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9일 금요일

병후(病後) / 이태준

 

 

병病

 

 하 생활이 단조로운 때는 앓기라도 좀 했으면 하는 때가 있다. 감기 같은 것은 가끔 앓으나 병다운 맛이 적고 또 누구나 걸리는 속환俗患인 데다, 지저분한 병이기도 하다. 병이라도 좀 앓았으면 싶을 때마다 내가 생각한 것은 학질이었다. 벌써 8,9년 전 동경에 있을 때 나는 2,3년 동안 여러 직의 학질을 앓아보았는데 나의 체험으로는 어느 병보다도 통쾌스러운, 일종의 스포츠미味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할 때의 그 아슬아슬함이란 적이 풀 패스가 되고 우리 피취가 투스트라이크 스리볼인 경우다. 그때 따스한 자리를 만나 이불을 푹 덮는 맛이란 어느 어버이의 품이 그리도 아늑하고 편안하고 또 그렇게도 다른 욕망이 눈곱만치도 없게 해줄 것인가! 그리다가도 그 소낙비 같은 변조와 정열! 더구나 그 열이 또한 급행열차와 같이 지나가버린 뒤의 밤중의 적막, 연정처럼 비등沸騰하고 연정처럼 냉각하고 연정처럼 고독한 것이 '미스 말라리아'다! 그의 스피드, 그 스피드로 냉각지대와 염열지대의 비행飛行. 그리고 나중의 빈 그라운드와도 같은 적막, 이것은 병을 앓았으되 한 연정과, 한 스포츠를 게임하고 난 것과도 흡사하다.

 그런데 이런 말라리아는 다시 오지 않았고 시원치 않은 감기나 가끔 앓다가 이번에 어디서 아주 몰취미 극極한 상인들이 욕으로나 주고받고 하는 따위에 걸려 5,60일을 누워 있었다는 사실은 좀 불명예의 하나다. 가가呵呵 (무서록 中 , 범우사 p.88)

 

건강

 

 나는 이번 병후에 완전한 건강이란 의심해본다. 나아갈 무렵 수십 일은 초저녁에 길어야 세 시간이나 네 시간을 잘 뿐, 그 긴긴 겨울밤을 뜬눈으로 밝히곤 하였다. 그 지루하던 시간에서 나는 몇 가지 소설 플롯을 생각하였다. 거의 전부가 슬픈 것들로서 그 인물들의 어떤 대화를 지껄여보다가는 내 자신이 그 주인공인 듯 흑흑 느끼고 울기를 여러 번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로 곧 집필하리라고 매우 만족하였던 것이 여러 가지였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붓을 들 수 있는 때 생각해보니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다. 하나같이 안가安價의 감상물뿐이다. 불건강한 머리로 생각되었던 것이기때문이리라 생각하였으나 그렇게 웃어버리고만 말 수 없는 것은, 건강한 때 그 머리로 쓴 것 중에도 뒷날에 생각하면 "이걸 소설이라고 썼나!" 생각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건강한 체하나 지금 쓴 글이 이 후에도 또 "이걸 글이라고 썼나!: 소리를 내 자신에게서 받을 것이 없으리라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언제나 나의 머리에 완전한 건강이 생길 것인가? 한심스러워진다. 이것은 모든 범재凡才들의 비애일지도 모른다.(무서록 中, 범우사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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