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앉으면 중심이 다시 잡힌다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일어서기 위해 앉는다
만나기 위해서도 앉고
협잡을 위해서도 앉고
의자 위에도 앉고
책상 옆에도 앉듯
역사의 밑바닥에도 앉는다
가볍게도 앉고
무겁게도 앉고
청탁불문 장소불문
우리는 어디서나 앉는다
밑을 보기 위해서도 앉고
바닥을 보기 위해서도 앉는다
바로 보기 위해 어깨를 낮추듯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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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개시된지 2주가 흘렀다. P.의 입사이후, 몇번의 보궐 선거 빼고 진짜(?) 선거는 처음 치르는 셈이므로, 나 역시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오히려 당사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덤덤했는데, 괜시리 내 쪽에서 더욱 조바심을 낸 것 같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어쩌다보니, 선거기간 내내 주말까지도 P.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게 되었는데... 이래저래 동분서주 바쁜 스케쥴에 시달리는 남친님하가 퍽 안쓰러웠다는건 논외로 하고, 선거판이란 것이 정말이지 진절머리날만큼 지긋지긋하다는 교훈 아닌 교훈만 얻었다. 도대체 접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집단들끼리, 서로의 욕망만을 쫓아 부화뇌동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토악질이 절로 나왔다. 분명히 공부도 많이 하신 분들이고, 운동도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 하신 분들인데, 왜 저러나 싶을 정도였다. 허구원날 이런 꼴만 보고 있자니, 당연히 사람이 싫어지고 사회가 싫어지고 국가가 싫어지더라. 하루하루 '투덜이 스머프'마냥 상대를 원망하게 되는 자신을 관찰하는 일이 더는 못견디겠다 싶을만큼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정치 전반에 대해 혐오의식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 아무리 시궁창 같다고 해도, 현실 정치에 관심을 끄는 행위야 말로, (비단 브이포벤테타 속 무대 같은 현실이 도래하는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또다른 불순한 정치 세력을 존속케하는 시뮬라르크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떠날 수 없는 곳이라면, 제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는 것이 그나마 덜 억울한 일임을 스스로에게 애써 합리화해오고 있었다. 비록 내 목소리라는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死표 만큼이나 소수의 의견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래도 침묵하는 것보다야는 낫겠지... 싶었던 것.
어제 오후부터 언론을 통해 슬슬 흘러나오던 '심상정'후보 사퇴가 오늘 결국 현실이 되었다. 이 방면에 있어서는 전문가이신 P.는 진보신당이 어차피 학내 동아리가 아닌 정치정당인 이상, 단일화는 진보신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몇차례 내비쳤다. (물론 여기에는 다분히 정신병자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당원들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긴하다. 젠장. 명색이 좌파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법''법' 해서야 되겠어?) 하지만, 아무리 미래(?)를 위해 그게 옳은거다라고 되뇌여도, 단순히 유시민 그리고 국민참여당, 나아가 민주당이 과연 믿을만한 사람들인가? 라는 불안은 제쳐두고,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더라. '反엠비'라는 명분으로 모두를 한자리에 주저 앉게 만드는 건, 어쩌면 그 어떤 것보다 더 '엠비셔스'한 일일지 모른다. 흔히들,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는데, 분열이 왜 나쁜건데? 분열 안하고 모두 똑같은 목소리만 내면 그게 바로 파시즘 아닌가? 소수라는 이유로 다른 의견들을 묵살하는건 또다른 폭력이 아닌가? 라는 '악'소리가 절로 나왔다.
부동층을 확보하는 정도를 벗어나, 정치적 성향이 정해진 사람들을 흡수하려는 반칙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당당히 반복하고 있는, 지금의 가짜 진보 세력들에게 정말이지, 신물이 다 날 지경이다. 자신들과 같이 '앉지' 않으면 적이라 여기는 세력들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진보와 자유를 논할 자격이 있나? 지난주 노무현 서거 1주기 때문에 찾았던 시청광장에서조차 그 파시즘 내음을 애써 참았왔었는데, 이젠 더이상 못견디겠다 싶더라. 모두 까놓고 얘기해보자. 니들이 엠비랑 다른게 뭔데? 니들 정책 때문에 KTX 언냐들은 피눈물로 삭발을 해야했고, 울 엄마는 몸소 비정규직 투쟁 최전선에 서야했으며, 대추리에선 멀쩡히 잘살던 농민들이 죽어갔다고! 그럼에도 그 '신자유주의적'이던 노무현 정신을 그대로 잇겠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지금의 세력들이 당당히 스스로를 진보라 규정하며 나대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종일 트위터를 살피다보니, 비단 진보신당원이 아님에도, 이런 식으로 강요되는 단일화에 정치적 의사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투표를 거부하겠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띠더라. S양은 심지어, 투표용지에 기권을 각오하고 사퇴한 후보에 도장을 찍고 나오겠다 선언하기도 했다. 방향이 다름에도 무조건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지금의 단일화 방식에는 (나 역시 진보신당원이 아님에도) 진보 대 연합이 아닌 진보 할아버지라해도 협조하지 못하겠다. 엠비가 싫다고 외치며 지극히 엠비스러운 편법을 쓰고 있는 또다른 엠비같은 세력에게 자리를 내어주느니, 차라리 갈 데까지 가보는게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의를 위해서 더 나아보인다고... 이따위 침묵을 강요하는 지금의 니들이 엠비만큼이나 괴물처럼 보인다고... 먹먹하게 가슴을 두드리게 된다.
P.는 언젠가, 정치인들의 행보를 예측하려면 무엇보다 그들의 욕망을 관찰해야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예측하기가 쉬운 편이고, 오히려 진보정당쪽 사람들은 개인적인 욕망과 정의라 내세우는 명분 사이에서 고민하기에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진보든 좌파든 결국 지금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현실 속에서 명분과 이데올로기를 되찾는게 목표 아닌가? 모두 앉아 있는 그래서 고여 썩어가는 사람들을 좀더 나은 대안과 실천으로 이끌어야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망만을 앞세워 진보라는 환상과 감성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지금의 선거판을 더이상은 지켜보기가 힘들다. 일주일만 선거기간이 더 길었다면, 아마도 미쳐버리고 말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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