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가시가 한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글을 읽는 동안
지금은 다른 몸이 한몸에서 갈라져나온 시간을 생각하는 동안
꽃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가시를 품는 것이라는 것을 새기는 동안
꽃이 오셨다
어쩌지 못하고 물외처럼 순해지며 아픈 내 마음이며
줄기와 잎이 가시로 덮였어도 외꽃처럼 고울 그대에 대한 생각이며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몸의 그리움을 마음의 그늘로 염하는 시간이며
(귀가 서럽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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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 오늘은 모처럼 서점을 둘러보고 싶었다. 하루종일 소중한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메모까지 작성하느라 눈물을 쏘옥 빼냈으니, 이제는 오롯한 내 차례다 싶었던 것... 사실 이 모든 감상은 일주일간 세미나 일정이 모두 취소된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대흠의 다른 시집을 산다산다하며 못산 게 벌써 언제적 얘기였나 싶어, 여유롭게 걷는 걸음이 무척이나 달콤하다고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걸려온 C선생님의 전화는 당장 이번 주말까지 일단 두 개의 발제문을 토해내야한다는 사실을 번뜩 일깨웠고, 결국 삼성역 매표소에서 서점이 있는 6번 출구가 아닌, 집을 향한 3번 출구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사실 어찌어찌 막상 서점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요즘은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에 예전만큼 그곳에서 오래 있지 못하곤 한다. '읽어야 할' 텍스트들도 감당이 안되는 상황에서 '읽고 싶은' 텍스트들에 빠져있는다는게, 시작하기 전부터 무모하고 사치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맘먹고 서점에 입장하더라도, 결국 아쉬운 마음을 안고 문예지와 시집 코너만 살짝 훑다가 돌아오기 일쑤다. 서점과 도서관 서가코너에서 맘껏 파뭍혀 본게 도무지 언제였었나. 이젠 도무지 기억 조차 나질 않는다.
요사이 나와 비슷한 일명 '주경야독의 스케쥴'을 달리고 있는 후배 (아니 이젠 학인이라 불러야겠지), S양 역시 이러한 종류의 피로감에 시달리는 중이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매주 카드를 돌려막는 심정으로 텍스트를 읽고, 발제를 하고... 하나가 끝났다 싶으면 또 다른게 이어지고... 이제 왠만하면 이력이 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게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에쎄이라도 한 편을 써야할 때가 오면, 온 몸 구석 구석이 아플 만큼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져 요란하게 앓곤 한다. 이러다보니 당연하게 '이젠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조리 다 지긋지긋하다'고 진저리치는 순간이 닥쳐오는거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텍스트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겠다며 몇 시간째 빈둥거려보기도 했고, 바깥 바람을 쐬어보기도 했다. 허나,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한 생각은 이내 마음을 쫓기게 만들어, 이건 뭐.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초조함을 생산한다. 하루라도 계획해놓은 스케쥴에서 벗어나 읽을 분량을 놏치게되면, 심장이 두근거리며 걱정부터 앞서는 상태가 되고, 이는 결국 누가 강제하는 것이 아님에도,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만든다. (엄마 말대로 나이들어 아주 주책이 따로 없는거다.)
<전 이제 좀 지치네요.. ㅜㅜ 책이 싫어요>
오늘 S양의 풀이 죽은 메시징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오로지 '시詩를 읽자' 뿐이더라.. 쌓이는 텍스트들에 답답해 죽을 것만 같을 땐, 그저 뒷 주머니에 꼽아둔 시 한수를 되뇌여보자고... 산문에 지칠 때면 시로, 시가 지겨워질 때면 산문으로... 시소 게임하듯, 치이다가 위로받고, 위로받다가도 다시 뛰어들다보면, 언젠가 우리의 앎이 그리고 삶이 꽃 피는 날이 올꺼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치유와 회복이라는, 시 그리고 문학의 힘. 그 힘이 어느때보다 간절히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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