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지는 것은
안 보는 편이 좋다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힌
나비들의 노고가 다했으므로
외로운 것이 나비임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돌들도 운다
꽃잎이 진다고
시끄럽게 운다
대화는 잊는 편이 좋다
대화의 너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외롭다고 발화할 때
그 말이 어디에서 발성되는지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눈물이라는 뼈 / 문학과 지성사)
펼쳐두기..
아프다고 빽빽거리며 우는 아이만큼 꼴보기 싫은게 없다. 애써 속으로 삭히는 피눈물 한 방울이, 소리내어 징징거리는 수천 방울의 물눈물보다 더 서러움을 알만한 나이는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면 결국 너만 손해라는 충고를 수 없이 들으며 살아왔지만, 그것이 후회가 적을 유일한 선택이며 성숙한 태도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진짜 여자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하는 법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울 아부지가 한강고수부지에서 내게 건넨 말. (때문에 유람선을 못타게 되,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애써 참고 웃고 있는 사진이 아직도 내 앨범 한구석에 꽂혀있다. 쳇!) 어린시절, 유독 눈물이 많던 나를 달래려는 의도에서 발화된 말인 걸 그때도 어느정도 간파하고 있었음에도, 이상하게 사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아픔을 꽉 깨물며 참곤 하는 내 미련함은 다 아빠 때문이다. (그러니 책임지쇼!)
아무튼 평소 지론이 이렇다보니, 고통받는 타자들을 만나게 될 때면 그 일그러진 얼굴에 '동정'을 느끼기보다는,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에 '존경'을 표현하고 싶어진다. 비록 표현되어지지 않는 아픔일지라도, 왠간히 무심하지 않고서야 그 고통이 전해지지 않을 리 없다는 믿음은 내게 여전히 확고하다. 하지만, 요새들어 유독 타인의 마음을 인식하는 능력이 조금씩 둔해지고 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 닥치곤 한다. 가끔은 내 몸이 아프고 힘들 때면 애써 모른체 하며 두 눈을 질끈 감기도 하게된 것이다. 고백컨데, 나 하나 편해보고자 꽃들이 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 했던 때가 있었다.
참으로 조용하게 봄비가 내리는 밤이다. 며칠째 쏟아지던 꽃비들이 사라졌고, 거리에는 그 쓸쓸한 흔적들이 사라진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지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고통의 전이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게 되는 밤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