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방랑벽이 도진 듯하다. 생명줄이라도 되는양 아끼던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된지 이미 8개월이 지났음에도 연장할 생각을 안할만큼, 최근 몇 년,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꽤나 '금욕적'인 마인드를 유지한 채로 잘 지내왔었는데... 두번 다시 강남역 마실나가듯 해외로 여행 가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한 굳은 맹세를 그래도 그간 제법 잘 지켜왔던 것이다. 실제로 제작년 여름휴가는 촛불에, 작년 여름휴가는 스피노자와 함께 흘려보냈으며, 어쩌다 다가온 황금연휴에도 책읽기에 몰입하거나, 집청소 좀 해보겠다고(!) 몸부림을 쳤을 뿐이니, 내심 장하다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월요일 오전, S양이 메신져로 'ㄱ쌤이 열하에 간다는데 따라갈까봐요'라는 멘션을 날리고부터, 내 안의 나르치스적 기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골드문트가 되돌아오셨다. ㅎ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달 넘게 남은 여름휴가 계획에 돌입하게 되버린 것. 언젠가부터 가고싶은 곳 0순위인 뻬쩨르부르크는 지금은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는 상황이므로 일단 패스했고, 오래 전부터 막연히 꿈꾸던 국내 일주를 실행하느냐와 근교(?) 해외 지역을 나갔다오는 문제를 놓고 저울질이 시작되었다. 근교 해외지역으로는 아직까지 항공권 여유분이 제법 넉넉한데다 가격까지 매우 훌륭하신 베트남항공의 특판가에 힘입어, 북부 베트남 지역이 제 1순위로 물망에 올랐다. 일단 베트남은 하루 5불로 생활이 가능한 곳이니만큼, 기본 경비 지출에 있어서는 양쪽이 의외로 비슷한 수준.
굳이 기름을 낭비하며 해외로 여행을 가야만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가. 라는 다분히 윤리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이 머릿 속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마음이 점차 해외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누가 이렇게 'X같은'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의 알프스라고 불리우는 사파와 그 인근 지역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중인데, 이를테면 '여행객으로 인해 오염된 현지의 경제 혹은 관계들'같은 주제에 대해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지는거다. 저널리스트도 아닌 여행객 신분으로 다녀오겠다면서, 이 얼마나 '개같은' 역설과 허세이겠냐마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느낄 것인가'이다. '인간애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일정이 됬든, '착한 여행이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과정이 됬든, 무언가 문제 의식을 잔뜩 품은 채로 돌아올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주 내로는 답을 내야 뭔가 추진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텐데,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 조바심까지 난다. 하지만 며칠째 38L짜리 오스프리 가방과 45L짜리 '노스'페이스 배낭을 놓고 고민하다, 오늘 결국 나도 모르게 45L짜리를 주문해놓긴 했으니, 마음은 이미 베트남쪽으로 기운게 확실해 보이기는 하는데... ㅋ 에라이. 나 좀 속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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