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채 남겨진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
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
운 부분이 있다. 먹고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
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
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 주기 싫은 곳. 밥벌
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
선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나쁜 소년이 서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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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무렵인 것 같다. 방구석에 드러누워 라디오 선율에 발을 까딱거리며 책을 읽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드니, 울 아부지. 방문사이로 빼꼼히 날 지켜보고 계신다.
<왜?>
<발바닥이 불그스름한 걸 보니 우리 딸 아직 어리구나.>
참 시적이다 싶었던 그 순간이 어찌나 애잔했었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아빠의 표정과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발바닥에 굳은 살을 '덕지덕지' 붙이고 살면서도 창피한 줄을 모르는 30대 여성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인가 그 아무리 칼로 도려내어도 내 발바닥의 굳은 살은 '성장촉진제'라도 맞은양 재빨리 다시 자라나버리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더이상 예전처럼 열씸히 이를 제거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마치 날때부터 쭈욱 이 놈과 함께했던양 당연스레 여기기까지 한다. 울 아부지의 붉은 발바닥을 가진 어린 딸은 이렇게 굳은 살을 달고사는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스갯소리로 <나는 이제부터 '낭만주의자'가 될 것이야>라고 선언했는데, 곰곰히 되짚어 생각해보니 내게 있어 꽤 중요한 목표를 찾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은 살로 무뎌진 발바닥만큼이나 인생을 대하는 감수성에 있어서도 나는 너무나도 건조하고 황폐해져버린 것이다. 20대 후반때만 해도 하다못해 '분노'의 감정으로라도 눈물을 찔끔질끔 흘리곤 했었는데, 서른 살을 넘기고나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렇게 건조해진 내가 불쌍하고 아쉬워져 마음으로는 펑펑 울고 싶은데도, 막상 눈에서는 그 흔했던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다.
쉽지 않은 목표일 것이다. 감수성을 예민하게 다듬는다는 것. 나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그 첫 실천으로 다시 시집을 집어들었다. 낯간지럽다며 애써 감춰왔던 가슴 속의 낭만과 열정을 억지로라도 드러내 끄적거려보겠다는 결심에서다. 다시금 '블그스름한 발바닥의 소녀'가 되기위해 올해는 어디 한번 제대로 몸부림을 쳐보겠다는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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