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대여섯 시간이였지만 모처럼 혼자 있게 된 지난 토요일 오후, 계획해놓았던 대로 서울아트시네마의 펠리니 회고전에 들렸다. DVD로 구매해도 2900원 밖에 안하는 펠레니의 대표작인 '길'을 굳이 스크린으로 보러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극장은 거의 매진 상태. 지난 십 년간 씨네마테크를 찾았던 이래, 이렇게 관객이 많은 영화는 처음이였다.
비록 지금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만큼 망가진 도시인 서울이지만, 그래도 '서울 살이'가 아직까지 그럭저럭 버틸만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서울아트시네마, 즉 '씨네마테끄' 때문이다. 20대 이전까지 내게 서울 시내란 '740번 버스'를 타고 엄마와 팥빙수 먹으러 다니던 추억이 전부였다면, 20대 이후 홀로 버텨야하는 시간을 견디게 해준 건 오로지 '씨네마테끄' 였을 지 모른다. 철없던 어린 시절,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그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알려준 곳도 이곳이였고, 밥벌이에 바쁜 지금까지도 어느 오후 하루, 아무 이유 없이 회사를 빠져나오는 날이면 무의식적으로 이 곳으로 향하는 일이 종종 있으니, 참으로 질긴 인연인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서울대입구로 돌아가, P. 에게 오늘 본 '잠빠노'가 얼마나 멋있었는 지에 대해, 실컷 수다를 떨었다. 유일하게 알아들은 이태리어, '마쬬'로 애교까지 실컷 부렸던 것. 일요일까지도 때마침 눈에 띈 서래마을 '젤소미나' 카페가 유독 반가워, 길거리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젤 쏘미이나아-'를 크게 외치기까지 했다.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으면, P.조차 '이런 영화' 보고 싶다고 고백했을까. ㅎ
생각해보니, 우리가 아주 어렸던 시절, 함께 본 세 편의 영화 중 두 개가 씨네마테끄 상영작이였다. '노동자다 아니다'를 보고나서 피맛골 고갈비집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살짝 털어놓았었는데, 사실 그때는 태연한 척 했지만 그 솔직함에 가슴이 약간 쿵쾅거렸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후 또다시 찾았던 그 곳에서 본 영화는 후안 룰포 원작의 '부의 제국'. 놀랍게도 P.는 이후 제법 멋진 장문의 영화 감상문을 직접 써 내게 보여주었는데, 뭐랄까. 영화를 마음 맞는 이와 함께 보는 일이 그 얼마나 짜릿한 기분인 지를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워낙에 혼자 쏘다니는 짓을 잘 하기도 하거니와, 또한 괜히 내 취향을 강요해 부담주게 될까 두려워, 사실 그 동안 함께 '이런 영화'를 보러가자고 P.에게 청한 적이 그간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조용히 '나도 이런 영화 보고 싶은데..'라고 이야기하는 P.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너와는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다'라는 P.의 말은, 어쩌면 그저 서로 치대는 것 없이 편하고자 내가 내세운 이기심이였을 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주말 무사히 살아 있게 된다면,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눈을 뜰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P.의 손을 잡고 펠리니의 다른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 내 생애 처음으로 고전 영화를 씨네마테끄에서 함께 보아주었던 사람인 P.와 아주 예전 그때의 기분을 살짝 나눠보고 싶기까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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