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아닌데도 눈이 내립니다
자유를 주십니까 새하얗게
눈은 자유롭구나 하나로
눈 내리는 날 이 세상 골고루
새카만 눈이 있다면 캄캄한 세상
얼마나 덜 구차하겠습니까
젊은 날 즐거웠던 한잔 술의 덧없음이여
누구 탓 없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자유를 주십니까 공짜로
절대로 공짜가 아니신 하느님
형편없으신 나의 하느님
진흙투성이 은총 헤쳐내며
나의 눈물을 노래하게 하십시오
다시 한번
흙 속에 비쳐올 찬란한
내 모습을 보게 하십시오
싸구려 막국수집이거나
연구실이거나
택시ㆍ버스ㆍ자가용 넘쳐나는 빈 거리거나
새파란 교정이거나
강의실이거나
오늘도 내 절망 위로 눈이 내립니다
(떠나도 떠날 곳 없는 시대에 / 문학과 지성사)
펼쳐두기..
코키토. 즉 나의 존재를 묻는 '내재성의 구도'에 대한 탐구야 말로 철학의 제1원칙이라고들 한다. 데카르트, 흄, 키에르케고르, 니체 그리고 스피노자... 들뢰즈는 이들을 줄줄이 읊으며 뭐라뭐라 설명하지만, 내 비루한 능력으로는 역시 뭔 말인지 모르겠어, 모호하고 추상적만 여겨진다.
'당신이란 존재의 8할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냐마는... 요사이 나의 그것은 '열등감'이다. 매사를 남들과 비교하며 작아지고 또 작아지고 있다. 가족들이 걱정할만큼 수면시간을 절대적으로 줄이면서까지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데, 도무지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어보인다. 그럴수록 열등감에서 오는 절망은 배가된다. 이에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때로는 지리하기도 하다.
욕심을 버리고, 과정을 즐기며, 그 결과의 양가성을 받아들이자는 처음의 태도는 갈수록 퇴화하고, 바득바득 용을 쓰고 있는 초라한 얼굴만이 남아있다. 세상 모든 이들은 다 제각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비록 지금은 숨겨져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간 결국 그 찬란한 美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헌데 나만 예외인것 같아. 내 그것은 유독 뭉실하고 어두우며 초라하다. 맑고 밝은 천성이란 역시나 타고나야하는걸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역시나 안되는 걸까.
반짝반짝 빛나는 타인들이 부럽다. 그들이 가진 맑고 밝은 꿈이 부럽고, 그들에게 도래할 찬란한 미래가 부럽다. 언젠가 나에게도 흙속일지언정 명쾌히 비춰지는 내 얼굴이란게 생길 수 있으려나. 퇴근 후 집에 들어와 가족에게, 친구에게, 애인에게 한차례씩 전화를 돌리고나니, 이들에게 비춰지는 내 얼굴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에 온 몸이 저렸다. 차라리 깜깜한 눈이 내려 이 모든 초라함을 감춰주면 좋으련만, 3월의 봄 눈은 왜 이리 유독 하얗고 빛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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