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7일 토요일

감사.

요사이 나를 휘감고 있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다름아닌 '감사'이다. (감사합니다. 보다는 고맙습니다. 가 좋은 표현이라지만 '고맙'은 좀 이상하잖아요.ㅜ) 지독하게 유약해진 나에게 끊임없이 베푸는 모든 이들에게 정말로 고맙고 고맙다.

 

무엇보다 이중에서 가장 고마운 대상은 열번이고 백번이고 똑같은 책을 읽어주며 글을 익히게 해준 우리 부모일 것. 내가 만일 문맹이여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처받은 사람들'같은 글을 읽지 못했었더라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도선생님 세미나는 초창기 작품들을 모두 섭렵 후 중반기 작품들에 막 발을 내딛었다. 발전하는 그의 문체와 사상들에 내가 오히려 뿌듯해 어쩔 줄 모르겠다능...(하아. 이 건방진 태도는 무엇인가!)

 

다음으로는 절실히 필요했으나 어마어마한 몸값덕에 망설였던 중국어대사전을 자그만치 55%나 세일해 팔아준 헌책방님 되시겠다. 게다가 이미 한참 전에 절판된 루쉰의 잡문 전집과 아Q정전 원문. 거기에 다케우치 요시미의 평전까지 모두 다 구해놓은 상태. 그렇다. 루쉰의 원문텍스트와 전집 읽어내려가기를 동시에 진행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을유문화사의 소설집을 훑어보다 은근슬쩍 매료되버린 루쉰은 혁명과 그 과정에서 지식인의 좌절을 소설과 수필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켰다. 진짜 '혁명적' 글쓰기가 궁금하다면 루쉰은 빼먹을 수 없는 작가인 것!

 

게다가 요 몇일 나를 정념의 늪에서 구원해준 블랑쇼의 저작들을 내친 김에 구할 수 있는 한 모조리 긁어모았는데, 워낙에 절판된 책들이 많아서 아직 몇 권이 더 남긴했다. 그린비출판사님들. 제발 어서 빨리 블랑쇼 저작선집을 완성해주소서! '문학의 공간' 읽고 싶어서 몇일을 초조해하고 있다. 블랑쇼 이해의 필수코스인 '푸코의 문학비평' 같은 책은 4500원짜리 정가인 것을 자그만치 만원씩이나 주고 득템! 당분간 내 침대에는 블랑쇼만 출입 허가닷!

 

비록 종교는 없으나 일요일 아침은 그래도 경건하게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은 다음주부터 시작될 니체전작읽기 세미나로 말끔히 해소되었다. 때를 맞추어 '나를 알아보고' 새로이 로테이션된 커리큘럼에게 무한하게 감사를 올린다. 대략 한바퀴 돌려면 1년 반은 걸릴 대장정의 돌입. 하필이면 휑해진 주말에 맞추어 이런 기회를 잡다니, 이건 뭐. 운명이다.

 

그 외에 들뢰즈와 예술이란 테마로 음악,미술,영화,문학을 파트별로 접목시켜 1년간 연구할 프로젝트에 등록예정이고, 내년 1월엔 심보선, 조원규 작가들과 함께하는 모임에도 참가 예정이며, 맑스의 자본론 읽기는 당장 다음주 월욜부터 시작된다. 이 어마어마한 스케쥴에 정말 무한히 감사할 뿐이다. 일주일이 아주 그냥 꽉 차버렸네.

 

그런데도 당장 내일은 (텍스트들을 미리 땡겨 읽은터라) 너무너무 한가해져서 시네마테끄에서 상영되는 SF고전중의 고전인 '스페이스오딧세이' 예매를 해두었고, 20대 오빠들과 술자리도 약속해둔 상황. >.< 이렇게 정신없이 여기저기 감사하면서 이번 주도 잘 살아냈다. 혼자 지낸 주말이 이제 고작 2주째인데, 한 2년은 지난 것마냥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이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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