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뱀이 부시시 눈을 떠보았다.
- 그러나 아직 겨울이었다.
하도 땅속이 훈훈해서
개구리도 뒷발을 쭈욱 펴보았다.
- 그러나 봄은 아니었다.
어디서 살얼음 풀린 물소리가 나서
나무움들도 살포시
밖을 내다보았다.
- 그러나 머언 산엔 눈이 하얗다.
핸 멀찌막히 「驚蟄」을 세워놓고
이렇게나 따뜻하게 비췰 건 뭐람?
- 그러나 봄 머금은 햇볕이어서 좋다.
미치고 싶도록 햇볕이 다냥해서
나도 발을 쭈욱 펴고 눈을 떠본다.
- 그러나 「立春」은 카렌다 속에 숨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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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갑자기 풀린 날씨는 사람을 퍽 들뜨게 만들었다. 머리는 '2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봄이 올리가 없잖아!'를 외치고 있었지만, 가슴은 그렇지 못했던 것. 때이른 꽃바람에 온종일 설레이기도 했고, 마크씨의 실크스커트까지 꺼내게했다. 심지어,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을 새싹이라 착각하고, 남친님께 "봄이닷!"이란 메시지까지 보내기도 했다는 슬픈 이야기.
하지만, 당연하게도(!) 봄비가 내린 이후, 바람이 다시 차가워졌다. 제법 쌀쌀한 공기에 몸은 부르르 떨렸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빠지거나 서운해지지는 않았다. '꽃샘추위'.. 봄이 오려면, 역시나 이를 견뎌야하는 법.
<나는 어릴적부터 꽃샘추위란 말이 참 예쁘더라. 꽃을 샘낸다니, 이 얼마나 귀여운 표현이야..>
<-그렇지. 하지만 철없이 일찍 핀 꽃들이 얼어죽을 걸 생각하면 잔인하기도 한게지.>
<올해는 설사 얼어죽는다 해도, 대신에 다음해엔 좀 더 제대로 피어나지 않을까.>
라는 말을 내뱉고나니, 왠지 내가 오네긴 흉내라도 내는 듯해 아주 약간 쑥스러워지고야 말았다.
나는 고통과 성숙에 대한 푸쉬킨식의 사고에는 언제나 묘한 반발심이 생겨나곤한다. 그렇게따지면, MB정권 다음에 수립될 정부는 가히 혁명적이게? 모든 고통이 꼭 성숙을 낳는건 아니다. 허나 성숙에 있어 고통이 필요조건이라는 사실까지는 부정하지 못한다. 다만 이 것들이 마치 필연적으로 뒤따르고 쫓는 관계라는... 반쪽짜리 철학을 가지고 허세부리는 행태를 보고있자면, 좀 '재수없어진다'는 것 뿐이다.
올해 일찍 움을 틔웠다가 얼어죽은 꽃들은, 내년에는 적절하게 피어나 살아남을 수도, 내년에도 똑같이 치기어리게 피어나 또다시 일찍 죽을 수도, 추위가 무서운 나머지 아예 다시는 영영 꽃을 못피워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은 꽃들의 선택에 달려있을 지도 모른다. 지혜롭고 성숙한 꽃들. 끝내 길게 살아남아 누군가에게 예쁨받고 기억될 꽃이란 어찌됐든 이들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샘내는 추위를 탓해 무엇하리.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이번엔 보들레르 흉내라, 또다시 재수가 없어진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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