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비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
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시든 꽃과 딱딱한 빵과 더럽혀진 눈雪을 사랑할 수 없
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썩어가는 생선 비리내와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아장거리는 애기 청거북의 모가지가 제 어미에게
얼마나 예쁜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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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 하나하나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무거웠다. 있는 힘을 다해 온 몸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귀가. 밥해먹기도 귀찮은 날이라, 집 근처의 떡볶이 노점에 들려 일인분을, 땀도 식히지 않은 채로 모두 먹어치웠다. 오늘은 기필코 머리에 트리트먼트를 하고, 얼굴에 맛사지도 좀 하려 했으나, 역시 귀찮아 아무 것도 못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온 몸이 푸석푸석해지고 있는데, 이래서야 아무리 명랑한 척 한다해도 명랑해보이지 않을 것 같아, 걱정만 앞선다.
이어 라디오를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았으나, 한페이지도 들춰보지 못한채 소파에 널부러졌다. 눈을 떠보니 10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계속 누워만 있었다. 술 한잔 거하게 걸치고 귀가하는 동생님의 현관문 따는 소리를 듣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침대로 향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자니 무언가 아쉬워 멍하게 앉아만 있었다. 다리미가 고장난지 어언 6개월이 다 되어가므로, 내일 입을 셔츠에 미리 물을 뿌려두었다.
3주 전에는 책상 옆에 선반이 떨어져 연필 꽂이가 온통 내동댕이쳐졌는데, 오늘은 디비디 선반이 떨어져 그곳에 올려져있던 액자가 산산조각이 났다. 전동드릴이 고장난지는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도무지 수리할 마음도 생기지 않아, 그냥 놔두었다. 하루하루 무너지는 얼굴마냥 집안의 집기들도 떨어지거나 깨어지고 있다. 그냥 다 버리고 도망가고만 싶다. 모두 다 귀찮다.
모 평론가는 '사랑이란 본래 나르시즘적인 자기 배려이기에, 서정적 사랑이란 상대방을 속임과 동시에 스스로 속는 메커니즘의 일종'이라 말했다. 타인에게서 타자성을 거세할 뿐 아니라 자아의 허구성을 살찌우는 이중의 기만이라는 것. 나의 근원적인 욕망과 충동을 순화시키는 세련된 방식인 동시에 타인의 치명적 욕망과 충동을 외면하는 편안한 방식이라 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 속고 속이면서라도 귀찮음을 덮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어쩌겠나. 하루살이의 기분으로 매일을 버티고 있는 요즈음 같아서는 이 모든게 허구이든 환상이든 감사할 뿐이다.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또다른 몰핀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더이상의 해결책은 없어보인다.
언제까지 썩은 내를 감춘 환상이 지속될 수 없으리란 건 어쩌면 진리일 지 모른다. 그 아무리 나를 버리고 타인을 위한다는 나르시즘에 휩싸여 애써 태연을 가장한다 해도, 언젠가는 떨어지는 선반처럼 무너지고야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와 '자아찾기'를 하겠다며 본성대로 지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것이 내 욕망을 순화시키는 것이든 타인의 욕망을 외면하는 것이든, 일단은 '오늘도 무사히' 정신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으로 보인다. 사랑스러운 것만을 사랑하는 저주받은 운명일지라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사랑하는 척 하다보면 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끊임없이 자기합리화의 변명을 찾으려면, 최면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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