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된 정원을 하나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아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위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을 숨어서 보곤 했지 왜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로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문학과지성사)
펼쳐두기..
지난 넉 달간, 월요일이면 출근 길 가방이 제법 묵직했다. 이유는 다름아닌 맑스의 자본(론)... 어디 이 책이 그 부피만 무거웠을까? 이래저래 여러가지 무거움으로 사람 참 피곤하게 만드는 책이다.
자본을 읽어내려가면서 그 무엇보다도 나를 지배했던 건, 슬픔의 정서였다. 맑스는 초기 저작 이후, 휴머니즘의 시각을 배재한 채 냉정하게 쓰고자 노력했다지만, 그럼에도 그 따뜻한 본성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텍스트 하나하나에서 수 많은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차마 고통스럽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만큼 고통받는 타자들... 그들의 퀭하고 어두운 눈이 글자 마다 조각조각 나타나는 것이다. 그 울컥함과 서러움에 몇번이나 가슴을 두드렸는지... 이상하게도 내게있어, 블레이크나 디킨즈의 문장보다 맑스의 그것이 훨씬 더 절절하고 애처로워보이더라.
한편, 누군가가 더이상 '앎'과 '삶'의 배치를 견디기 힘들다고.. 배울수록 삶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예전같으면 '핑계 한번 조오타' 고 넘겨버리고 말았을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가슴 한 쪽이 저릿해졌다. 나 역시 이번 세미나 내내, 고민했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맑스때문에 시작된 고민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어렴풋했던 불꽃에 맑스가 휘발유를 부어준 셈이다.
시초의 끔찍함을 보고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부조리함을 깨닫고도, 똑같이 회사에서 돈을 벌고, 여기저기 써대며 살게 될 것이다. 선행? 나눔? 봉사? 그럼 뭐하나. 제3세계 사람들 돕자고 시작한 공정무역까지 스타벅스가 마케팅 전략으로 써먹고 있는 판에... 자본이라는 괴물은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해보여서, 뭘 한다한들, 그것은 자본이라는 시뮬라르크를 유지하게하는 부속품에서 벗어날 수 없어보인다. 내 가슴과 머리로 인정한 '바른' 것들과 어긋나게 살아야한다는 것... 그 곳에서 오는 허무와 서러움... 이런 내게, 왕년에 NL운동 좀 했다싶은 누군가는 '그래서야 뭐가 바뀌겠냐'고 격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 나 니힐이다. 근데 답이 안보이는 걸 어째. 전혀 길이 보이지 않고, 심지어 녹슨 풍향계조차 없는데 이를 어째.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줄 아나.
여하튼 이렇게! 그리고 드디어! 자본 읽기 세미나가 끝을 맺었다. 자본 1권 완독에 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냐고 당연히 비웃을만 하다. 애초, 좀 더 꼼꼼하게 읽어보자는 목표에서 나온 커리였지만, 뒷부분으로 갈 수록 루즈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처음의 의도대로 과연 밀도있게 읽어냈는가.에 대해서는 역시나 자신이 없다. 새보단 공중의 길이 선명해보여, '특별잉여가치'같은 개념보단 '맑스식 글쓰기'에 집착하곤 했다. 자본을 읽었다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건 결코 아닐 것이다. 그저 예전보다 좀 더 사는게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페르세우스는 괴물을 추격하기 위해 도깨비 감투를 써야했지만, 우리는 괴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 도깨비 감투를 눈과 귀밑까지 깊이 눌러 쓰고 있다. 우리의 상태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따끔따끔하다.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앞으로도 계속 부끄러워하겠다는 다짐으로 위안받고 있는 내 자신이 더욱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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