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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남베트남
195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된 베트남. 북쪽에는 베트남 독립동맹(월맹) 주도 아래,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세워지고, 남쪽에는 미국의 지원 하에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수립된다.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지주층과 군부ㆍ경찰 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반공 정책을 펴며, 베트남의 실질적인 국교였던 불교를 탄압한다. 표면상으로는 종교 갈등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하지만 사실 카톨릭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과 불교로 대표되는 민중들 간의 충돌로 해석된다. 1963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에서, 당시 남베트남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알려져있던 틱꽝득 대스님은 온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다. 이 광경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국의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었고, 온 몸이 완전히 재로 변해 주저 앉을 때까지 일체의 흐트러짐 없이 가부좌를 유지한 스님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당시 응오딘지엠 정권의 최측근은 이 사건을 '바베큐 쇼'라 발언하고, 이는 베트남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큰 분노를 사게 된다.

비타협과 저항의 상징, Rage against the machine
도심 한복판에서의 소신공양, 이 충격적인 사진을 자켓으로 한 데뷔 앨범을 발표한 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은, 틱꽝득 스님의 비타협적 저항 정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탄생한 밴드이다. 보컬 잭 드라로차와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를 주축으로,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한 RATM은 이른바 정치적인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였다. 92년에는 대중음악에 대한 일체의 검열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발가벗은 채 무대에 올라 14분여 동안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 지도자 레너드 펠티어의 변호기금 마련을 위한 무료 콘서트에서는 자그만치 7만달러를 모금한 전력까지 있다. 이들의 가사는 위스콘신 대학 논문 주제로 채택되기도 하였으며, FBI조차 그들의 행동을 주시한다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니, 그 의미나 사회적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RATM은 단순히 뮤지션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치적 구호이자 상징의 역할이였다.

RATM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멤버는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이다. 이태리계 여성 운동가 메리 모렐로와 케냐 독립 전쟁의 게릴라 단원이였던 은게테 은요로게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비단 하버드 출신 기타리스트라는 수식 외에도 기타줄을 짧게 줄여 맨 채로 연주하는, 특유의 스트로크 주법으로 더 유명하다. 랩메탈 혹은 하드코어 장르로 활동하던 비슷한 장르의 다른 밴드들이 주로 '그르렁'거리는 저음을 사용했다면, 탐모렐로는 '통통' 튀는 그루브함을 유지함으로써, 그 강한 정치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거부감없이 덩실대게 만들었던 것. 또한 신기에 가까운 이펙터의 사용으로 온갖 새로운 사운드를 창출하곤 했는데, (물론 지미헨드릭스같은 기타 연주자와는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나) 나름의 독보적인 기타리스트로의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다. RATM이 그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밴드의 위치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탐모렐로의 역할은 결정적이였다.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Killing in the name'이란 곡에서 그의 기타 솔로부분은, 유명한 기타 관련 잡지 <기타 월드>가 발표한 '우리시대 위대한 기타 솔로 100선'중 상위권을 차지했을 정도다.(위 동영상에서는 3분 50초 지점부터 시작)
2010, 다시 돌아온 RATM
2002년 밴드 구성원들끼리의 사상적 대립에 의해 해체하게 된 RATM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작년 연말 소위 '영국에서의 전투(BAttle of England)'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영국 싱글 차트를 내내 독식해오던 상업 자본에 반발한 한 영국 네티즌이, 'RATM 을 크리스마스 차트 1위로'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RATM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만일 우리가 크리스마스 시즌 1위를 차지한다면 수익금 전액을 노숙자들에게 기부할 것'이라 밝혔던 것. 이 방송을 들은 영국 누리꾼들은 17년된 RATM의 데뷔 앨범 수록곡을 결국 작년 크리스마스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RATM 은 재결합하여, 올 여름 무료 콘서트를 벌일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몇달 전 기타리스트 탐모렐로는 국내 언론에게 주목받게 되는데, 바로 그의 콜텍 노동자 지지 선언때문이다. 세계적인 기타 업체 '펜더' 등에 OEM 방식으로 납품하던 국내 기업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탐모렐로가 직접 나선 것. 그는 한국의 노동자를 위해 'Worldwide Rebel Song'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사건의 내막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다. 또한 펜더사에 직접적인 압력을 넣어, 펜더사로부터 '콜텍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이란 대답을 얻게 된다.

RATM의 활동 당시 행각에 대해, '반反자본'을 상업화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줄기차게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워낙에 과격한 비타협적 노선을 주창했던 이들이기에, 그 비판은 다른 비슷한 위치의 밴드들에 비해 강도의 수위가 좀 더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돈과 명성이 곧 계급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세계적인 탑 포지션이란 위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계급에 반하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들이 속해있던 소니 산하의 에픽 레이블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맑스 역시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에서 자신의 책이 팔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을 펼쳐 빈축을 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ATM은 세상에서 흔히 보여지지 않는 것들을 일반 대중에게까지 새롭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존재 가치가 충분했지 않나 싶다. 일찌기 김수영 시인이 '시인의 양심이 엿보이는 작품이 참여시'라는 정의를 통해, 현실과 타협치 않고 새롭게 현실을 인식케 하는 것을 참여시의 골자로 지칭했던 것처럼, RATM은 그들이 내세웠던 비타협 정신을 통해 부조리한 이 세계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2010. 남한, 일명 '대애-한민국'
1945년 열강들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된 한반도. 북위 38선 이남에서는 1948년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이 수립된다. 수립이후, 독재와 군부통치 하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에 2007년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4대강 개발 등을 밀어붙이는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윽고 2010년 문수스님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하라'는 유서와 함께, 두 손을 모은 채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친위 언론들은 이 사건을 '간추린 단신'으로 축소해 전하거나 아예 침묵해버렸으며, 정부 여당의 한 의원은 소신공양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아침(시간)에 선거를 앞두고 질문 자체가 적철치 않다', '사안이 명확하지 않다'로 잘라 말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을 접하고, RATM의 데뷔 앨범 'Killing in the name'을 떠올린 이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니였을 것이다. 2010년 대한민국에게, RATM은 다시 한번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자..이래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할텐가? (And now you do what they told ya?)"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틱광득 스님의 그것과는 달리, 하나의 소笑극으로 끝내버리고 말 텐가? 여기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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