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서울에도 설레임과 수줍음을 한껏 뽐내는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식당을 찾아간다는 핑계로 봉천동 벚꽃 길을 한시간 가량 하염없이 걸었는데, (비록 날이 흐려 달빛은 구경조차 못했고,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이내 코 밑이 새까매지긴 했지만...) 황홀하다는 감정이 절로 생겨나더라. 하긴 봄날 밤 꽃을 벗삼아 걷는 일만큼 설레이고 짜릿한 경험이 또 어디있겠나.
해마다 오는 봄이고, 때 되면 피는 꽃인데... 올해는 유독 유난스럽다. 하나 둘 피는 꽃을 보고있자면, 다른 해에 비해 특히나 더 감격스럽기까지 한 것. 아직 채 시작하지도 않은 봄을 두고, 벌써 그 아쉬움을 남길 '끝'에 대한 생각으로 살짝 괴로울 정도다. 하나의 계절이 이렇게나 다양한 정념을 선사하는 걸 보고있으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게 얼마나 큰 오류인가싶다. 비록 우리는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자연과 촉수로 교감하진 못하지만, 꽃과 숨과 달과 바람과, 도무지 한계가 가득한 언어따위로 형상화 할 수 없는 수 많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간단한 회식을 마치고 봄비 내리는 밤, 꽃을 벗삼아 다시금 살곰살곰 걷고 있었는데, 달콤한 버버리향을 살짝 풍기는 왠 미중년이 나타나 함께 우산을 쓰자고 말을 걸더라.. 예전같았으면 야심한 밤에 인적 드문 골목길을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게 심히 부담스러웠을만도 한데, 웬일인지.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싸그리 사라져, '감사합니다'라고 꾸벅 인사를 하고 함께 걸었다. 꽃들과 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처럼 따뜻한 기분으로 귀가.. 이번 봄은 정말이지, 찬란하기 그지없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하루하루, 내 인생 최고의 봄날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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