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7일 수요일

들어가며

 

 

 감식鑑識은 모든 비평의 기초일 것이다. 문학도 감식에 어두워선 작자여작품作者與作品의 정체를 포착치 못할 것이다. 비평가가 읽기만 하고 얻기 쉬운 것은 애매한 인상일 것이다. 한번 그 작품을 묘사, 베껴본다면 그 작품은 그 평가評家에게 털끝만한 무엇도 가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서록' , 이태준 / 범우 p76)

 

 

 나란 사람의 성향 중 8할은 다름아닌 욕심일거다. 일단 읽고 싶은 책은 '무조건 사고보자'식으로 덤벼드는 나는, 이태준 식 표현에 의하면 꽤나 '급진파' 독자인 셈. 문제는 이렇게 소유하게 된 책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 읽지 못한 책들이 하나 둘 책장에 늘어만간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컨데... 표지조차 들춰보지 않은 책도 적지않다. 아니.. 많다. ㅜ

 

 상황이 이렇다보니, 약간은 조급한 마음으로 동시에 여러 책들을 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책상 앞에서 밑줄쳐가며 정독할 책'이나 '화장실에서 읽을 책'뿐 만아니라, 출퇴근용이나 점심시간용, 침대용 책들로까지 세분화해, 여러 권을 동시에 읽어내려가는 방식인 거다. 이러한 독서법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우선 '질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재미없으면 중간에 과감히 '버릴 수 있다'는 것이겠고, 단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용도가 잘못 분류되면 좋은 책을 대강 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다.

 

 이런 얘기를 시시콜콜 쓰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오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출근 길에 읽게된 이태준의 '무서록' 때문.. 분명, 이 책은 (제목대로) 두서없이 쓴 수필집인데다 2800원짜리 문고판이었으므로, 구입하자마자 '출퇴근용'으로 분류해놨던 책이다. 그런데 구입한지 이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때 용도를 잘못 선택했다는 후회가 밀려오더라. 의외로 책상 앞에서 밑줄쳐가며 읽어도 시원찮을만큼 훌륭한 글이었던 것.  언젠가 문장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내게 P는 '정 그러면 베껴쓰기'라도 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백번을 베껴써도 아깝지 않을 문장들이다. 누군가 내게 베껴쓰기의 노가다를 시킨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만 같더라.

 

 사실 요사이, 이런 식으로 용도분류에 실패한 책들이 종종 등장해 당혹해하고 있다.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독서노트냐. 라고 그동안 애써 모른체 했는데, 이제서야 슬슬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중. '베껴 써본다'는 의미나 '좋은 글의 소개'라는 의미, 그 어느 쪽이든 좋다. 출퇴근이나 잠자리에서 읽다가 그냥 지나쳐버리고 잊혀진 글귀들이 아쉬워서라도, 이렇게 멍석을 깔아두어야겠다. 'ㅅ'

 

 

댓글 1개:

  1. 아무래도 카테고리를 주저리 나열하는 것만 같아, 이 폴더는 흡수시킵니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부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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