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6일 수요일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

 

 

귀종 지상스님이 어느날 풀을 매는데 뱀 한마리가 불쑥 나타나자 호미로 찍어죽였다. 한 사람이 보고 말하되,

"오랫동안 귀종을 듣고 흠모하였더니 다만 행동이 거친 중을 보는구나" 하니, 귀종스님이 말하였다.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악惡'이라 규정하는 행위를 저지르려할 때, 갈등의 기본 근저는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라는 가치 판단을 묻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선악의 구도 내에서 교과서적으로 '이것은 악하니 하지 말아야하는데..'라고 금새 단정지을 수 있다면, 애초에 악한 행위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게 지속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이 것이 과연 '악'이 맞는건지에 대한 물음은 악행을 인정하는 동시에 악행을 부정해야만하는 아이러니다.

 

 악행을 하는데 있어서 보통의 경우는, 개개인 별로 그들만의 소위 합리적인 이유들이 치덕치덕 따라붙게 되는데, 문제는 그 합리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점일 것이다. '정당방위였나 아니면 과잉방위인가' 따위의 문제가 이어지게 되고, 문제는 근원을 파고들어 '그때 왜 그랬을까' 같은 존재 자체의 부정의 방향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혹 또는 이른바 '공범'을 찾거나 호의적 조언자를 구하기 마련인데, 이는 그 합리화 과정이 타인에게도 타당하게보인다는 동의를 구하고 싶은 속내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다, '어떻게 하면 악행을 편히 저지를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나면 결론은 허무하게도 다시 원점으로 회기. '왜 이렇게 바득바득 선행이 아닌 악행을 하려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결국 왜 어떤 것이 선/악 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버린다.

 

 요 며칠, 이러한 싸이클의 고민을 반복하다보니, 흰머리가 오만팔만개쯤 늘었다. 호르몬의 불균형도 심해져, 온 몸과 얼굴, 심지어 두피까지 끈적끈적. 내 존재 자체가 거대한 오니 무덤 속에 빠져있는 기분이다. 결국 고민의 종착은 오롯한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심장은 벌렁거리고, 머리는 어질한 상태. 이러고 있으니, 그 아무리 '디톡스 푸드'만 먹고산다 해서 몸 상태가 나아질리가 있겠는가. 결국은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는 물음을 한 톨 마음의 거리낌없이 던질 수 있는 경지까지, 즉 좀 더 고차원적이고 빈틈없는 '합리화'의 과정을 찾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마음의 상처만 곪게하는, 한갓 감정 나부랭이 따위에 연연치 말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자기자신을 죽이는게 낫지, 애초에 악행을 저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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