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
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그 여름의 끝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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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계속해봐
에밀리에 아, 너에게 말해도 된다니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 만약에 내가 네 첫사랑에 질투를 느낀다고 하면 넌 날 비웃을테지?
아나톨 무슨소리야?
에밀리에 그렇지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뭔가 달콤한 거야. 우리를 애무해 주는 것 같은 고통 중의 하나지.... 그리고.... 나를 - 너와 이어주는 그 감정을 알게 된 그날은 내겐 의미가 있어. 아, 내가 지금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어! ..... 사랑이 뭔가 새로운 것을 의미했던 시절에 우리가 서로를 만났더라면, 누가 알겠어. 서로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을지? ... 아, 그렇게 고개를 가로젓지 마, 아나톨. 사실이 그렇다고. 그리고 너 자신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어- .
아나톨 내가?
에밀리에 "어쩌면 그것도 괜찮은지 몰라"하고 네가 말했어. "우리 둘은 모두 이미 성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단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거야"라고 말이야.
아나톨 그래....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때는 항상 그런 종류의 위안거리 하나를 마련해 놓지.
(라이겐 / 아르투어 슈니츨러 , 을유문화사)
출퇴근길, 슈니츨러의 연애 소설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상의 사랑이란 제각기 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이런 사랑 이야기를 읽는 건 여전히 힘들다. 남자들에게 여자란 과연 무엇일까. 자신만의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 만나 그 아무리 사랑이란 이름의 테두리로 스스로를 감싼다해도, 그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우리는 과연 사랑을 통해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것인가. 뭐 이런 흔하디 흔한 종류의 의문은 이제 지겹기조차 하다.
철없던 어릴 때는 나이 서른을 넘겨놓고나면 사랑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있을꺼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비단 '사랑따위 개나 줘' 정도의 깨우침까진 아니여도, 심장이 무뎌질만큼 낡게되면 왠만한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질 수 있을꺼라 생각했다. 까닭에 내 사랑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향한 학대의 다른 이름일 뿐이였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들에게 끊임없이 거짓 구애를 되풀이하다가도, 막상 마음을 얻고나면 휴지조각보다 못하게 내팽게치기 일쑤였다. 받는 일조차 되갚아줄 일이 막막하다는 이유로 귀찮아했다. 당연하게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아픔들에 기꺼이 몸을 맡겼으며, 칼라브루니마냥 이별 후에는 자유를 되찾았다며 내심 기뻐하기도 했다.
비엔나를 위시로한 합스부르크 문화권의 예술들을 훑고있자니, 이러했던 내 취향은 지독하게 데카당스적이였다 싶더라. 절박하다싶게 위태로운 그것들을 애써 태연하게 포장한 사랑은 그래서 서러울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그 모든 것들은 몰락의 길을 걸으며 부리는 허세에 다름아닌 것. 말러, 쇤베르크부터 클림트, 코코슈카 나아가 카프카에 벤야민까지... 이 모든 예술가들이 같은 기분으로 읽혀왔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거다. (이걸두고 '왜 나는 같은 독일문화권임에도 괴테나 헤세, 슈베르트가 그렇게 싫었던걸까'를 고민했으니, 역시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 비엔나나 프라하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지금까지도 눈을 감으면 새벽시간대 그곳의 카페 분위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건, 나는 여전히 위롭기때문일 수도 있다. '내츄럴 본 서러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여부에 따라 앞으로의 내 사랑과 인생의 모든 운명이 달라질 것 같기도 해서, 요즘은 날때부터 통통튀게 명랑한 아이들이 부러워 죽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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