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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핸드폰을 아이폰으로 바꾸면서, 푹 빠진 어플리케이션이 하나 있으니 바로 'Top 100s by Year'. 1947년부터 2010년까지, 빌보드 차트나 음반판매량과 같은 소위 '공신력있는 통계'와는 상관없이, 그 해 의미가 있었다 싶은 100곡의 음악을 장르를 불문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선별해놓은 소프트웨어다. 요즘은 특히 그중에서도 90년대 초반의 음악들에 사로잡혀 있는 중인데, 이 시기 음악들 중 단연 눈에 띄는건 일명 '시애틀 얼터너티브 락'이란 장르이다. 상업화된 주류 음악시장의 관습이나 규칙들을 거부한 '대안의 음악'을 주창하고 나선 얼터너티브 계열의 밴드들 중에서도, 특히 미국 시애틀 지역에서 탄생된 너바나, 펄잼, 앨리스인체인스, 사운드가든을 소위 '시애틀 4인방'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90년대 젊은이들의 공통된(?) 정서였다고도 할, '박탈감' 내지는 '분노의 감정'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져, 시애틀 지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90년대 중반 커트코베인(너바나), 레인 스텔리(앨리스인체인스)의 사망과 이어진 밴드의 해체 등으로 대부분 도중 하차하고 말지만, 이들 중 아직까지 꾸준하게(?) 살아있는 밴드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펄잼'이다.
2005년 한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뽑히기도 한 펄잼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임에도 상업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이들은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고, 큰 공연 대신에 조그만 소극장 공연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밴드이다. 한때, 자신들의 공연 입장료로 20달러 이상을 받으려는 거대 공연업체와 소송 끝에 공연을 취소한 사례까지 있을 정도. 펄잼의 리드보컬, 에디 베더는 미국 녹색당의 오랜 지지자로써, 한 인터뷰에서 “록 밴드의 가수가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도록 책임을 떠안는 상황은 어처구니없지만 예술은 결국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거기에 (우리의) 책임이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에디 베더는, 얼마 전 작고한 하워드 진과도 상당히 막역한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하워드 진은 ‘좌파들이 선명하고 일관되며 정서적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날 에디 베더는 과거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와 같은 존재이다'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펄잼은 평소, 내가 흔히 우스갯 소리로 이야기하곤 하는, ‘락-스피릿’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뮤지션 중 하나다. 락이란 장르를 정의하는 데 있어, (물론 수많은 나름의 기준이 있는게 사실이겠지만,) 기존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모색을 꿈꾸게한다는 지점에 바로 락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영국의 한 소설가는 ‘어린 아이들에게 총이나 폭력 비디오보다 더 위험하고 불행한게 바로 락 뮤직’이란 표현을 썼겠는가.
2004년 11월, 그러니까 지지난 미국 대선 기간에 펄잼의 에디베더는 부시의 낙선을 위한 'Vote For Change(변화를 위한 투표)' 투어를 참가하게 된다. 소위, '안티 부시 콘서트'였던 셈.. 미국 전역에서 진행된 이 콘서트에 불구하고, (다들 아시다시피)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 공연은 타임지 커버를 장식할 만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바 있다. 이자리에서 에디 베더는 이것이 단지 11월 대선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자하는 '변화'를 위해 여러분 모두가 투표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라 밝힌다.

(2004년 Vote For Change 공연, 체크셔츠의 곱슬머리 사내가 바로 펄잼의 에디베더이다.)
오는 20일이면, 5대 지방선거의 법정 개시일이다. 정서적으로도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긴 하나, 주목하고 있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현 시장의 지지율이 최근 50% 가까이 기록되었다. 진보매체의 모 정치부 기자조차 이번 선거에서 의외로 진보 진영의 승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예상했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역시 관건은 투표율이다.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같은 굵직한 선거에 있어서도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니, 지방선거는 말할 것도 없을 터. 지난 4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51.6%. 한마디로 국민의 절반만이 투표한 셈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진보적 성향을 띄는 20~30대의 선거율은 각각 33.9%, 41.3%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인터넷에는 '88프로세대운동본부'라는 카페가 개설되었을 정도. 88만원 세대인 20대들을 대상으로 88프로의 투표율을 이끌어내자고 독려하는 모임까지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88프로세대운동본부의 선거독려 포스터.)
"Rise! Life is in motion. I'm stuck in line. Rise!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일어나라, 삶은 행동이야. 우리는 그 선에 끼어있어. 일어나라,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어) 하워드진의 자전 에세이 제목이기도 한 이 가사가 떠올라, 펄잼의 ‘다운’을 골라보았다. 한때 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 '내 편이다 싶은 정당의 부재', ‘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방법이 왜 투표밖에 없는거냐’등의 볼멘소리를 내뱉으며, 투표라는 행위를 회의한 적도 있었다. 물론 에디베더의 말처럼 내가 세상에서 보고자하는 '변화'가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령 투표로 세상을 바꾸는 일까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이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친 짓’들에 제동을 걸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파괴와 살육에 시달리는 4대강, 급식비가 없어 점심을 굶는 아이들, 디자인 시정을 위해 봉쇄되고 박제된 서울 광장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닥치고' 투표해야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됐고, 투표’, ‘白辱이 不如一票’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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