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죽을 끓여 먹는 날, 싱크대 앞에 서서.
죽을 먹는 토요일은 진짜 죽이 된다, 죽만 남는다.
나는 죽사발을 들고 앉아 맛나게 떠먹는다.
그 순간, 모든 경전은 조용, 나는 문득 장님이 된다.
외팔이에 절름발이에 엉정벙정.
밥을 넣고 끓인 죽을 먹으면 나의 혀는 순해진다.
독설과 요설이 사라진다, 모든 꿈과 원이 죽는다, 죽처럼.
순해져 악한 내 마음의 뿌리가 통째 뒤흔들린다.
아 한그릇의 죽을 들고 서있는 詩夫여,
이 죽을 배우고 이 죽에 감사드리라, 어서.
토요일은 粥日이라네, 알곡밥을 먹지 않고 죽을 쑨다네.
곱은 불로 죽을 잘 쑤어, 잘 바스라뜨려 다스린 뒤
알곡이 없어졌을 때, 턱만 한 헌 주걱에 떠 받아
양지녘 한쪽에 가 앉아 고양이처럼 오직 죽만 먹는다.
담뿍, 담뿍. 왼손인 양 오른손으로.
나는 죽이 된다, 죽이라야 경계심이 죽는다.
육체 한쪽에 죽의 위만 달처럼 그릇처럼 남는다.
나는 이렇게 언제나 죽을 먹는 토요일에 도착한다.
저 죽을 먹고 앉은 화상을 보라, 토요일이다.
(201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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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부터였나?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거나 써야할 글이 밀려있을 때면, 다른 용무는 모조리 제쳐두고 집에 들어와 죽을 쑤곤 했다. 남아있는 찬 밥에 물을 붓고 끓이고 또 끓이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작은 아기들용 밥그릇에다가 몇 번이고 담아 들이키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저녁 식사 후 으례히 밀려오는 나른함도 적고, 무엇보다 사람을 이상하리만치 겸손하게 만드는 식사다.
한번은 남아있는 반찬들을 꺼내어 흰 죽위에 올려 먹은 적이 있었는데, 뭐랄까. 좀 개밥같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먹으며 살아야하나 싶기도 해, 아주 약간 서러워졌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무조건 흰 죽만 먹는다. 닥친 과제의 양이 유독 많은 날은 몇방울의 간장 조차 삼간다. 그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식사만큼이나 마음을 비우고 싶어지는 거다.
4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오는 봄. 세상이 온통 돋아나는 새싹과 꽃잎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 보인다. 누군가는 '뿅뿅'거리며 자라나는 새싹들의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는데, 내게는 '뽁뽁'거리는 소리로 들린다. 그토록 기다렸던 봄이지만, 막상 이렇게 닥치고보니 그 화려함이 요란하고 유난스러워 보이는 것.
그래서일까. 모처럼 내년 병가일수까지 소진하며 얻어낸 휴가를 앞두고, 오늘도 나는 죽을 쑤었다. 근 한 달가량 쥐고 살았던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오늘에야 덮었고,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를 책장 한켠에서 꺼내어 읽기 시작.. 한 낮에도 형광등을 켜두어야하는 볕들지 않는 집 한구석에서 그냥 이렇게, 조용하게, 책에 밑줄만 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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