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무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지니고
욕심은 없고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조금의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들어 알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수풀 그림자의
작은 짚을 인 초가에 살며
동쪽에 병이 있는 아이 있으면
가서 간병해 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지고
남쪽에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 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거리가 있으면
가서 부질없으니 그만두라 이르고
가뭄 때는 눈물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벌벌 떨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고
칭찬도 받지 않고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펼쳐두기..
'은하철도 999'의 원작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 미야자와 켄지의 시詩.
스스로에게도 혹은 그 누군가에게도, 골치 아픈 '걱정거리'이기만 했던 지난 몇 주간의 힘든 시간들이 기여기 끝이 났다. 마법처럼 몸은 예전 상태로 돌아왔고, 애당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소위 '감정적 스트레스'도 거의 없는 상태다. 요 몇 주, 특히 P.가 애를 많이 썼다. 고되고 힘든 건 매한가지일텐데, 지나치다 싶을만큼 토닥여주어, 고마움을 넘어 미안해졌을 정도. 속옷이 흠뻑 젖을 만큼 식은땀을 흘리다 깬 어제 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채로 한바탕 울고나와 P.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에효. 참으로 호되게 아팠었다.
사실, 6월에는 몸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것 하나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감사 시작인데 준비는 하나도 안해놓은 상태이고, 코 앞에 닥친 원고는 구상조차 못해놓은 상태. 책도 거의 읽지 못했고, 집 안 살림도 엉망이였다. 하루하루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귀찮고 지겨워져서, 사소한 일상조차 유지할 수 없었던 것. 역시나 치졸한 변명이겠지만,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만큼 무기력했고 힘이 부쳤던거다.
기본적인 텍스트조차 제대로 못 읽어간 지난 금요일 세미나에서, 누군가 켄지의 이 시를 읽어주는데, 눈물이 핑 돌만큼 고마웠다. 얼른 기운 차려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그제서야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칭찬받으며 사는 사람'까지는 못되어도, '걱정거리인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깟 '작은 비'에 굴복해 질질 짜서는 안되는게야. 뻔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다'라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그저 겸손해진 정도가 아니라, 치욕스럽다 싶을만큼 제대로 무너진 기분을 느꼈던 작은 시련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애써 괜찮은 척 해야만 했던 시간들도 끝이 났고, 이젠 정말 괜찮아진 것만 같다. 어서 기운차리고, 태산처럼 쌓여있는 '할 일'들을 처리하며 여름을 보내야지. 그리고나면, 한바탕 '씨익' 웃을 수 있는 가을이 성큼 와있을 거다. 그날을 상상하며, 오늘은 미리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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