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구매한 블레이크 시집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당췌 이 시는 없길래, 혹시나 싶어 대학생때 보던 교재를 뒤적거리다 간신히 찾아내었다(!). 어마! 이것이였어? 한국말로 옮겨져 들었을 때는 새로운 시같이 낯설더니만, 이렇게 활자화 된 형태로 접하고 보니 한 단어 한단어가 모두 눈에 익는다. 바로 존 던의 캐노나이제이션과 함께 내 대학시절 수십번씩 다이어리에 필사하곤 했던 두 편의 시중 하나였던 것. 그러던 때가 불과 5~6년 전 일임에도 이거 원. 기억이란게 이렇게나 흐릿해질 수 있구나. 단순히 멍청함을 한탄하기 전에 무언가 미스테리한 기분까지 들었다. 도대체 그 5년새 내 머리속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거지?
사실 몇년전부터 소설이나 시뿐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까지 싸그리 잊게되는 경우가 종종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어릴 때 총명탕이라도 먹은 것' 마냥 '정말 사소한 일들'까지 통째로 기억해내는 기염을 토하던 여자였는데말이쥐... 이렇게나 깜빡깜빡해진 나를 보고 <평생 안그럴 것 같이 굴더니만, 너도 변하는구나>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게... 여러모로 변한 것들이 많긴 하지만, 특히나 기억에 관해서 나는 너무 많이 무능해져버린 것이다.
5~6년 전이라면, 내가 이 빌어먹을 공장에 취직했을 무렵이다. 꾸역꾸역 폭탄주를 받아마시고 냄새나는 화장실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위액까지 모두 게워내야했던 바로 그 무렵부터인 것. 그 때 쏟아져나오던 오물들과 함께, 어이없게도 블레이크와 존 던의 시까지 쓸려갔었나보다. 허구원날 좀더 자알- 먹고 살아보겠다고 쪼들리며 밥벌이에 목멘 댓가가 이렇게 쓸쓸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긴-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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