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4일 일요일

설날

 설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심심해하고 있는 식구들과 함께 K사에서 해주는 '산'이란 프로그램을 보며 경인년의 하루를 시작했다. 제주도 오름길에서 시작해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을 등반하는 유모씨를 보며, 엄마는 일명 '빠심'을 감추지 못한채 탄성을 지르셨다. 비록 다들 직접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대리만족하며 마음을 정화했고, 막 등반을 마친 심정으로 떡국을 후루룩 먹어치웠다.

 

 언제부터인가, 딱히 차례를 지내지도. 예배를 드리지도 않은 채, 조촐히 우리 식구들끼리만의 명절을 지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엄마는 "이게 다. 니가 지난번에 삼촌들이 교회가자고 그럴때 성질부려서 그런거다"라며 은근슬쩍 비난하곤 하지만, 뭐 크게 섭섭해하지는 않는 눈치. 굳이 명절때만 얼굴보고 모이는게 다인 관계를 지속해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신 역시 쉽게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보면 참으로 쿨하신 분들이다. 고작 둘뿐인 딸내미들 데리고도 어디에서든 외로워하지 않고 잘 사실 것 같다.

 

 금요일 저녁에 본가에 들어가 이틀이나 함께 살을 부비며 있었으니, 나 역시도 이번 명절에는 가족의 의무를 할만큼 했다는 생각.. 가벼운 마음으로 개포동 집으로 귀환을 마쳤다. 본가에서 뒹굴거리는 내내, 쌓여있는 발제들과 정리할 책들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젠, 밤 늦게까지 낭만주의 발제를 준비하는 날 보며, 엄마는 도대체 그런 짓을 왜하고 있느냐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고, 아부지는 '저러다 쟤, 일 하나 크게 치겠다'며 토닥거려주었다. 최근들어 기력이 부쩍 쇠해진 유리 옹께서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글을 쓰는 내내 내 무릎 사이를 꾸역꾸역 파고들었다.

 

  12일 아침. 여느때처럼 백화점에 화장품을 고르러 가면서 "설날 아침에 맥도날드에 가본 적이 있으냐"고 P에게 물었다. 명절이면 유독 갈 곳 없는 많은 이들로, 올해 역시 시내 곳곳의 패스트푸드점은 붐비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 모두 주입된 관념인 허상일 뿐이라고 아무리 내뱉는다 해도, 부비고 뒹굴 정해진 자리가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쓸쓸함을 100%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고아되기' 작업 역시 다 부르주아적 허영일 뿐이다. 경계 안에 속해있는 자가 그 아무리 경계 밖의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겠다고 몸부림쳐봤자,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정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올해도 무사히 집에 왔으니, 일단 커피부터 내려야할테고... 오늘은 치킨 배달도 안될테니, 데리아끼와 칠리소스에라도 닭날개들을 재어놓아야지. 유일하게 제대로 한다고 인증받은 엔젤스헤어 스파게티도 준비하고, 몇달동안 연습했던 야끼소바도 내어놓아야지. 미뤄두었던 '아마존의 눈물'을 보며 '간지럼과 위로'의 테마로 이야기도 나누고, 짐자무시의 '다운바이로'를 보며 다시한번 탐웨이츠의 매력에도 빠져보아야지. 가족들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나누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분주해진다. 사람 사는게 뭐 별건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서로 살을 부비고.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면 그만인 것이다. 역시나 사람이 제일이다.

 

 

 

댓글 1개:

  1. undenied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도 아마존의 눈물 보려고 하던 참인데, 커피 내려서 마시면서 봐야겠습니당~



    역시 살을 부비면서 그렇게 사는건가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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