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거짓말을 위해서 나는 수시로 체위를 바꾸었으며 까불대는 풀처럼 명랑했다"

'보이콧' 할 수 없던 경기
2010년 6월 한달은 월드컵 마케팅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유난스런 협찬사들은 지하철 한 칸에 통째로 잔디시트를 깔았고, 붉은 옷을 입은 스타들을 내세워 너도나도 서울 광장으로 응원 가라는 광고를 골목길 버스정류장 마다 붙였다. 월드컵 시작 전부터 서울시청 선점 문제를 두고 '붉은 악마'와 기업들은 떠들썩하게 옥신각신했고, 모 방송국은 독점 중계권을 무기로 이 기회에 한탕 벌어보겠다는 야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른채 대놓고 드러냈다. 물론 이제까지 있었던 각종 스포츠 행사마다 지나친 상업주의에 따른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 수위가 심하지 않았나 싶다. 하도 요란하니, 이 모든 광풍이 꼴보기 싫어지는 일종의 반발감(?)이 들어, 지난 한국 대 그리스전 경기도 '일부러' 보지 않았고, 예년 같았으면 밤새워 챙겨보았을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티비를 틀어 중계 방송을 지켜보게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이들은 다름아닌 '북한'의 대표팀이다.
(지하철에 설치되었던 모 기업의 월드컵 광고)
북한의 경기를 주시하게 된 건,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나 포르투칼과의 전반전에서의, 즉 전통적인 축구의 강호를 깜짝 놀라게 한 그들의 경기력때문은 물론 아니다. 또한 한 민족으로써 그들을 응원하라는 민족주의적 감상에 기대고 싶었던 것도 역시 아니다. 선수명단 표기의 오류를 두고 '북한 선수 4명이 이탈했다'고 떠들어대던 언론이나, '빨갱이'라며 북한 나아가 북한 사람들 모두를 이레 적대적인 괴물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하는 한국 정부의 획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였을까? 단순한 호기심이란 이유 때문에 보기 시작한 북한의 경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리만치 묘한 감동을 선사했다. 비단 최근의 천안함 사태가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북한의 이미지라는 것은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위 '김정일'스럽게 뇌리에 각인되어버리곤 한다.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은 '괴물'처럼,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의 표정과 땀방울은 이러한 이미지가 그동안 그 얼마나 덧씌워진 편견이였는지를 다시한번 새삼 느끼게 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싶은 '한여름 밤의 꿈'
'안토니 앤 더 존슨스'는 2000년 동명의 앨범 "Antony and the Jonsons"으로 데뷔한 밴드이다. 이들을 두고 기존의 슈게이징 사운드나 트립합 계열 같은 '약물음악'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소리를 '우왕우왕' 울리게 하는, 소위 '와우' 이펙터의 사용이 연주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세간의 평가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토니'의 음악에서는 기존의 '뽕스러운' 음악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느껴진다. 그 주된 원인은 보컬 안토니(Antony Hegarty)의 가히 순수하다 싶을 만큼 절제된 목소리때문이다. 첫 앨범 이후 발매된 2005년 'I am a Bird now'나, 2008년 'Another World EP'에서 보컬 안토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침잠하는 형태로 발전된다. 보컬의 바이브레이션은 갈수록 절제미를 더하고 있고, 이로써 그의 사랑 이야기는 좀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해왔길래,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보컬 안토니는 이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 호소력있는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청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그들의 프로필까지 찾게 만든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보컬 안토니는 밴드의 활동과 동시에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을 한 인물이다. (또한 "Epilepsy is Dancing" 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워쇼스키 감독 역시 동성애자로 익히 알려져있다.) 문제는 이같은 주변적인 정보를 접하게 됨과 동시에 기존의 감상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가 선사하던 서정성은 그들의 신분(?)때문에 급속히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서정성을 오롯히 무책임한 '풍광'의 측면에만 두고 싶어하는 다수에 속한 자들의 이기심은, 이 과정을 묘하게도 섭섭함으로 인식케한다.
흔히 서정과 감정은 한 개인의 내면의 영역일 뿐이라 여겨진다.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장르의 예술이 한 시대를 이끌게 되면, 곧이어 '서정성의 회복'을 주창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전제때문일 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서정을 오롯히 개인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아무리 소소하더라도 역사가 없는 개인이란 없고, 이야기가 없는 인생이란 없을텐데... 이러한 삶의 여정을 토해내는 서정의 영역에서 완전히 현실 참여적 혹은 정치적인 것들을 배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랑이든 '있는 그대로만' 존재한다는 관점은 일종의 허구이자 환상일 수 있는 것이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한없이 가라앉는 비애의 감상을 선사한다. 그 순간, 듣는 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들은 '아픈 것은 우리 뿐이다'라는 개별적인 비애를 '우리 모두 아프다'라는 보편적인 비애로 표현함으로써,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빨간 괴물'처럼 무언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일 것만 같던 북한 선수들이 알고보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땀을 흘리고 똑같이 기뻐하며 똑같이 아쉬워함을 알게되었을 때 느껴지던 감정들처럼, '안토니 앤더 존슨스'는 그동안 특별하다고만 여겨져왔던 소수자들의 사랑을 누구나 동의할 법 한, 극한의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함으로써 그 경계를 녹아내리게 만든다.
"고립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많은 누리꾼들은 북한 선수들의 경기력을 두고 '경기에서 지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가기에 저렇게 죽어라 뛰는 것'이라 농담을 던졌고, 유니폼이 부족해 경기 후 상대 선수들과 셔츠를 교환하지 못하는 걸 두고 그들의 가난을 비웃기도 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뛴 흔적인, 선수들의 몸을 두고 '초콜릿 복근'을 운운했고, '못먹어 마른거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교포 출신인 '정대세' 선수의 "이번 월드컵에서 북한 팀을 통해 북한이 고립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던 인터뷰 내용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들이 경기를 통해 보여준 것은 비단 이들의 땀이 섞인 꿈과 열정 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던지는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월드컵 광풍으로 다른 모든 경기를 '보이콧'해야하는 서글픈 현실 속에서도 나는 이들을 있는 힘껏 응원했다. 승패를 떠나 그들이 감내해야하는 그 모든 서러운 목소리를 맘껏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대여섯 시간이였지만 모처럼 혼자 있게 된 지난 토요일 오후, 계획해놓았던 대로 서울아트시네마의 펠리니 회고전에 들렸다. DVD로 구매해도 2900원 밖에 안하는 펠레니의 대표작인 '길'을 굳이 스크린으로 보러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극장은 거의 매진 상태. 지난 십 년간 씨네마테크를 찾았던 이래, 이렇게 관객이 많은 영화는 처음이였다.
비록 지금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만큼 망가진 도시인 서울이지만, 그래도 '서울 살이'가 아직까지 그럭저럭 버틸만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서울아트시네마, 즉 '씨네마테끄' 때문이다. 20대 이전까지 내게 서울 시내란 '740번 버스'를 타고 엄마와 팥빙수 먹으러 다니던 추억이 전부였다면, 20대 이후 홀로 버텨야하는 시간을 견디게 해준 건 오로지 '씨네마테끄' 였을 지 모른다. 철없던 어린 시절,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그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알려준 곳도 이곳이였고, 밥벌이에 바쁜 지금까지도 어느 오후 하루, 아무 이유 없이 회사를 빠져나오는 날이면 무의식적으로 이 곳으로 향하는 일이 종종 있으니, 참으로 질긴 인연인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서울대입구로 돌아가, P. 에게 오늘 본 '잠빠노'가 얼마나 멋있었는 지에 대해, 실컷 수다를 떨었다. 유일하게 알아들은 이태리어, '마쬬'로 애교까지 실컷 부렸던 것. 일요일까지도 때마침 눈에 띈 서래마을 '젤소미나' 카페가 유독 반가워, 길거리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젤 쏘미이나아-'를 크게 외치기까지 했다.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으면, P.조차 '이런 영화' 보고 싶다고 고백했을까. ㅎ
생각해보니, 우리가 아주 어렸던 시절, 함께 본 세 편의 영화 중 두 개가 씨네마테끄 상영작이였다. '노동자다 아니다'를 보고나서 피맛골 고갈비집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살짝 털어놓았었는데, 사실 그때는 태연한 척 했지만 그 솔직함에 가슴이 약간 쿵쾅거렸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후 또다시 찾았던 그 곳에서 본 영화는 후안 룰포 원작의 '부의 제국'. 놀랍게도 P.는 이후 제법 멋진 장문의 영화 감상문을 직접 써 내게 보여주었는데, 뭐랄까. 영화를 마음 맞는 이와 함께 보는 일이 그 얼마나 짜릿한 기분인 지를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워낙에 혼자 쏘다니는 짓을 잘 하기도 하거니와, 또한 괜히 내 취향을 강요해 부담주게 될까 두려워, 사실 그 동안 함께 '이런 영화'를 보러가자고 P.에게 청한 적이 그간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조용히 '나도 이런 영화 보고 싶은데..'라고 이야기하는 P.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너와는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다'라는 P.의 말은, 어쩌면 그저 서로 치대는 것 없이 편하고자 내가 내세운 이기심이였을 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주말 무사히 살아 있게 된다면,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눈을 뜰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P.의 손을 잡고 펠리니의 다른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 내 생애 처음으로 고전 영화를 씨네마테끄에서 함께 보아주었던 사람인 P.와 아주 예전 그때의 기분을 살짝 나눠보고 싶기까지 한 것이다.

당분간 매우 잡스럽고 볼 것 없는 내용들의 포스팅이 주구장창 이어질 예정입니다. 왜냐고요? 세상에나. 텍스트큐브 계정 자체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공지가 올라온 지 한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텍큐 툴에 가까스로 익숙해지자마자, 헤어져야하는 상황.. 이렇게 타의에 의해 마침점을 찍어야하는 상황이 오니, 포스팅에 갑자기 마구 집착하게 되네요. 그래서 당분간은 신변잡기 위주로 폭풍의 포스팅을 해볼까합니다. 어차피 백업같은 건 귀찮아서 못하는 스타일이기에, 여기 있는 글들은 조만간 허공에 사라져버릴테니까요..ㅋ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좀 더 조잘거리고 싶어졌어요. 말그대로 아주 그냥. 시원섭섭합니다.
이 곳에서의 첫 포스팅은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2009년 10월 25일 오후였어요. 첫포스팅을 하며, 이 곳에서는 남들 눈치 좀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만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써보자 싶었지요. 결국 이 곳에서도 방문자 수가 늘어 점차 숨어들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한 편이예요. 특히 실연의 기간 동안엔, (게다가 그 맘 때는 방문자 수도 거의 없었던 까닭에) 아주 그냥 '지대로' 한풀이를 해댔었지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때는 좀 죄송했습니다아. 푸훗 ;)
다른 텍큐 유저분들은 티스토리로 많이 가시는 듯 하던데, 1. 저는 어차피 초대장 줄만한 사람도 없고, 2. 무엇보다도 블로깅 자체에 회의를 안겨다주는 '검열'때문에, 망설여지긴 합니다. 게다가 텍스트큐브를 겪고나니, 좀 더 안정적이고 오래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주변에서 추천하는 개인 홈페이지로 가는 게 나을지, 아니면 편하게(?) 제 3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나을지, 당분간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요.
<앞서 일기에 써놓기도했던 넷북이 드디어 배송되어 오셨다! 움하하.>
사실 이 모든 '뽐뿌'는 S양 때문이기도 한데, 에세이 쓰기로 골머리를 앓던 그녀가 이윽고 회사의 공용 노트북을 빼내어 카페에서 글을 썼더니 잘 써지더라. 라고 간증한데서 시작된 것. 그동안 사실 동생님 넷북 덕에 어디에서도 글을 쓸 수는 있었던 나였지만, 이 얘기를 듣고나니 좀 더 키감이 좋은 넷북을 하나 장만해 맘껏 그리고 신나게 글을 써보고 싶던 마음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서투른 일꾼이 장비 탓을 하듯, 내 소유가 아니라 파일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불편한 키보드 탓에 오타가 작렬했던 동생님 넷북을 탓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 결국 큰 맘 먹고 일을 쳤다.
막상 물건을 받고 보니, 그지같은 '쌈쏭' 꺼라는 거 빼고는 대 만족이다. 키 감도 넷북치고는 훌륭해 IBM의 아쉬움을 제법 잘 달래주는데다, 사양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 한글 깔리고, 인터넷 잘되면 그만인거지 뭐.ㅋ 포토샵도 좀 버벅대긴 하지만 돌아가고, 가장 중요한 무게는 동생님 것보다 가볍기까지 하니, 나로써는 이만하면 되었다. 더불어 디자인은 흠.. '더이상 심플할 수 없다' 수준이라, 예쁜 스티커 하나 구해 쌈쏭 로고만 가리면 아쉬울 것이 없어보인다. 제작년 촛불 집회때 잔뜩 쟁여놓았던 한겨레 장봉군 화백님 스티커나 얼른 찾아봐야겠다. ㅋ
넷북 받은 기념으로, '안토니 앤 더 존슨스' 글을 마무리. 포틀랜드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고 경쾌하게 키보드를 누르고 있자니, 글쓰는 일이 제법 신나고 즐겁기까지 하다. 등산화를 사야 등산을 좋아하게 되고, 넷북을 사야 글쓰는 일을 즐겨하는 나는 역시나 '물신주의자' 였던 것. ㅋ 도구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신나있는 꼴을 보니, 이 것 참 우습지 아니한가.

이번주 월요일부터 회사 안에 건강검진 센터 부스가 들어섰다. 다들 오전부터 부지런하게 서둘러 검진을 받는 모양이던데, 나는 역시나 너무 귀찮아 하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검진 마지막 날인 오늘에야 다녀왔다. 그마저도 선택 검진인 무료 초음파는 귀찮아 패스해버린 상태. 왜 하필이면 몸이 이럴 때 건강 검진이 잡히냔 말이냐. (ㅜ) 나를 건강하게 해주려면, 일단 수면 시간을 좀 더 달라긔. 아님 밥을 좀 사주던가.
한가지 재밌는건, 키가 2년 전에 비해 자그만치 1센치 좀 안되게나 줄었다는 거. ㄷㄷ 명실공히 167대로 진입이다. 아무리 운동을 게을리했더라도, 키가 이렇게나 줄을 수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P.가 쬐그맣다고 놀리는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였어. 하하. 사무실에 들어와 키가 줄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자, 사람들은 노화가 시작된 증거라고 했다. 흐음. 2년에 대강 0.5cm 씩 줄어드는 거라면, 도대체 몇 년이 지나야 나는 소멸되는 걸까?
차마 근육량은 두려워 재보지도 않았다. 몸무게는 꾸준히 줄고 있고, 허리둘레도 감소 중이다. 한마디로 나란 사람은 전체적으로 쪼그라드는 중. 어릴 때는 또래 중에서도 제일 컸던 탓에 쉽게 눈에 띄어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였는데, 확실히 요새는 그런 경험이 적은 걸 보니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균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이게 비단 내 느낌만일까 싶었는데, 이렇게 수치화 된 숫자를 보니 역시 사실이였던 것. 잘하면 앞으로, 혹시 '찾아도 보이지 않는 작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미래를 잠시 꿈꿔보았다.
이번 주말, 그리고 다음 주말이 지나면 나는 얼마나 더 작아지게 되려나? 이렇게 한 없이 작아지다보면, 언젠가는 앨리스처럼 작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 조그만 출구를 찾을 수 있을만큼의 작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는, 어쩌면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훨씬 더 초라함이 수반 될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쪼그라들어 작아져버린 그때가 오면, 그래서 크고 당당한 이들 앞에서 고개를 수그려야만 할 때가 오면, 그 수그린 고개 밑으로 '작은' 그래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어야지. 그때 비로소, 내 발 끄트머리에 작은 출구가 보일지 모른다.
뭐 이런 식으로 서서히 소멸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멋진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나는 커트코베인과는 달라서, 초라하게 고개를 수그린 채로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그냥 이렇게 비겁하고 초라하게 살련다. 그러다 어느날 먼지가 되어버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없어질 거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신경써줄 것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흔적 없는 삶, 누구도 내가 왔다갔는지 모르는 삶. 역시 이런 꿈은 너무 '원대'한 걸까?
-- 지난 주까지만 해도 메슥거림때문에 혼자 있을 때면 연두부로만 끼니를 떼우곤 했는데, 어느 순간 '스르르' 나아져버렸다. 남들은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입맛 없다고 난리던데, 어찌된 게 나는 하루종일 배만 고픈 거다. 점심에는 칼국수 국물까지 통째로 드링킹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12:48)
-- 결국 넷북을 새로 장만하기로 결정! 8개월 째 동생 넷북을 주말마다 들고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스스로가 대단히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게되어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더라. 이왕 마련하기로 한거, '춈 좋은' 노트북 급으로 가느냐. 아니면 만만한 넷북으로 가느냐로 며칠째 끙끙 앓다가... 어차피 세컨인데다, 오로지 '글쓰는' 용도로만 쓰일 게 뻔하니깐, 결국 제일 싸고 제일 무식해보이는 요놈으로 선택. '팬시'한건 디자이너나 여대생들에게나 어울리는거고, 모름지기 작가의 넷북이라면 이렇게 순박해야하는거 아니겠솸?
(말은 이렇게 하고 있으나, 도시바나 소니 바이오가 탐나 눈물 찔끔.) (13:20)
-- 요사이 씨네마테끄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이다. 최대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피해보겠다고 조금이라도 진지해보이는 영화들은 요리조리 피해다니고 있는 요즈음이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고전 영화는 속된 말로 '땡길 때'가 있다. 이번주 토요일에 상영되는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은 예전부터 스크린으로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영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말 1시는 나에게 너무나 무리한 시간대인 거다. 아쉬운대로 4시 반 '길'로 예매 완료. 끝나고는 모처럼 인사동 '하루'에 가서 열공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잇힝 (14:19)
-- 아직 점심 먹은 지 3시간도 채 안지났는데, 벌써 자그만치 '배가 고프다'. 이럴땐 커피믹스로 배를 채우는 수 밖에 없다. 흙 (15:24)
-- 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서 현미 발아시켜야하는데, 깜빡했다. 약속을 잡아버렸다. 쳇. 웰빙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화. ㄷ (16:12)
+ 하루종일 배고팠다는 실없는 얘기만 써놨는데, 도대체 방문자수가 이게 왠일.. ㅜ (23:48)
귀종 지상스님이 어느날 풀을 매는데 뱀 한마리가 불쑥 나타나자 호미로 찍어죽였다. 한 사람이 보고 말하되,
"오랫동안 귀종을 듣고 흠모하였더니 다만 행동이 거친 중을 보는구나" 하니, 귀종스님이 말하였다.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악惡'이라 규정하는 행위를 저지르려할 때, 갈등의 기본 근저는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라는 가치 판단을 묻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선악의 구도 내에서 교과서적으로 '이것은 악하니 하지 말아야하는데..'라고 금새 단정지을 수 있다면, 애초에 악한 행위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게 지속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이 것이 과연 '악'이 맞는건지에 대한 물음은 악행을 인정하는 동시에 악행을 부정해야만하는 아이러니다.
악행을 하는데 있어서 보통의 경우는, 개개인 별로 그들만의 소위 합리적인 이유들이 치덕치덕 따라붙게 되는데, 문제는 그 합리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점일 것이다. '정당방위였나 아니면 과잉방위인가' 따위의 문제가 이어지게 되고, 문제는 근원을 파고들어 '그때 왜 그랬을까' 같은 존재 자체의 부정의 방향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혹 또는 이른바 '공범'을 찾거나 호의적 조언자를 구하기 마련인데, 이는 그 합리화 과정이 타인에게도 타당하게보인다는 동의를 구하고 싶은 속내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다, '어떻게 하면 악행을 편히 저지를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나면 결론은 허무하게도 다시 원점으로 회기. '왜 이렇게 바득바득 선행이 아닌 악행을 하려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결국 왜 어떤 것이 선/악 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버린다.
요 며칠, 이러한 싸이클의 고민을 반복하다보니, 흰머리가 오만팔만개쯤 늘었다. 호르몬의 불균형도 심해져, 온 몸과 얼굴, 심지어 두피까지 끈적끈적. 내 존재 자체가 거대한 오니 무덤 속에 빠져있는 기분이다. 결국 고민의 종착은 오롯한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심장은 벌렁거리고, 머리는 어질한 상태. 이러고 있으니, 그 아무리 '디톡스 푸드'만 먹고산다 해서 몸 상태가 나아질리가 있겠는가. 결국은 "그대가 거치냐 내가 거치냐?"는 물음을 한 톨 마음의 거리낌없이 던질 수 있는 경지까지, 즉 좀 더 고차원적이고 빈틈없는 '합리화'의 과정을 찾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마음의 상처만 곪게하는, 한갓 감정 나부랭이 따위에 연연치 말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자기자신을 죽이는게 낫지, 애초에 악행을 저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1. 주말내내, 월드컵 경기 피해다니느라 아주 혼쭐이 났다. 왠간해선 적당히 피해다니다 결국 어쩔 수 없다며 봐버렸을만도 한데, 함께 있던 P.가 흔들리는 의지를 강력히 잡아주었다고나 할까. ㅎ 오늘 모처럼 본가에 와, 부모님이 틀어놓은 TV를 훔쳐보고 있다보니, 새삼스레 월드컵에 대한 '보이콧' 의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섣불리 남들의 행동에 대해 가타부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되도록 멀리서 이 현상들을 지켜보자 다짐하고나니, 이 모든 것들이 우스워지기까지 했다. 엄마한테 살짜쿵 이런 생각들을 얘기했더니, (내 딸이 드디어 아나키가 된건가?)라는 매우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시더라. ㅎ
2. 7월부턴 정신 없이 바쁠 것이기에, 6월만이라도 한가함을 즐겨보자 했는데.. 때맞추어 아니나다를까, '게으름증'이 발동했다. 만사가 다 귀찮고 나른해진 까닭에 여전히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이건 뭐. 한창 바쁠 때와 매한가지다. 여름휴가 계획을 짜는 일 조차 귀찮아져서 일단 미뤄두었을 정도. 이렇게 빈둥거리다가 7월이 오면, 분명히 그때가서 후회할 것이 뻔한데... 쯧.
3. 본의아니게 락밴드와 정치를 엮어 2주에 한번 글을 쓰는 중인데, 이번 글은 정말이지 쓰기 힘들었다. RATM에 대한 내 애증의 골이 이렇게까지 깊은 줄은 이전엔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이기 때문. 그들의 혁명(?)적 언행들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던 아햏들에게, 그동안 그렇게나 냉소적이었던 건 어쩌면 이같은 이유에서였을거다. 너무나 기대했기에, 너무나 실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마음의 벽을 닫아버렸던 게 아닐까라는 조금은 서글픈 생각들도 들었고, 그래도 이 사람들 나름 치열하게 해왔구나란 생각에 토닥여주고 싶기도 했다. 헤어진 구남친도 아닌데,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일면식도 없는 뮤지션들에게 느끼고 있었다니, 역시나 난 대단한 오바쟁이.
4. 요사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찌하면 생활 쓰레기 배출양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이다. 개인적인 문서는 모두 이면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본의아니게 개인정보들도 마구 노출하고 있고, 비닐봉지는 무조건 재사용하겠다고 다짐한 터라 가방에 온갖 비닐봉지들이 굴러다닌다. 분명 애쓰고는 있는데, 배출되는 쓰레기 양을 보고 있자면 그 거대함에 한숨만 나올 지경. 과연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데, 나는 왜이리 거대한걸까?
(동영상 정보는 이곳 참조)
펼쳐두기..
1963, 남베트남
195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된 베트남. 북쪽에는 베트남 독립동맹(월맹) 주도 아래,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세워지고, 남쪽에는 미국의 지원 하에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수립된다.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지주층과 군부ㆍ경찰 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반공 정책을 펴며, 베트남의 실질적인 국교였던 불교를 탄압한다. 표면상으로는 종교 갈등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하지만 사실 카톨릭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과 불교로 대표되는 민중들 간의 충돌로 해석된다. 1963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에서, 당시 남베트남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알려져있던 틱꽝득 대스님은 온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다. 이 광경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각국의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었고, 온 몸이 완전히 재로 변해 주저 앉을 때까지 일체의 흐트러짐 없이 가부좌를 유지한 스님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당시 응오딘지엠 정권의 최측근은 이 사건을 '바베큐 쇼'라 발언하고, 이는 베트남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큰 분노를 사게 된다.

비타협과 저항의 상징, Rage against the machine
도심 한복판에서의 소신공양, 이 충격적인 사진을 자켓으로 한 데뷔 앨범을 발표한 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은, 틱꽝득 스님의 비타협적 저항 정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탄생한 밴드이다. 보컬 잭 드라로차와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를 주축으로,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한 RATM은 이른바 정치적인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였다. 92년에는 대중음악에 대한 일체의 검열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발가벗은 채 무대에 올라 14분여 동안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 지도자 레너드 펠티어의 변호기금 마련을 위한 무료 콘서트에서는 자그만치 7만달러를 모금한 전력까지 있다. 이들의 가사는 위스콘신 대학 논문 주제로 채택되기도 하였으며, FBI조차 그들의 행동을 주시한다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니, 그 의미나 사회적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RATM은 단순히 뮤지션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치적 구호이자 상징의 역할이였다.

RATM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멤버는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이다. 이태리계 여성 운동가 메리 모렐로와 케냐 독립 전쟁의 게릴라 단원이였던 은게테 은요로게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비단 하버드 출신 기타리스트라는 수식 외에도 기타줄을 짧게 줄여 맨 채로 연주하는, 특유의 스트로크 주법으로 더 유명하다. 랩메탈 혹은 하드코어 장르로 활동하던 비슷한 장르의 다른 밴드들이 주로 '그르렁'거리는 저음을 사용했다면, 탐모렐로는 '통통' 튀는 그루브함을 유지함으로써, 그 강한 정치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거부감없이 덩실대게 만들었던 것. 또한 신기에 가까운 이펙터의 사용으로 온갖 새로운 사운드를 창출하곤 했는데, (물론 지미헨드릭스같은 기타 연주자와는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나) 나름의 독보적인 기타리스트로의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다. RATM이 그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밴드의 위치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탐모렐로의 역할은 결정적이였다.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Killing in the name'이란 곡에서 그의 기타 솔로부분은, 유명한 기타 관련 잡지 <기타 월드>가 발표한 '우리시대 위대한 기타 솔로 100선'중 상위권을 차지했을 정도다.(위 동영상에서는 3분 50초 지점부터 시작)
2010, 다시 돌아온 RATM
2002년 밴드 구성원들끼리의 사상적 대립에 의해 해체하게 된 RATM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작년 연말 소위 '영국에서의 전투(BAttle of England)'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영국 싱글 차트를 내내 독식해오던 상업 자본에 반발한 한 영국 네티즌이, 'RATM 을 크리스마스 차트 1위로'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RATM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만일 우리가 크리스마스 시즌 1위를 차지한다면 수익금 전액을 노숙자들에게 기부할 것'이라 밝혔던 것. 이 방송을 들은 영국 누리꾼들은 17년된 RATM의 데뷔 앨범 수록곡을 결국 작년 크리스마스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RATM 은 재결합하여, 올 여름 무료 콘서트를 벌일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몇달 전 기타리스트 탐모렐로는 국내 언론에게 주목받게 되는데, 바로 그의 콜텍 노동자 지지 선언때문이다. 세계적인 기타 업체 '펜더' 등에 OEM 방식으로 납품하던 국내 기업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탐모렐로가 직접 나선 것. 그는 한국의 노동자를 위해 'Worldwide Rebel Song'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사건의 내막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다. 또한 펜더사에 직접적인 압력을 넣어, 펜더사로부터 '콜텍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이란 대답을 얻게 된다.

RATM의 활동 당시 행각에 대해, '반反자본'을 상업화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줄기차게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워낙에 과격한 비타협적 노선을 주창했던 이들이기에, 그 비판은 다른 비슷한 위치의 밴드들에 비해 강도의 수위가 좀 더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돈과 명성이 곧 계급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세계적인 탑 포지션이란 위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계급에 반하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들이 속해있던 소니 산하의 에픽 레이블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맑스 역시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에서 자신의 책이 팔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을 펼쳐 빈축을 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ATM은 세상에서 흔히 보여지지 않는 것들을 일반 대중에게까지 새롭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존재 가치가 충분했지 않나 싶다. 일찌기 김수영 시인이 '시인의 양심이 엿보이는 작품이 참여시'라는 정의를 통해, 현실과 타협치 않고 새롭게 현실을 인식케 하는 것을 참여시의 골자로 지칭했던 것처럼, RATM은 그들이 내세웠던 비타협 정신을 통해 부조리한 이 세계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2010. 남한, 일명 '대애-한민국'
1945년 열강들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된 한반도. 북위 38선 이남에서는 1948년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이 수립된다. 수립이후, 독재와 군부통치 하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에 2007년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4대강 개발 등을 밀어붙이는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윽고 2010년 문수스님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하라'는 유서와 함께, 두 손을 모은 채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친위 언론들은 이 사건을 '간추린 단신'으로 축소해 전하거나 아예 침묵해버렸으며, 정부 여당의 한 의원은 소신공양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아침(시간)에 선거를 앞두고 질문 자체가 적철치 않다', '사안이 명확하지 않다'로 잘라 말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을 접하고, RATM의 데뷔 앨범 'Killing in the name'을 떠올린 이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니였을 것이다. 2010년 대한민국에게, RATM은 다시 한번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자..이래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할텐가? (And now you do what they told ya?)"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틱광득 스님의 그것과는 달리, 하나의 소笑극으로 끝내버리고 말 텐가? 여기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일 것이다.

강물은 이제 범람을 모른다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내면 다스리는 자제력 갖게 된 이후
그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그의 성난 울음 여러 번 세성을 크게 들었다
놓은 적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약발 떨어진 신화
그의 분노 이제 더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늘 권태의 얼굴을 하고 높낮이 없이
저렇듯 고요한 평상심, 일정한 보폭 옮기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지혜를 읽지 않는다
손, 발톱 빠지고 부숭부숭 부은 얼굴
신음만 깊어가는, 우리에 갇힌 짐승 마주 대하며
늦은 밤 강변에 나온 불면의 사내
연민, 회한도 없이 가래 뱉고 침을 뱉는다
생활은 거듭 정직한 자를 울린다
어제의 광영 몇 줄 장식적 수사로 남아 있을 뿐
누구의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어떤 징후,
예감도 없이 강물은 흐르고 꿈도 없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찬란한 야경 품에 안은 강물은
저를 감추지 못하고
다만, 제도의 모범생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문학과 지성사)
펼쳐두기..
1. 며칠째 여기저기 선거 얘기만 하고 다녔더니, 이젠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똑같은 얘기들을 계속 반복한다는게 좀 우습기도 지루하기도 해서, 뉘앙스를 살짝살짝 바꾸어보기도 했지만, 피곤한건 매한가지. 오늘은 드디어 꽤 인지도 있는 필진(?)들에게서 '심각'하다 싶을 정도의 신파스러운 글들이 등장하기까지 했는데, 역시 이쪽도 내 타입은 아니야 싶더라. '공작'이든 '선동'이든 다 좋은데, 감정으로 두리뭉실 호소하려들면 묘하게 반발심이 생긴다. 그렇다고 완벽한 논리를 내세우는 쪽도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닌 것같고.. '이래저래 나란 사람은 비뚤어졌나봐'라고 고백하니, P.는 그게 예술가들의 특징이라 해주더라. 하핫 ; 뭐야.
2. 작년 10월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너무 바쁜 나머지 미용실에 단 차례도 못갔다. 전체 기장은 비뚤비뚤, 샤워하다 혼자 잘라버린 앞머리는 코믹 그 자체.ㅋ 이번주에 드디어 모처럼 시간이 나, 정말이지 '큰 맘먹고', '분풀이하듯' 셋팅을 말았다. 근데, 어이없게도 컬이 거의 나오지 않아버린 것. 흑. 지금 머리카락들이 태어나서 파마약을 한번도 맛보지 못한 '처녀'같은 아이들임을 나도 미용사도 고려치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컬이 희미하냐면 파마한 다음날 출근했는데, 동료 직원들이 머리한 걸 눈치조차 못챌 정도였다.;; 아놔- 나는 항상 이런식인가. 뭘하든 늘 어설퍼. ㅋ
3. 드디어 여름방학용 강좌 스케쥴이 오픈되었는데, 단연 눈에 띄는건 문학강좌! 을유문화사 전집에 유독 집착하는 스타일주의자로서(읭?) 슈니츨러의 라이겐을 강좌 핑계로 꼼꼼히 읽을 기회다 싶어 아주 약간 신이 나있다. 더불어 '몽유병자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고, 이 기회에 책장 한구석에서 썩어가는 곰브리치 미술사도 펼쳐볼 수 있을테니 좋다. 좋아! 하지만, 문제는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이 어마어마한 책을 과연 나같은 정신사나운 얘가 읽을 수 있을라나.
펼쳐두기..
강사: 고봉준
강좌회비: 10만원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소설가 헤르만 블로흐는 1848년과 1918년 사이를 “즐거운 종말”이라고 불렀다. 현대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두 연대 사이에서 그가 본 것은 근대의 고도성장이 아니라 가치의 타락과 몰락이었다. 이 강의는, 19세기 모더니티의 수도였던 파리와는 별개로, 빈-프라하-부다페스트로 이어지는 또 하나 모더니티의 계열을 뒤쫓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1강. (7. 5) 세기말 비엔나와 에로티시즘: 슈니츨러의 소설(빈 현대파)과 클림트의 회화(분리파)
2강. (7. 12) 아르누보 또는 유겐트슈틸
3강. (7. 19) 바이마르와 바우하우스
4강. (7. 26) 바이마르와 가치의 타락(1) : 헤르만 블로흐의 『몽유병자들』
5강. (8. 2) 바이마르와 가치의 타락(2) :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와 오스카 코코슈카
6강. (8. 16) 카프카․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쇤베르크
4. 역시나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일은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워낙에 욕심많은 소심증 환자라 그런지, 일단 누군가가 유심히 볼 글이라 생각하면, 쉽게 쓸 글도 끙끙 싸매고 고심하게 된다. 그 바빴던 지난 몇 달간, 하다못해 블로그에 쪽글이라도 쓸 수 있었던건, 이 블로그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안들어왔기 때문이였을 수도.. 헌데, 자꾸 공개된 장소에 이름을 걸고 글을 써야하는 일이 늘어나니, 요새는 첫 문장 운을 떼는 일 조차 쉽지 않아졌다. 게다가 '대운'의 해를 기념해 써보기로 결심한 편혜영/카프카 글은 심지어 아직까지도 전혀 구상조차 하지 못한 상태. 이러니 하롱베이고 싸파고, 여름 휴가를 가야겠다는 결심이 계속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후회할 것만 같아. 게다가 하루 4시간 수면 패턴이 장장 6개월간 계속되고 있으니, 체력도 바닥이 뭐야, 심연까지 다다른 상태고... 아유. 누군가 시간표라도 짜주었으면 좋겠다능. 아님 하루를 48시간으로 늘려주시던가..
5. 8월달에 예정된 국제워크샵을 위해 '타니가와 간'의 글들을 매주 읽는 중인데, 이 사람 글 정말이지 묘하다. 뿌연 글들을 이미지와 감각으로 읽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다분히 '논리적'인 사람들은 읽다가 미치겠다 싶을 정도. 그래도 문학 세미나를 꾸준히 해왔다하는 나 역시,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님의 침묵의 님은 국가 혹은 연인'등으로 도식화해 공부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하지만, 레토릭으로만 글을 읽기 싫다는 입장에는 역시나 또다시 묘하게 반발감이 들어 참느라 혼났다. 시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오히려 쉬울텐데... 다른건 다 떠나, 이해고 나발이고, 죽기 전 이런 문장을 흉내라도 내볼수 있으려나 싶어져, 매주 가슴이 부글부글해진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 오늘 세미나 내내 머리 속에서 맴돌아 혼났다.
아유. 이시간까지도 퇴근을 못하고 있는 남친님이 안쓰러워서,
기사라도 제일 먼저 봐줘야지 했는데,
졸려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 ;;
대신 피로회복용 '맛사지'나 실컷 해주어야쥐. :p
세타필 잔뜩 챙겨가야겠다.
그나저나 선거 기간 내내 그리고 개표를 지켜보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바그너의 음악만이 머릿 속에 맴돌더라.
참으로 폭력적인 사람들의 폭력적인 세상.
옥신각신.
소모적인 '키워'질도 이제 이것으로 끝!
어차피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내뱉고 있는 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선, 부르주아스럽더라도 '똘레랑스' 정신으로 무마할 수 밖에 없는게다. 뭐. 그것도 싫다면 평생 죽을 때까지 원망만하며 살던가. 네 맘대로 하세용~!
1.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면 그림자지는 '고요한 물결'같은 마음으로 지내보자고 결심한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흐려져 큰 일이다. 미운 말들을 내뱉는 입들을 향해 똑같이 미운 말을 내뱉어봤자, 결국은 함께 시궁창에 뒹구는 꼴에 다름아닌 것을... 5월에는 아무래도 시를 너무 적게 읽었던 탓일꺼야. 음악도 너무 하드한 것들만 들었다. 정서의 순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2. 여름 휴가 계획은 결국 아직까지도 결정짓지 못한 상태. 주말에는 EBS 세계테마기행 베트남 사파 편을 훑었는데, P.는 그냥 하노이 시내에서 '관광'이나 하라고, 저 곳을 어찌 혼자 가겠냐는 우려를 아주 약간 내비쳤다. 사파에서 겪게될 '감정적 스트레스'와 그 휴유증을 예상하자니, 확실히 겁이 나긴 한다. 게다가 역시나 올해는 이렇게 '사치'스럽게 돌아다닐 때가 아니다라는 자책의 감정도 여전하고... 그냥 어디 한적한 데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올까. 한시가 바쁜 요즈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정말 요새 바람이 들긴 들었는지, 수요일에는 모처럼 산이라도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하루종일 북한산 산행 코스만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오후에 비로소 번뜩 정신이 들어, 인터넷 창을 모두 끄고 '수요일엔 닥치고 연구실'을 결심. 세상에 어디 놀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다들 바람쐬고 싶고 놀고 싶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텐데, 왜 이리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마냥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새같은 때 일수록 한 자라도 더 들여다보고 더 많이 생각해야하는 것인데... ㅜ
3. 좀 더 세심하게, 워딩 그대로 꼼꼼히 듣고 기억해주어야한다. 요새들어 내 몸 힘들다는 핑계로, 너무 대강대강해왔다. 워낙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 한번 안하는 친구이니만큼, 좀 더 예민하게 눈치를 봐야하는 건데... 요새같아서는 가뜩이나 습관처럼 내뱉는 '미이안'이 제곱 이상 더 늘어버린듯. 잘해야지. 언제나 '쉘터' 역할은 내 것이다. 유독 눈이 많았던 지난 해 겨울, 어느 새벽의 밤을 'All I ask of you' 로 떠올리고 있자니, 전의마저 불타오르는 거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