배달되는 정기간행물중에는 자그만치 월간 '더 플라워'까지 껴있는게다! 서울토박이인 외할머니와 엄마 밑에서 자란 태생적 한계 탓에, 제작년까지는 쑥 나물조차 구별못할 정도로 자연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지만... 도시여자답게 어디가서든 꽃에 대한 안목은 상당히 세련되었다고 칭찬받곤 했다. 압구정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단골 샵에서조차 내 주문은 까다롭다며 혀를 내두를만큼, 플라워샵에서의 취향은 제법 '고급'인 편에 속한다.

 

'작년에는 꽂꽂이를 시작한 동생 덕에 색색깔의 거베라와 양귀비를 실컷 구경할 수 있어 참 행복했는데...',

'올해의 수국과 작약은 또 얼마나 예쁘게 피어날까?'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꽃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기장에...

 

 '꽃바람 부는 봄에 해야할 일'

 - 섬진강변에서 매화 구경.

 - 동백꽃 구경은 선운사에서.

 - 북한산 철쭉 바위들 껴안기.

 - 공주 꽃한정식집.

 - 파주 양귀비 언덕.

 - 양평 수국 숲.

 - 지산 작약 밭.

 - 뭐니뭐니해도 만월의 夜사쿠라는 남산이 제일이지.

 

 따위의 꽃바람부는 계획들을 줄줄이 읊어놓았다.

 

 이루어지면 추억이 될테고, 이루어지지 못하면 미련으로 남을.. 뜬 구름같은 공상 속에서 한참 헤매이다, 문득 작년 낙산공원을 오르다 발견한, 한참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던, 부숴진 연탄재 속에서 핀 이름 모를 들꽃 하나가 떠올랐다.

 

'섬진강 매화나 선운사 동백이야, 내가 아니여도 예뻐해줄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을텐데...'

'깨진 담장 사이에 핀 들꽃이나 개포주공 쓰레기통 뒷편의 벚꽃나무는 내가 아니라면 그 누가 알아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순간, 갑자기 머쓱해지고 말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예뻐하기란 참 쉬운 일이였던 것. 일상 속에 숨어있는.. 작고 보잘 것 없게 피어 즈려밟기 쉬운.. 이런 꽃들을 마주하는 날이면, 남들처럼 예쁜 것을 예뻐하는 일이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거대한 꽃들에게로의 여행이라.. 사실 '그까이꺼'라고 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유혹적이긴 하지만, 요새들어 왠일인지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들과 집 앞 가스 배관 뒤 잡초 같은 데 유독 눈길이 간다. 강변북로 언저리에서 자라나는 쑥들을 보고 있자면 애잔해지고, 봄바람 타고 우리 집 부엌 창가를 방문한 벚꽃잎 하나에 두근거리기도 한다. 이렇게,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예뻐보이고, 이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내 안목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올 봄에는 우선,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두꺼운 식물도감부터 한권 구입해놓아야겠다. 출근 길에, 산책 길에 마주칠 그 수많은 얼굴들과 '통성명'하며, 지금 부는 이 꽃바람에 응답하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귀가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집 앞 공원 입구에 있는 목련나무의 움이 제법 탐스럽게 커졌더라.. 봄과 봄날의 꽃들이 어느새 이렇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나 먼 곳에서만 이들을 찾고 있었다.

 

 

 

(↓ 이 무심하고 시크하게 꽂혀있는 꽃은 다름아닌 '진달래'씨.)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프렌치시크와 아메리칸그런지

  모름지기 데이트에 있어 그 어떤 일반적인 법칙이 있을 수 있겠냐마는... 매번 주말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 속으로 되풀이해 읊조리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자'라는 것... 연애란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자면, 일상의 일부분이라기보다는 비일상의 일부분인 건데, 거기에 대고 마치 그것이 마지막이라도 되는양 '투머치'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사실 일상이란 다분히 필연적인 것들의 연속이다.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출근을 하고 잠을 자는 일.. 아무리 반복되는 그것들에 지치고 피폐해졌다해서, 전혀 상관없는 우연에다 대고 한풀이하듯 피곤함을 보상받으려 해서는 안되는거다. 우연이란 자고로 우연이여야 아름다운 법. 이를 억지로 '필연의 평면' 안으로 끌어들이려하면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빛나는 우연에 자꾸만 집착해 일상화하려한다면, 우연은 더이상 우연이 아니게 되어버리는게다.

 

 (사랑의 정의를 섣불리 내리는 일이 그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냐마는...) 내게있어 사랑이란, 필연에 지쳐있는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러 찾아온 우연과 같았다. 사랑으로 꽉 막힌 일상을 위로받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풍성한 5월의 작약 꽃잎들 속에 푸욱 박혀 쉬는 것같은 망상에 곧잘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게 생활이, 일상이 되어봐라. 절대 위로받을 수 없다. 필연의 시궁창에 오염된 가짜 우연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화려해서도, 보잘 것 없이 소박해서도 안되는 것... 요즘들어 부쩍 시크하면서도 따뜻한, 평범하면서도 비일상적인 연인이 되고싶어진다. 리얼리티 티비쇼에서나 나올법한, 자기관리를 열씸히해 사랑받고 싶다는 뻔한 방법이 아닌, 특별한 우연에 걸맞는 또다른 우연이 되고싶다는 욕심이랄까. 이러한 역할에 걸맞기 위해서는, 매순간 어떻게 처신해야하나 싶어, 사실은 아주 약간 초조해지고 있다.

 

 

ps.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연을 정형화하려는 과욕에서 비롯된거겠지.

pps. Beck 오빠는 굳이 따지자면, 그런지보단 모즈에 가깝지만서도 일단은 그냥 패스!

 

아유. 답답

 써야할 글들이 너무 많이 쌓여, 그 어떤 것도 쓰지 못하고 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건드려야할 지..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를 몰라, 가슴이 벌렁벌렁. 걱정만 하고 있다. 오늘은 글이 제법 잘 써지는 신문로 모 커피숍에 틀어박혀 , 몇시간 동안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결국 단 한 자도 못쓰고 나와버렸다. 말하는 일과 글쓰는 일. 둘다 만만치 않음은 분명해보이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가 천백만배 어렵다.

 

 때문에, 일단 뭐라도 두드려보자는 심정으로 애꿎은 블로그 글쓰기 창을 열었는데.. 역시나 한숨만 나오고 도통 풀리지가 않아, 두개의 글을 끄적거리다 결국 관두어버렸다. 사실 이 블로그, 이런 식으로, 100개가 넘는 포스팅이 비공개로 쌓여져만 있는 상태. 블로그라기보단 노트인 셈이다. 베껴 쓴 시부터 발제문 참고자료까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연습장이 되어버린 곳. 나도 남들처럼 좀 세련되게, 매끈한 문장들로 가득찬 블로그질을 해보고 싶었는데, 왜 항상 이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 넘치게 되면, 그래서 이것들이 서로 비집고 나오게되면, 결국 출근길 병목현상마냥 꽉 틀어박혀버리게 된다. 하지 못한 말들은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하는데, 이를 자꾸 껴앉고 가려다보니 도무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요즈음이다. 일단은 말부터 정리를 해놓으면, 그 담에 뭐가 되든 써지겠지. 말이 문제다. 언제나 말이...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정서의 폭력성

 '살아온 일년' 내지는 '살아갈 십년' 따위의 단위를 붙인 시간을 언급하며, '사는게 참 쉽지 않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내뱉곤 한다. 하지만, 시간의 구성단위가 세분화될 수록, 이는 종종 망각되곤 한다. 이러한 망각 없이, 매분 매초 자신을 휘감는 정서에 온전히 빠져든다면 사는 일은 정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 아무리 아픈 서사의 순간을 경험하고도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울고만 있는 사람이 드문 이유 역시 그때문이다. 역설적인 두가지 혹은 다수의 정서를 동시에 경험하며, 어느 한가지를 쉽게 지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신 분열'이란 병명이 붙는 것은, 이러한 망각의 능력을 다수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통일된 한가지 정서만에 휩싸여, 오롯히 그것에만 휩싸여 있을 수 있다면, 오히려 삶은 훨씬 편해질 지 모르겠다. 아예 개인별로 타고난 정서란게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평생 동안 다른 정서는 모른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슬픔이나 아픔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이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뒤따를 생각이겠지만, 어차피 기쁨을 평생 모른다면 비교대상이 없으니 그렇게까지 힘든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으로 단위를 나눌 수 없을만큼의 매 순간, 반대되는 정서들이 교차되는 괴로움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같다.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월 초 개봉을 앞둔 팀버튼의 '앨리스'를 위해,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꼼꼼히 읽어놓았다. 동(유)음이의어로 장난을 치는 이 작품의 특성상, 번역서보다는 원서로 읽어야 제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보이나, 영화 한 편 보자고 그 정도로(!) 열정을 쏟아붓기에 나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ㅋ) 그나마 번역본은 한 이틀, 출퇴근 시간만 집중 투자하면 훑을 수 있을 분량이다.

 

 팀버튼의 앨리스는 위 두 작품을 모티브로 19세의 성인이 된 앨리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데,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나니, 그 스토리가 궁금해, 뱃속이 벌써부터 부글부글. 게다가 예고편 영상을 보니 역시 팀버튼 답게 '제대로 환상적'인 영상을 보여줄 듯 하다. 아바타 이후, 3D 영화는 쵸큼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어느새 아이맥스 3D 상영관 예매 오픈일을 뒤지게 되는 걸 보니, 역시 다짐은 무너지라고 있는 건가?(;;) 딱 앨리스까지만 보고 끊어야겠다.

 

 사실 굳이 라캉까지 끌어들이질 않아도 우리 몸의 '감각'과 '욕망'이란건 다 외부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게 자명해 보인다. 자꾸, 현란하고 멋진 영상들만 보게되면, 몸의 '감각'들이 자연스레 그것에 익숙해져, 좋은 것만 '욕망'하게 된다. 또한 좋은 것에 익숙해진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래서 놏치게 되는, 수 많은 사유들을 생각하면... 확실히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홀로 시네마테크나 씨네큐브에 들러, 불편하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스크린을 마주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역시 이러한 이유... 까닭에 내 몸의 '감각'이란 것들을 좀 더 '험블'하게 다뤄보자고, 스스로 되새김하고 있지만... 히유- 세상에는 유혹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

 

펼쳐두기..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음악사의 추억

 어제는 분명히 동네에서 맥주 '일잔'만 하자며 집을 나선 것 같은데, 귀가하니 자그만치 새벽3시(;;)

동네 술집은 이렇게 '맘 편히' 놀 수 있다는 장점 이면에, 이렇게까지나 '푹 퍼져' 놀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존재인게다. 어제는 명절 연휴라 그런가. 유독 동네 이자까야 사장님의 눈치가 심상치 않더라. 요 몇 달새 본의아니게(?) 들릴 때마다 폐장시간까지 버티고 있었으니, 하긴 충분히 그럴만도 하시다.

 

 어쨌든 이렇게 달달하게 취한 상태로, 중학생 시절, 서로의 음악 취향에 대해 우열 논쟁을 벌이다가.. 각자 음반 가게에서의 에피소드들이 튀어나왔다. 지금처럼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오로지 귀동냥만으로 음악을 찾아 헤매던 과정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은 역시나 밤을 세우며 풀어놓아도 충분치 않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재밌는, 그래서 다분히 시시껄렁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

 

펼쳐두기..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설날

 설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심심해하고 있는 식구들과 함께 K사에서 해주는 '산'이란 프로그램을 보며 경인년의 하루를 시작했다. 제주도 오름길에서 시작해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을 등반하는 유모씨를 보며, 엄마는 일명 '빠심'을 감추지 못한채 탄성을 지르셨다. 비록 다들 직접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대리만족하며 마음을 정화했고, 막 등반을 마친 심정으로 떡국을 후루룩 먹어치웠다.

 

 언제부터인가, 딱히 차례를 지내지도. 예배를 드리지도 않은 채, 조촐히 우리 식구들끼리만의 명절을 지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엄마는 "이게 다. 니가 지난번에 삼촌들이 교회가자고 그럴때 성질부려서 그런거다"라며 은근슬쩍 비난하곤 하지만, 뭐 크게 섭섭해하지는 않는 눈치. 굳이 명절때만 얼굴보고 모이는게 다인 관계를 지속해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신 역시 쉽게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보면 참으로 쿨하신 분들이다. 고작 둘뿐인 딸내미들 데리고도 어디에서든 외로워하지 않고 잘 사실 것 같다.

 

 금요일 저녁에 본가에 들어가 이틀이나 함께 살을 부비며 있었으니, 나 역시도 이번 명절에는 가족의 의무를 할만큼 했다는 생각.. 가벼운 마음으로 개포동 집으로 귀환을 마쳤다. 본가에서 뒹굴거리는 내내, 쌓여있는 발제들과 정리할 책들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젠, 밤 늦게까지 낭만주의 발제를 준비하는 날 보며, 엄마는 도대체 그런 짓을 왜하고 있느냐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고, 아부지는 '저러다 쟤, 일 하나 크게 치겠다'며 토닥거려주었다. 최근들어 기력이 부쩍 쇠해진 유리 옹께서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글을 쓰는 내내 내 무릎 사이를 꾸역꾸역 파고들었다.

 

  12일 아침. 여느때처럼 백화점에 화장품을 고르러 가면서 "설날 아침에 맥도날드에 가본 적이 있으냐"고 P에게 물었다. 명절이면 유독 갈 곳 없는 많은 이들로, 올해 역시 시내 곳곳의 패스트푸드점은 붐비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 모두 주입된 관념인 허상일 뿐이라고 아무리 내뱉는다 해도, 부비고 뒹굴 정해진 자리가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쓸쓸함을 100%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고아되기' 작업 역시 다 부르주아적 허영일 뿐이다. 경계 안에 속해있는 자가 그 아무리 경계 밖의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겠다고 몸부림쳐봤자,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정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올해도 무사히 집에 왔으니, 일단 커피부터 내려야할테고... 오늘은 치킨 배달도 안될테니, 데리아끼와 칠리소스에라도 닭날개들을 재어놓아야지. 유일하게 제대로 한다고 인증받은 엔젤스헤어 스파게티도 준비하고, 몇달동안 연습했던 야끼소바도 내어놓아야지. 미뤄두었던 '아마존의 눈물'을 보며 '간지럼과 위로'의 테마로 이야기도 나누고, 짐자무시의 '다운바이로'를 보며 다시한번 탐웨이츠의 매력에도 빠져보아야지. 가족들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나누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분주해진다. 사람 사는게 뭐 별건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서로 살을 부비고.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역시나 사람이 제일이다.

 

 

 

Happy New Year!

 

세상 모든 이웃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래요.

행복한 새해 맞이하세요

모두 희망과 도전할 의지를 갖기를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누운채 죽어있는 것과

다를바 없잖아요.

당신과 나와 함께.

 

지금 이시간.

이곳에 들른 당신.

부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할렐루야

 식구들이 틀어놓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어쩔 수 없이(!) 보면서, 내내' 볼멘소리'로 추임새만 넣고 있었으나... 맙소사. <Both sides now> 와 <Hallelujah>가 나오면서부터는 그냥 '닥치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 나올뻔 했다. 아- 이런 거에 감동받고 있다니.. 나 낭만주의 공부한 여자 맞구나.(;;)

 

나의 페초린.

어떻게 이이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도 '굳이' 고르라하면, '메리공녀'보다는 '베라'가 되고싶은게 여자의 마음)

 

펼쳐두기..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이른바, 찬밥 연대'의 꿈

 년 초에 잔뜩 내렸던 눈雪이 녹으면서, 집 안 천장 구석구석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한두방울씩 새는거야, 무심한 나로썬 '언제까지든' 참아줄 수 있는데... 요사이 앞 베란다 쪽은, 뻥을 좀 보태자면, 마치 바가지로 들이붓는 듯 물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독히 바쁘기도 하고, 언젠가 눈 물이 마르면 멈출 일이기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그냥 놔두었는데... 세상에나 이번 주는 3일 연속 비가 오질 않나, 심지어 눈까지 펑펑 쏟아지니, 상황이 심상치 않아보인다. 한여름 장마때도 무사히 버텨왔는데, 난데없이 한겨울에 이게 뭐람. 흑.

 

 애당초, 부모님 집을 지척에 두고도 굳이 독립을 한 이유는, '허구원날 카페나 피씨방에서 머무를 돈이면 충분히 집을 얻고도 남지..'라는 계산에서였다. 지인들과 새로운 음식들도 해먹고, 보고싶은 영화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했던 것. 하지만 (빈티지가 아닌)'낙후된 장소'와 (망할)'귀차니즘'이 만나, 결국 이렇게 공간을 독식하게 되어버린거다. 쉽게 말하자면, 올해들어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우리집에 '놀러오지 못했다'는 것.

먹을 것도 없고. 더러우며. 심지어 물까지 새는 집에 누가 놀러오겠나. 나같아도 안가. 쳇.

 

 "세상이 혹여 당신을 찬밥 취급 한다해도, 서러워말고 '우리'집에 오세요. 다른 건 몰라도 찬밥 한끼와 누추한 잠자리는 내어줄 수 있어요." 이것이 내가 꿈꾸는 '이른바, 찬밥 연대'의 모토 되시겠다. 그 어떤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더라도, 비루하나마 쉴 수 있는 공간과 토닥토닥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만큼 사는 데 있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있어, 든든한 원동력이 어디있겠는가. 거창하고 대단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딱 이만큼의 '꼬뮨'정신만 여기저기서 실천된다면, 그 아무리 지독한 신자유주의 세상 속에서라도 꽤나 살맛날 것같다.

 

 하지만, 이렇게 소위 '다방 마담' 같은 삶을 살려면, 돈도 있어야하고. 아는 것도 많아야하고. 말도 잘해야하고. 무엇보다 부지런해야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아직까지도 연대원이 단 두명인거겠지? (ㅋㅋ) 헛소리는 그만하고.. 명절 연휴에 누군가에게 김치찌개라도 하나 끓여주려면, 오늘은 밤을 새서라도. 어떻게든. 대처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내일부터 휴가는 시작되지만, 왠지 내일의 기상시간이 두려워진다.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홀로 여관에서 보내는 하룻밤 / 심보선

 

구름의 그림자가 火印처럼 찍힌 저녁 바다를 바라본다

나의 파탄이 누군가의 파탄으로 파도쳐 간다

어떻게 그댈 잊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사소한 기억들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그대를

 

수 개의 등불을 끄고 한 권의 책을 덮으면

이 방의 어둠은 완성된다

행간에 머물던 내 시선이 곁눈질로 더듬었던 달빛이

방 안에 순식간에 스며든다

 

나는 나를 간절히 안아주고 싶기도 하고

이 세계를 두 발자국 만에 짓눌러버릴

거대한 눈사람을 저 모래사장에 우뚝 세우고 싶기도 하다

간혹 내 머릿속에선

옷을 입고 있는 사람과 벗고 있는 사람이

나를 버린 이들의 목록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간간히 동시에 떠오르는 다른 죽음들

 

회환과 자조로 가득한 겨울밤

과거를 향하여 이를 가는 짐승

파도를 가지 치며 수평선 위로

쑥쑥 자라 오르는 미래의 날카로운 환상

그때 뜨거운 물을 숨긴 주전자 같은 영혼은

내가 셋을 세기도 전에 태어나는 것이다

완벽한 혼란이 아니라 혼란스런 완벽으로부터

 

여관방 구석의 냉장고에선

실금 같은 빛이 새어나와 세계를 야금야금 톱질하기 시작한다

 

결국 극단을 택할 것인가, 나는

 

(201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펼쳐두기..


 

2010년 2월 9일 화요일

품위

 제발 좀 품위있어 '보이고' 싶다. 설령 밥을 굶었더라도. 잠을 못잤더라도. 피곤에 찌든 얼굴과 종종 걸음으로 '나 바쁘요'라는 티를 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걸 부르주아적 허영이라해도 어쩔 수 없어... 실제로 물 밑에서는 갈퀴를 정신없이 흔들고 있더라도, 물 밖에서는 유유한 백조같은 '애티튜드'를 지니고 싶다. 한량이나 룸펜이 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렇게 보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요사이, 버스만 탔다하면 고개를 꺾은 채 숙면을 취하질 않나. 대화 도중(!)에 꾸벅꾸벅 졸질 않나... 평일엔 잠이 부족해 사실 좀 힘들다. 수면시간을 줄여 어떻게든 해당 스케쥴을 맞추면, 그 다음 스케쥴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대략 0.5배 정도 늘어나게 되는데... 학생도 아니면서, 집중력을 논한다는게 쵸큼 우습긴 하지만서도... 무엇에든 몰입할 수 없게끔 집중력이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점점 더 수면시간은 줄기 마련이고... 이러한 악순환이 무한 반복되시는 중이다. 그나마 주말만이라도 제법 푸욱 자고 끼니같은 끼니를 때우고 있기에, 숨이라도 붙이고 사는 셈.

 

 영화도 봐야하고. 음악도 들어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글도 써야하고. 친구도 만나야하고. 사랑도 해야하고. 효도도 해야하고. 돈도 벌어야하고... 히유- '할 일'은 태산인데, 실제로 '해낸 일'은 미미하고, 피곤만 누적되는 나날들...

나란 여자. 이제는 누가 봐도 제법 '바빠 보이는' 여자이며, 때에 따라 '벅차 보이기'까지 한다는데.. 요즈음은 '밥은 먹고 다니냐', '왜 이리 퀭 해보이냐' 라는 소리를 아예 달고 산다. 머리 속에서 자꾸만 '주의 경보' 싸이렌이 울리는 듯 하다.

 

2010년 2월 8일 월요일

After the goldrush / Neil young

 

 어찌된 일인지, 요즘들어 닐영의 이 곡을 한소절이라도 듣게 되는 일이 매일같이 생긴다. 횟수가 얼마나 잦았으면, 그저 단순한 우연이겠지를 넘어 무언가 기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중. 이를테면 소녀시대나 2PM보다 더 자주 듣게되니, 이곡이 마치 한물간 유행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10년 가까이 듣지 않던 곡이 어느날부터 매일같이 들려오다니...ㄷㄷ

 

 지난 주말, 실로 백만년만에 찾은 라커스에서, 남친님이 <닐 영으로 신청할까?>라고 하는 순간, <설마..>했는데, 역시나 'After the goldrush'를 적어내는 것을 보고 아주 약간 소름이 돋았다. 나중에서야 알고보니 그사람 또한 애초에 'Down by river'?를 신청하려 했는데, 잘못 적은 거라 했다.

 

이거 조금 무서운 이야기이지 않나? (ㅋ)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 김소월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으며
세상을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이 꾸밈은
닳아진 이 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 번 생각하라, 우선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 일진댄.
사는 법이 근심은 못 가른다고,
남의 설움을 남은 몰라라.
말 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에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는
그를 네길거리에 세워놓아라, 장승도 마찬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가끔 제 비위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기자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섧거나 괴롭거나.

(진달래꽃, 미래사)

 

 

펼쳐두기..


 

2010년 2월 4일 목요일

Cinnamon Chasers - Luv Deluxe

그냥 뿅뿅거리는 뮤지션중 하나이겠거니 했는데, 이분. 자그만치 데이브 데이비스 아드님 되신단다. ㄷ

다른건 몰라도 무심한건 참 한결같으시다. ㅋ

 

그건 그렇고, '요새도 제대로 된 뮤직비디오라는 걸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내 건방진 질문에, 이들이 제대로 응답해주셨다능..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굉장한 영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이렇게나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일곱차례나 이어진 통화를 끝맺는 'OO해.'는 내 비록 그대의 딸꾹질 덕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애써 들으려하지 않아도.

우월하신 샬롯님의 표정만큼이나 다 전해지는 것.

 

이것 참. 연분나는 밤일세.

 

(비록 이반 아탈이 이러라고 만든 영화는 아니겠지만.)

Happily Ever After.

 

2010년 2월 3일 수요일

그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과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거대한 뿌리/ 민음사)

펼쳐두기..

 

잡담

1. 굳게 결심했던대로 오늘은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와, 청소를 시작했다. 작년 9월에 사다놓은 파 한무더기를 오늘에서야 쓰레기 봉지에 넣을 수 있었다. 바짝 말라 속이 텅빈 그것들을 드디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후련한 마음 한켠으로 애잔함이 피어오르더라. 사는게 다 그렇지 뭐. 김선우의 시처럼 바람에 출렁이는 밀밭조차 여러갈래의 바람을 가지고 있는 건데,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어쨌든 '깨끗하게'란 표현은 양심상 차마 쓰지 못하겠고. '적당하게' 집안의 잡동사니들을 비워냈다. 그 언젠가 네바강에 가게되면 고이 묻어두리라 다짐했던 이런 저런 물건들을 다시 원 위치에 두며, 제프버클리 같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2. 블로그 메인 사진을 엊그제 샤를로뜨에서 조제로 바꾸며, 당연하다는 듯 '한달후, 일년후'를 들춰보았다. 조제와 사강은 어째 그 연상의 순서가 항상 이런 식으로 뒤바뀌기 마련. 역시나 운동이미지의 힘은 위대한 것일까? 지난 주에는 오랫만에 전혜린 에쎄이를 후루룩 훑다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되뇌였다. 이건 서사의 힘이라 해야하는 건가? 내 비루함은 항상 이런 식으로 드러나곤 한다.

 

3. '들뢰즈와 예술'의 '해석비판과 기계'장은 의외로 쉽게 읽어버렸다. 게다가 재밌기까지 했다! 참지 못하고 조급하게 징징댄게 아닌가 싶어 조금 부끄러워졌다. 무언가 적응한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일텐데... 섣불리 뭐가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 나쁜 버릇을 이 나이 먹도록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쓸까잉. 여하튼 덕분에 오늘은 1시 이전에 침대로 들어갈 수 있겠다. 매우 신난다.

 

4. 그나저나 샤를로뜨는 왜 저리 예쁜걸까? 너무 예뻐서 어쩔줄을 모르겠다. 날이 따뜻해지면 '바바리코트'만 입고다녀야지. 프렌치 시크란 역시 너무나 우월해보인다.

 

 

2010년 2월 2일 화요일

간행물녀

 개포동 집에는 (일간지 빼고) 자그만치 7개의 정기간행물이 배달된다. 모든 '정기구독'이란 게 다 그렇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봉투도 뜯지 않은 채 쌓아두는 일이 종종 있다. 잡지란 모름지기 시기를 놏치면 다시 펼쳐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쌓여가는 간행물들을 보다보다 못해, 결국 잔머리를 쓴다는게 화장실 앞에 미니 책장을 만들어보자였다. 그 본새가 썩 알흠답진 않았으나,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것들을 한군데 정리해놓고 나니, 확실히 중요한 순간(!)에 수시로 꺼내어 보기에는 아주 편리하다.

 

 이렇게 그간 쌓여있던 잡지들을 훑다가, '인물과사상' 2월호에 실려있던 R 멤버의 글을 발견! 제목이 자그만치 "여행이 공정하다는 의미.." 이다. 내가 '공정'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갖게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찌질한 이유는 별개로 제쳐놓더라도...; 어쨌든. 그간 의문을 품었던 개념에 대해 이렇게나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가 여럿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들어가느냐에 촛점을 두는 일명 '착한 소비'는, 자본의 '이른바 시초축적' 즉 그 근원의 폭력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이라는 시뮬라시옹을 유지하게하는 환상일 뿐이다.> 따위의 우스꽝스러운 문장들을 끄적대면서 간만에 잡지 읽기에 푸욱 빠져보았다.

 

  한때, 나는 세상의 모든 정기간행물들을 '갈아마시듯' 다 읽어버리고 싶다고 소망한 적이 있었다. 급하게 이것 저것 먹고싶은 것만 가득했던 내게 잡지, 간행물의 세계란 한꺼번에 조금씩 맛볼 수 있는 뷔페 같았던 것. 새삼스레 그때 온갖 글을 정성들여 읽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슬그머니 나온다. 오늘은 모처럼 얼른 집에 들어가 남은 책들 정리나 좀 하다가, 밀려있는 르몽드들과 놀아야쥐. 암. 사람이 쉴 때도 필요한 거다.

500일의 섬머

 여기 '진정한 사랑'을 숭배하는 톰이란 남자가 있다. 친구들과 카페에 몰려 앉아 '그녀는 나를 좋아할까?'를 수십번이고 되묻는, 하지만 친구들이 무어라 대답하든 그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어디선가 많이 본' 캐릭터다. 그러한 톰이 운명의 여자 '섬머'를 만난다. 곱게 기른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길 좋아하는 그녀는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아 '사랑따위는 개나줘'라 쿨하게 외치는 21C형 바이런식 여전사. '여자친구'라는 관계가 싫다는 섬머의 요구를, 톰은 다분히 '차이기 두렵다는 이유'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쇼핑센터에서 손을 잡고 다니고, 함께 샤워도 하는 애인같은 친구가 된다. '학교-집만 오고가는 모범생'같은 연애를 꿈꾸던 톰에게 이러한 관계가 애초부터 쉬울 리가 없다.

 

  감독은 이 영화가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강조하지만, 사실 이러한 일명 '0.65'짜리 연애는 세상에서 흔하디 흔한 것이다. 괜히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겠나. 그 아무리 '사랑한다' 귓가에 속삭인다 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게 사람이라는 존재. 연인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코저 하는 이는 역설적으로 그 관계에 확신이 없기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가 좀 더 확실히 관계에 대해 규명해주기를. 거짓이여도 좋으니 사랑을 외쳐주기를 기대한다. 왜? 그러한 형식 자체가 '사랑'이라고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톰은 섬머를 과연 사랑한 것일까? 영화 상영 내내, 톰은 섬머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를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톰이 사랑한 것은 '섬머'가 아닌 '섬머와의 로맨스' 그 자체 인 것이다. 그러니 그는 '섬머와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의 판타지'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실연 이후 톰이 스스로를 무너트릴 수 밖에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기인한다. 그녀의 현재를 보지 않고 추억만을 곱씹다가 쉽게 원망하고 저주하는 일은 사랑의 주체가 형식 그 자체인 톰의 서사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섬머는 과연 냉혹한 현실주의자였을 뿐인가? 애틋한 첫사랑에 대한 상처로 사랑따윈 믿지 않는다며 온갖 폼을 잡던 바이런이 사실은 지독한 낭만주의자였던 것처럼, 그녀 역시 이러한 낭만주의적 메타포에 자신을 끼워맞췄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히려 섬머는 톰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낭만주의자이다. 톰이 밤하늘의 별을 벗삼아 꽃점이나 치고 있는 '러시아 시골처녀'같은 로맨티스트라면, 섬머는 고독한 도시 남자인척 하며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반항적 낭만주의자'인 셈이다. 이러한 뻔한 낭만주의적 서사들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까지 아직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보고있자면, 확실히 '인류에게 지난 100년간 진보란 없었다'는 이론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연인과의 이별 후, '인지가능한 세상 모든 것들이 화석화'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필연의 운명같은 사랑'을 떠나보내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 모든 실연자들에게 '500일의 섬머'는 매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필연적인 사랑이 다가온다기보단, 필연적인 삶 속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그 거대한 우연의 조합을 자꾸만 필연이라고 왜곡해 인식하면, 가장 기본적인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조차 스스로 망각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실연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않고 이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려는 낭만주의적 희생자의 이미지를 '숭고하다'고 일컫은 괴테같은 이들도 있으니, 이것 참 못말리는 거대한 트랩이다. 그러니 정녕 당신이 경험한 '사랑'의 실체가 무엇이였는지 그 진리를 알고 싶다면, 이렇게나 뻔한 낭만주의나 로맨스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실제로 내가 사랑한 주체가 무엇이였나.'라는 의문을 던져야만 하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