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
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
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
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
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
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
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
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
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
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
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
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억
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
일 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
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
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
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
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
란다.
(신동엽 전집 / 창비)
펼쳐두기..
정신없던 연구실 스케쥴이 어느정도 정리되고나니, 이번엔 회사가 골치를 썩힌다. 자그만치 폐기작업으로 250박스나 할당받은 것. 3일에 한번 강제 야근을 해야한다는 초강수의 명령까지 떨어졌다. 이러니, 그 중요한 앨리스 예매를 놏친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이번 주말엔 뭐하고 놀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앨리스 개봉이 번뜩 생각나 영화사 사이트를 뒤져보니, 이런 제길슨! 아이맥스 상영분은 이미 모두 매진이다. 조금 속상해진 마음에.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남친님께 "흐엉엉"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극장에서 한 번 볼 영화이고, 더더욱이 관람 포인트가 '기술의 진보'의 확인에 있다면, 최고로 '좋고 훌륭한' 것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이쥐...
하지만, 자상하신 우리 남친님께선 "뭐 굳이 아이맥스에서 볼 필요 있나"라고 토닥토닥해주신다. "안경쓰고 보는게 어디냐"고... "게다가 아이맥스는 더 비싸잖아"... 라고 말한다. "그으래. 우리가 사실, 영상미 따위를 아는 고급눈은 아니지..." 아암. '좋고 훌륭한' 시설에서 꼭 '좋고 훌륭한' 관점이 나오라는 법은 없는거다.
그이가 이렇게 얘기해줄 때면, 사실 참 좋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꼭 테이크아웃 잔이 아닌 머그잔에 달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참 예뻐보인다. 허름하기 그지 없는 명동 J극장에서, 다른 것도 아닌 2시간 반짜리 '지옥의 묵시록'을 다시보자 해도 흥쾌히 'YES'해주고, 종로 한 복판에서 천원짜리 와플을 먹자고 졸라대도 언제나 'OK' 해주는 우리는 참 가난한 커플... 맞는거지? 우리 참 가난한 사람들 맞는거지?
한때의 나는, 다른건 몰라도 소위 '문화생활', 다시말해 예술을 접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 돈을 아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밥은 굶더라도 보고 듣는 것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비록 비루한 눈과 귀를 타고났을 지언정,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듣더라도 티볼리 스피커로 들어야하고, 공연 하나 보더라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아야한다고... 그래야 후천적으로나마 귀한 감각을 얻을 수 있을 꺼라 믿었다.
하지만, 그 감각이란게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생성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감각보다 더 중요한건 사물과 예술을 대하는 감수성임을 그이는 이렇게 늘 가르쳐준다. 그 감수성이란건 다른 무엇보다,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데서 가장 정직하게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박한 마음가짐일 때야 보이는 우연들과, 이에 기뻐하는 일이 그 얼마나 소중한건지를 새삼스레 다시 한번 배우게된다.
'북유럽 어느나라 탄광 노동자의 뒷주머니에 꼽혀있는 하이덱거...'
가난한 자들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를 지녀야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가난하게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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