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거울에 자주 나타난다,
내가
재떨이를 찾아 책상까지 갔다가 오면서도
아, 내가 책상까지 갔다 오는구나, 생각한다
책상 모서리에 몸이 스칠 때
아, 내가 아직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
물로 채워진 어떤 덩어리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가끔 죽은 사람 생각이 들곤 하는데
말끝마다 씨발 하던 채광석이라는 자라든가
구반포 치킨집 부서진 치킨 앞에서 술 취하면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부드럽게 부르던 김현 선생이라든가
왜 그들의 音聲이 떠 있던 그 공간만이 생인가
그들의 목소리, 표정들, 성격은 幻影인가
턱 밑 털을 밀기 위해 추어올린 내 얼굴:
비누 거품을 허옇게 쓴 나의 헛것,
이것, 아무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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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서 지각을 하지 않았던 날들이 단 하루도 없었던 관계로, 아침마다 뒷 문을 통해 몰래 사무실에 침입하는게 이젠 일상이 되어버렸다. 매번 당당하지 못하게도 '아까-아까' 온 것마냥 시치미를 떼고는, 바쁜척하며 기록 창고로 직행해버리기 일쑤.(ㅋ)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우리 공장의 기록 창고는 그 외관도. 냄새도 마치 납골당의 그것과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망자들 대신 누군가의 기억과 사건들만이 누워있다는 것이겠지.
특정한 공간에 과연 시간이란게 축적될 수 있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요사이 자기 전에 한 두페이지씩 읽는 시집과 소설이 모두 내게 동일한 물음을 던진다. 그것이 종이 위의 글자라는 형태를 지닌 사물에 체화된 형태이든, 목소리ㆍ표정들ㆍ성격들에 대한 환영으로 재구성된 기억들이든, 그도 아니면 특정한 냄새나 공기로 발현해 그 흔적을 나타내는 것이든... 공간은 분명히 시간의 기억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지난 주말, 늦은 아침의 종로가 꼭 그러했다. 축적된 시간의 지층 중 유독 내 감수성을 자극했던 특정한 지층의 조건들을 재현해냄으로써, 지난 주말의 종로는 내 기억 속-그때의 종로로 나를 안내한 셈인 것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이 서러운 이유는 끊임없이 연속성을 지니던 시간들이 '이미지'와 '기억'이라는 외양을 덮어쓴 채로 지층마냥 퇴적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 또한 퇴적된 시간의 지층들 간 사이에 어느새 나도 모르는 거대한 분절선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종종 예기치 못하는 순간. 매일같이 퇴적되느라 지친 生의 시간에게, 공간은 끊임없이 마법을 선사하곤 한다. 그곳에선 죽은 자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헤어진 연인이 기꺼이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이다.
ps. 그나저나 반포치킨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저 환상적인 마늘 맛을 언제 보여줄 수 있을려나. 세미나 제끼고 '포장'이라도 해가야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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