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는 도저히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보이는, 그래서 전혀 그 속내를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 라는게 있다. 이를테면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와 만난다거나, 모든 것을 떠내려보낼 듯한 거센 물살을 보게될 때 느끼는 감정들을 떠올리면 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매혹적이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두려운 존재. 그 감동과 두려움들은 종종 우리를 온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끔 사로잡곤 한다. 이것이 칸트가 소위 말하던 '숭고미美' 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항상 함께 하는 연인 같은 '근접한 타자'의 경우는 어떠할까? 흔히 서로의 비밀을 가장 농밀하게 공유하는 사이인 연인 내지는 부부라는 관계에서는, 상대에 대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쉽게 간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누구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근접한 타자에 대한 불가해성 역시, 비록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어떤 특정한 사건이 계기가 되면 마치 '괴물처럼' 두려움이란 실체를 드러내곤 한다.
미스테리하고 기괴해보이는 솔라리스 행성에서 주인공 켈빈이 마주친 '방문자'는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레아'다. 문제는 그녀가 분명히 죽었던 사람이라는 것. 켈빈과 말다툼 후에 자살로 목숨을 버린 레아가 솔라리스 행성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슬슬 좀 무서워지지 않나?) 켈빈이 레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지 못한다. 레아가 진짜 레아인지 조차 매순간마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애틋하다가도 어느 순간 소스라치게 두려운 그녀. 게다가 레아는 한시도 켈빈과 떨어져있지 않으려 내내 주변에서 머무르고 있다. (이래도 정말 무섭지 않나?ㅋ)
지젝은 '내부로부터 온 괴물'이란 저작에서, 과도하고 절대적인 근접성이 완벽한 타자성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소설에서 칸트의 '물자체' 내지는 '절대적인 타자'의 역할을 하는 솔라리스의 바다가 주는 두려움이나, 항시 곁에 붙어있는 '근접한 타자(이웃)'이 주는 두려움은 그 성질이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뿐이다. 켈빈이 레아를 다시 잃고 솔라리스의 바다를 향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 것. 하지만 바닷물은 그를 에워쌀 뿐, 그들 사이에는 결코 제로가 될 수 없는 '거리감'이란 게 존재한다.
+ 강좌때문에 단 이틀 만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후다닥 읽어치웠는데, 아놔- 이런 훌륭한 소설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먹듯 후딱 치워버리다니... 진심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어떻게 대강 정리라도 해놓으려 했지만, 이 놈의 밥벌이 공장은 이번주에 특히나 쉴 틈을 안주시네. 일단 대강 써놓고, 나머지는 지젝의 강의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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